매 순간 깨어있기, 여행자의 호기심은 임장에서도 필요하다. 특히, 장거리 임장에서는 여러 번 현장에 가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번에 보는 대상의 숨은 가치를 확인하고, 위험 요소를 걸러내야 한다. 그것이 경매 물건의 옥석을 가려내는 요령이다. 경매에 나온 이상, 그것도 주요 투자 대상인 소액 부동산인 경우 항상 '하자'가 있다. 모두가 탐내는 멀쩡한 주택 가격이 그렇게 싸게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권리상이나 명도의 난이도, 노후화 등 집 자체 문제나 환경적 변수 등이 늘 도사리고 있다. 이런 복합적 문제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느냐가 투자의 성패를 가른다. 이런 능력치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기를 수 있는데, 직관과 훈련의 합작품이다.
임장 대상이 있는 도시에 발이 닿는 순간부터 본격적인 임장은 시작된다. (안 본격적인 임장은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이미 오기 전부터 시작됐다. 여기서 계산이 섰기에 멀다 먼 현장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의 접근성이란 가장 중요한 투자 요소 중 하나다. 직접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것을 파악하기 쉽다. 임장 물건지가 시내와 얼마나 가까운지, 주변에 역이나 터미널이 있는지 등을 바로 알 수 있다. 또 임장지까지 가는 버스 노선 수와 환승 여부, 배차 간격, 소요 시간 등도 알아두면 좋다. 이번 제주도 임장지는 한림읍 협재 해수욕장 부근에 있었다. 감정가 3700만원의 다세대 빌라였다. 최저 가격이 재매각을 거처 1270만원까지 떨어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건물 면적은 15평인데, 토지 대지권은 40평에 달했다. 분명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2시 반쯤 공항에서 버스로 출발해 1시간 후 한림읍에 도착했다. 여기서 시내버스로 환승하고 몇 코스를 더 갔다. 외곽인데 다행히 환승 시간이 맞아 별로 기다리지 않았다. 이후 도보로 20분 남짓 더 걸었을까, 임장 목적지가 보였다. 왕복 2차선 도로 양 옆에 리조트 같은 건물과 단독주택들이 들어찬 소규모 주택단지였다.
임장지에서는 스스로가 탐정이라도 된 듯 마음을 추스른다. 단서는 사람, 건물 내외, 주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있다. 보물찾기라도 하듯 샅샅이 뒤져야 한다. 마침 임장지 맞은편 주거지에서 담배 피우러 나온 주민이 보였다. "경매 때문에 왔는데, 혹시 저 앞 건물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가끔 차들이 들락거리더라고요." 경매 가격이 너무 싸게 떨어져 혹시 폐가가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히 사람은 사는 것 같았다. 직접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길을 건너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건물 외관도 깨끗했다. "아니, 이 정도면 완전 좋은데?" 마침 건물 입구 관리실 같은 곳에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 보였다. 누군가 기웃거리는 것을 보고, 그중 한 명이 문을 열고 나왔다. "혹시 여기가 경매 나온 건물 맞나요?" 물었다. "아니요, 경매 나온 물건은 앞에 있는 저 건물입니다." 그 사람은 조용히 입구로 나가 맞은편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매 물건은 저 건물 제일 위에 왼쪽 끝 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옆 집은 문이 열려 있는데 천장이 다 내려앉고 누수도 있는 것 같아요. 3년 전부터 건물에 아무도 살지 않고요."
"혹시 수리나 다시 건물 운영을 재계할 계획은 없을까요?" "힘들 것 같아요. 이쪽 건물처럼 관리단이 없고, 건물 소유주가 임차인 돈을 떼먹고 연락이 되지 않거든요." "친절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이상 붙잡고 있는 것은 민폐가 될 것 같아 인사를 했다. 직접 맞은편 건물로 가보기로 했다. 탐문을 통해 경매의 배경과 현 상황을 단박에 이해했다. 이렇게 기회가 된다면 주변 주민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조금 낯을 가리는 편(?)이라 보통 인터뷰 대신 셀프 임장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날 따라 제주도가 준 기운 덕분이었을까. 적절한 타이밍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만나고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건물 입구부터 스산한 기운이 들었다. 방치된 지 오래됐는지, 건물 1층 외벽에 잡초들이 무성했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천장이 다 까뒤집힌 채 배관이 드러나 있었다. 1층 한쪽 옆 문 틈으로 보니 식당 같은 곳에 가구와 전자제품, 주방용품 등 온갖 잡동사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천장 곳곳에 누수 흔적도 보였다. 복도에는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다. 이렇게 건물 전체 관리상태만 봐도, 개별 호실의 상태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언제까지 관리됐는지, 누수나 파손 같은 영향은 없을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은 입구 쪽 전기 계량기를 살펴봤다. 설치된 모든 세대의 계량기가 뜯겨져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건물 전체에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료가 체납됐고, 전기 공급이 다 끊겼다는 의미다. 건물에 아무도 안 산다는 말이 맞았다. 우편함도 봤다. 별도 보관함 대신 입구 로비에 여기저기 우편물이 흩어져 있다. 수도요금 독촉장에는 2020년 8월을 끝으로 30여만원이 밀려 있었다. 이렇게, 계량기와 수거하지 않고 방치된 우편물 등을 통해 실제 경매 주택에 사람이 사는지를 알 수 있다. 이 확인이 중요한 이유는 거주 여부를 통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인지 확인하고, 낙찰 후 명도 난이도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빈집은 명도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점유자가 이미 권리를 포기했기에 의외로 쉽게 인수할 수도 있다. 반면, 혹시 정체불명의 불법 점유자라도 있다면 골치 아파진다. 우편물에서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어떤 작은 오피스텔에 임장 갔다가, 관리비가 400여만원이나 밀린 고지서를 보고 식겁해 입찰을 포기한 적도 있었다.
경매 물건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니 진짜 옆 집 문이 열려있었다. 그 안에는 천장이 뜯겨져 온갖 자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 말고는 집은 괜찮았다. 원룸처럼 거실 앞쪽에 싱크대가 있고, 화장실 외에 작은 방이 2개나 더 있었다. 15평 치고는 꽤 컸다. 이전에 리조트로 쓰다가 연립주택으로 용도를 변경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옆에 있는 경매 주택으로 갔다. 창문과 현관 배치는 달랐지만, 크기는 유사하게 보였다. 그렇다면, 안의 구조도 동일할 것이다. 입구는 잠겨있었지만, 창문으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방문이 열려있었다. 옆집과는 달리 깔끔한 벽지와 바닥에 낮은 원형 밥상이 하나 놓여있었다. 점유자가 일부러 문을 열어 놓은 걸까. 관리나 파손 상태를노출해 낙찰 가격을 올리거나, 떨어뜨리려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외에도 임장 시 집 거주자를 만나 직접 내부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보통은 경매 낙찰을 받아도 좀 아는 점유자는 집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잔금을 다 낸 뒤 협상하자고 한다. 그러니 경매 책에 나오는 임장 팁, "집 초인종을 눌러서 안을 확인해 봐라"는 식의 조언에 쫄 것 없다. 직접 안을 보지 않고도, 내부 상태를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관 주변 도장 상태라든지, 도어락 교체 여부, 건물 외벽 금 등 손상, 베란다, 에어컨 실외기, 외부 창틀 샤시의 노후화 상태 등이 그런 단서가 된다. 임장을 마치고 가다가 잊은 게 있어 다시 한번 현장에 가봤다. "혹시 옆집 천장에 누수가 있었던가?" 꼼꼼히 보니 얼마 전 비가 왔음에도 물 흐른 흔적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옆집 천장은 공간이 뻥 뚫려 경매 나온 집과도 연결돼 있었다. 밖으로 나와 건물 베란다 윗면을 유심히 다시 봤다. 임장 주택 천장면도 옆집과 마찬가지로 노후화되고 부분 부분 뜯겨있었다. 집 안도 천장 파손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것 같았다. 누수는 건물 파손 다음으로 치명적 문제가 돨 수 있기에, 꼭대기 층이나 외벽 쪽 집은 잘 살펴봐야 한다.
귀가 중 지나가던 할머니, 트럭 운전기사 아저씨 등 여러 사람을 봤다. 아마 바로 옆 단독주택들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듯 했다. 이처럼 임장지 주변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거주자 유형, 임대 광고(유사 물건가격), 경매지 정보 등이 그것이다. 가끔 부동산 업체에서 붙여둔 임장물건 관련 경매대행 홍보물을 볼 경우도 있다. 그 밑에 오징어 다리처럼 적어둔 연락처가 많이 뜯겨져 있다면 인기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입찰 가격을 더 올려 써야 할 수도 있다. 그 외 주변의 학교나 마트, 공장, 공원관광지 등 편의나 생활 인프라도 관찰 대상이다. 축사 등 냄새나 위험을 야기하는 유해시설 여부도 확인하면 좋다. 임장 후 입찰을 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바로 촉이 왔다. "폐가도 급이 있다." 이전에 다른 지역 폐가 임장시 감이 안 좋아 포기하고 바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집은 활용 가능성이 보였다. "정 안되면, 빈집에 폐가 체험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지 뭐.", "싸게 사 뒀다가 노후에 할 일 없으면 여기 와서 살면 되겠다." 당장 관리가 전혀 안 됐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멀쩡했다. 복도 곳곳에 설치된 CCTV 흔적까지 꽤 영화로웠을 과거(?)를 상기시켰다. 주변 임대 시세도 연세 1000만원, 월 300만원 이상 나가는 곳이 수두룩했다. 전기는 한전에 연락하면 바로 연결해 주고, 누수도 이 정도면 처리 가능할 것 같았다. 실제 이전에 낙찰받은 다세대 주택도 거의 전체가 경매 나와 공동화 됐었다. 그런데 최근 동파로 수도가 터지자 한 집주인이 나섰고, 순식간에 입주민회가 결성됐다. 이후 관리업체를 선정하고 고장난 수도배관 등도 찾아 어렵지 않게 수리한 적 있다. 임장을 통해 그 내막을 충분히 파악하면 확신이 생긴다.
다음날 법원 입찰 전, 시간이 남아 관할 수도부서에 전화했다. 보통 연립, 다세대 주택처럼 수도 계량기는 전체 건물에 1개만 있어 개별 수도 공급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전체 미납금만 입금하면 다시 수도 연결은 가능하다고도 했다. 마침 경매 옆집에서 주워 둔 천장 판넬 업체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해 수리 비용도 알아봤다. 입찰가에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최종 입찰 가격은 1270만원에 300만원을 더 썼다. 계획한 100-300만원 중 최대치를 쓴 것이다. 그래야 낙찰 시 목표한 최소 1000만원 내외의 수익이 가능해서다. 실거래가를 보니, 최근 2500만원에 매매된 동일 평형 물건이 있었다. 해당 물건입찰 예상인원은 5-6명, 이것도 입찰가에 반영했다. 이 정도 가격대는 보통 한 명당 50만원씩 높여 잡을 경우, 250-300만원을 더 쓰면 낙찰 유효권이라 판단했다. 실제 입찰에는 폐가임에도 6명이 몰렸다. 보통 2-4명 입찰한 것보다 조금 더 많았다. 비록 고가 입찰자가 있어 아쉽게 낙찰은 못 받았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임장이 되었다. 때론 폐가처럼 못 쓰는 집도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얼마나 속속들이 현장을 이해하고,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임장 여행자의 즐거움도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