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인생 2막은 '나 대로'를 열기로 했다. 직장을 나와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나답게 살며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고, 이전보다 '더 잘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돈을 잘 벌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남은 반평생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마지막 직장을 퇴사하고 찾은 것이 데미안의 길이었다. 이것을 헤르만 헤세는 그의 대표작 '데미안'에서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온전히 살아 보려 한 것밖에 없는데..."라고 표현했다. 바로 "오롯이 자신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데미안이 찾는 길이다.
데미안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직업생활이든 뭐든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남이 정해놓은 규범을 무작정 따라 하는 것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를 크로머에게서 구해주면서 한 말도 이것이었다. 하지만 싱클레어는 낯선 생각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 의심 때문에 새로운 길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그는 "인간에게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는 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다"라고 했다. 무리 속의 한 명으로 편안함에 푹 빠져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장 쉽고 가까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황하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쪽지를 보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여기서 아브락사스는 신이자 사탄이고, 자기 속에 있는 밝음과 어둠이 모두 통합된 세계를 말한다. 자유로운 새처럼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인 알을 깨고 나와야 했다. 마음의 분열 없이 자신의 꿈과 생각, 예감과 잠재력을 믿고, 내면의 목소리에 잠잠히 귀 기울이고 실천해야 했다. 이 자기완성의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었다. 싱클레어가 그토록 갈망했던 이상향이자 데미안의 어머니였던 에바 부인은 말했다. "태어나는 건 누구나 어려워요. 당신도 알잖아요? 새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이제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그 길이 그렇게 어려웠느냐고. 그렇게 어렵기만 했느냐고. 혹시 아름답지는 않았냐고.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이 있더냐고." - 이전 글 '인생여행자가 답을 찾으면' 중에서
그런데 얼마 못 가 문제가 생겼다. 자기 속에서 솟아나던 것이 없어져 버렸다. 길을 찾기는커녕 다시 방향을 잃어버렸다. 그새 무슨 일이 생겼을까. 그토록 바랬던 삶이 다 허구고 거짓이었단 말인가. 20년 직장생활 내내 퇴사를 꿈꾸며 벼려왔던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졌다. 마냥 코로나 탓만 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무기력했다. 자신의 비전과 사명은 물론 직업적 목표와 하루 계획조차도 잊어버리곤 했다.
자기 속에 솟아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음의 소리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고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한창 직장인일 때, 온갖 삶의 문제에 짓눌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다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니가 진짜 원하는 게 뭔데?" 해방된 것 같은 마음에 그 바람을 쏟아냈다. 그날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이 있다. 소원을 이룬 건 둘째 치고, 내면의 분열이 없어진 것이다. 남의 눈치나 세상적 기준, 스스로를 옭아매던 도덕적 판단(?) 같은 영향이 줄었다. 괜한 자책으로 자신을 정죄하기를 멈췄다. 미우나 고우나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좀 더 자유스러워진 것이다. 이후 내적 갈등이 싹 사라졌다. 이것이 가장 활성화될 때는 걷거나 글을 쓸 때다. 퇴사 후 도서관 길을 걸으면 영감이 마구 샘솟았다. 덕분에 40일 만에 평생 할 일을 찾고, 인생 2막의 새 청사진을 짰다. 글을 쓸 때도 조용히 내면에 귀 기울이면, 각종 쓸거리라든지, 구체적인 표현, 수정할 단어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무의식 중에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이다. 이제껏 고민하던 문제 해결책이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때 내면은 평온과 잔잔한 기쁨이 넘친다. 안개가 싹 걷히고 갈 길이 환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그럼 무엇이 자기 안에서 솟아 나오는 것을 막을까. 바로 방탕이나 나태, 오락중독 같은 것들이다. 그전에, 탐욕과 교만, 허영 등 안락함에 빠져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도 그렇다. 자기 내면의 세미한 소리에 귀를 막고 외부에서 충동적 쾌락을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이런 것들은 만족을 모른다. 빠지면 빠질수록 더 큰 자극을 원하고 자신의 속은 피폐해져 간다. 이런 문제는 진짜 자신을 찾아 '알'을 깨고 나온 경우에도 있을 수 있다. 새가 알에서 나왔다. 그런데 자기가 원하는 세상은 온데간데없고, 맹수 같이 위험한 것들만 주변에 가득한 것이다. 그래서 무서워 다시 두꺼운 알 조각을 뒤집어쓴 채 살기로 했다. 자기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서 다른 무엇을 찾는 것도 이와 같다. 자신의 연약함, 실패가 두려워 진짜 만족이 아니라, 자기 밖에서 대체재를 찾는 것이다. 현실 도피로, 거짓 자아 안에 숨는 것이다. 참된 자아, 내면에서 솟아나는 기쁨만이 진정한 만족을 줄 수 있다. 변치 않고 스스로 지속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새가 알에서 나왔으면, 그 깨진 알은 더 이상 누구도 보호해 줄 수 없다. 그 안에 남아있는 양분도 없다.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새는 스스로 성장해야 한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자라나 훨훨 하늘을 날 때까지 그 시간을 살아내야만 한다.
어떻게 오롯이 자신에게 솟아나는 것을 살아낼까.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참된 자아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대만 작가 장더펀의 책이 도움이 됐다. 그는 내면 수양 전문가로 사례 위주로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장더펀은 아래 도표처럼 참된 자아란 사랑, 기쁨, 평화처럼 내면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이런 것들을 외부적인 것, 부정적 감정 보다 키워가는 것이 바로 '나를 찾는' 길이다고 한다. 지금 자기답게 잘 살고 있는지를 보는 내 척도와도 유사했다. 나는 평화, 기쁨, 소망에서 그것을 확인한다. 이것은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성경 구절에서 찾았다. 여기서 소망이란 배가 순풍에 돗을 단 듯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이미지가 담겼다. 자신의 정체성을 존재, 일, 관계 등을 통해 찾기도 하는데, 이것은 보다 일적인 부분에 가깝다. 존재로서 평화라는 내적인 균형 상태가 기쁨을 통해 외부로 드러나고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소망하는 일을 통해 점점 커지고, 주변으로 확대된다. 그 결과 참된 자아가 원하는 자기 다운 일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한 가지만 질문해 보자. "지금 자기 안에 평화와 기쁨이 있고, 진짜 원하는 인생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인가?" 만약 "그렇다"면 됐다.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는 시간이 답해줄 것이다.
출처: 나를 찾는 수업(장더펀, 라이온북스)
참된 자아를 키우는 팁이다. 사전적 의미로 자아란 사고, 감정, 의지의 유기적 결합체이다. 대리, 부장, 이사처럼 뒤로 갈수록 결정권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감정이 뒤틀면 실천하기 힘들다. 좋은 계획이 작심삼일 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 중독 같은 나쁜 습관은 더더욱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이때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평안과 기쁨 등 참된 자아가 주는 긍정적인 감정, 소망을 이룬 모습 등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는 것이다. 보고, 듣고, 느끼며 그때의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날수록 좋다. 그럼 더 그런 일들에 집중할 수 있고 자연히 안 좋은 행동은 멀리하게 된다. 반면, 어떤 행동이 싫어, 안 해야지 생각만으로는 결코 그것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것은 하루 일과나 한주를 마무리하는 간단한 명상을 통해서 실천할 수 있다. 좋았던 것과 안 좋았던 모든 일들을 먼저 생생하게 떠올리고 그 결과를 다시 느껴 본다. 그리고 참된 만족감, 자신이 항상 가지고 싶은 좋았던 상태를 반복적으로 즐기면서 키우고, 그것을 안 좋았던 기억에 대입해 보는 것이다. 그럼 점차 참된 자아가 원하는 일들로 자신을 채워나갈 수 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회피하지 말고, 어떤 현실이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조차도 담담히 받아들여 보자. 끝까지 자기를 믿고 의뢰하면, 내면의 소리는 결코 자신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평화와 기쁨, 소망 가운데 사랑이 넘치는 온전한 길로 자신을 이끌어줄 것이다.
자기에게서 솟아나는 것이 희미해지는가. 그럼 지금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깥을 걸어보자. 자신의 호흡과 팔다리의 움직임, 몸의 상태를 오롯이 느껴보자. 주변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 꽃내음을 맡으며 오감을 깨우자. 걸어갈 목적지를 떠올리고, 도착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곳에 있는 자신은 진짜 원하는 소원을 이룬 또 다른 차원의 자신이다. 그것을 믿고 한걸음씩 전진하는 순간, 마음 속에 꿈틀그리며 다시 솟구치는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다. 이제 그것을 무엇보다 소중히 보듬어주기만 하면 된다. 자신의 작은 소리에 잠잠히 귀 기울이고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현실이 되어 자신과 주변 모두를 울리는 즐거운 외침으로 되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