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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솔 Nov 27. 2024

첫눈 오는 날 글을 안 쓸 수가 없어서

마흔이 넘어도 여전히 눈이 좋다

마흔 중반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눈 내린 아침을 맞이할 때면 마음이 설렌다. 어린아이들이 머리맡에 놓인 선물을 잔뜩 기대하며 크리스마스 새벽에 가만히 눈을 뜨는 기분이랄까.


오늘 아침이 딱 그랬다.



눈이 자연스럽게 떠지는 걸 보니 일곱 시쯤 된 것 같은데 침대 주변은 여전히 컴컴했다. 겨울이 오는 게 좋은 건 이래서다. 하루가 느지막이 시작되니 고요한 새벽을 좀 더 오래 만날 수 있으니까. 이불속에서 느껴지는 남편의 체온도 이 계절에만 특별하게 좋아진다. 배가 나와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중년 아저씨 같다고 늘 놀리지만 자고 있는 남편의 볼록 나온 배를 둘러 안으면 이만한 포근함도 없다. 역시나 오늘도 따뜻하다며 만족하고 있는 와중에 살짝 벌어진 커튼 사이로 하얀 세상이 스쳤다.


 '어머나... 어제 눈이 온다더니... 혹시 이건??'



나는 얼른 침대에서 빠져나와 선물 꾸러미의 리본을 풀듯 조심스럽게 커튼을 열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나무들. 사방이 하얗다. 첫눈이 온 세상을 덮은 11월의 아침이었다. 아...! 외마디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밤사이 누군가 마법을 부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에 낼 수 있을까. 황홀하다.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아직 한 달 남았는데도 인사말이 절로 떠올랐다.



핸드폰에서 기상 알림 뉴스 브리핑이 시작되길래 남편이 깰까 봐 얼른 껐다. 가족들이 모두 늦게 일어났으면하는 아침이다. 첫눈을 맞이하는 순간을 이대로 좀 더 누리고 싶으니까. 잠시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면서 마음과 눈에 기쁨을 충전하고 일상으로 들어갈 결심을 한다. 남편을 깨우고 아이들을 준비시켜 학교에 보내는 바쁜 주부의 아침으로. 하지만 무미건조한 다른 날과는 다르다. 침대 머리맡에 가만히 기대고 앉아서 아이에게 살짝 귓속말을 건넨다. "솔아 하얀 세상이 됐어. 일어나 봐" 잠에 취한 아이가 눈도 제대로 못 뜨며 입을 헤벌쭉 벌리고 반응하는 모습에 내 맘이 더 좋아졌다. 눈이 왔다고 알려줄 때 기뻐할 아이들을 상상하며 내가 더 설렜나 보다.



눈은 참 신기하다. 눈은 바깥에서 내리는데, 내 마음에도 눈이 내리는 것 같다. 며칠 전부터 오늘은 집에 있으면서 글을 꼭 한편 완성하겠다고 다짐하며 부담 아닌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부담감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가 편안한 만족감으로 덮였다. 지금 이대로의 기분을 짧게라도 글로 남겨야지 싶어서 새 창을 열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눈을 바라보는 마음 그대로를 글로 쓰고 있어 행복한 오늘이다.



하루 종일 눈이 내리려나 보다. 눈이 나의 작은 근심을 덮어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되는 그런 날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따뜻한 차 한잔 나누며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하루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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