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카톡 방에서 전날 뜨겁게 불태웠던 송년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8월에 성남시 시민 배우로 처음 만나서 뮤지컬 갈라 콘서트 무대에 함께 올랐고, 이번에 성남 문화 재단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축하공연을 하게 되면서 한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사람들이다. 공연 후 뒤풀이 겸 송년 모임으로 남한 산성의 작은 카페에서 포트락 파티를 가졌다. 각자 마련한 가지각색의 맛있는 음식과 서로를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 꾸러미. 모양새는 다르지만 무대와 삶에 대한 꿈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한 밤이었다. 카톡 방에는 전날 모임의 사진들이 올라오고, 늦게까지 남은 사람들은 연출 감독님의 노래에 귀 호강을 했다며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함께 추억하고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래요."
뜬금없는 문장이 신나는 대화 창에 툭 던져졌다. 무슨 말인가 했다. 대화 앞뒤로 이해해 보려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봐도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었다. 이 말을 던진 언니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더 이상 대화에 끼지 않았다. '지금 나만 이해를 못 한 건가?' 나는 속으로 계속 되물었다. 그리고 설마..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뉴스를 클릭했다.
"[속보] 비상계엄령 선포!"
'응..?'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머뭇거렸다. 인터넷 뉴스엔 속보라며 기사마다 비상계엄령이라는 단어가 가득했고, TV 화면 아래에도 커다랗게 비상계엄령 선포라는 빨간 자막이 떠 있었다. 그 시간 대통령은 담화문을 읽고 있었다. 눈을 의심했고,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진짜 실제 상황이라고..?'
방금까지 행복한 일상 속에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오 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티비를 함께 보던 아이들이 비상계엄이 뭐냐고 물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들에게 갑자기 무슨 세상을 넘겨주는 것인지 절망스러웠다.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집회의 자유가 사라지고, 언론과 통신이 통제를 받는 사회가 된다는데 그런 모습이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 건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아서 나 역시 아무런 답을 해줄 수 없었다. 한순간 암흑 같은 세상에 던져진 것 같아 두렵고 떨렸다.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를 이뤄내기까지 이전 세대들이 얼마나 힘들게 싸워 쟁취해 낸 것인지 수도 없이 들어왔고, 머리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눈앞에 40년을 후퇴한 역사가 되풀이된 순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이 두렵기만 했다.
담화문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해 보니, 비상계엄의 목표는 정부에 걸림돌이 되는 야당을 무력화시켜 제압하려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야당 대표들은 줄줄이 구속되는 것인가. 어디까지 잡혀갈까. 야당에 매달 당비를 내는 당원으로서 나도 이제 관리 명단에 올라가는 것인가?' 카톡 방에 현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는 메시지가 계속 올라왔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카톡 방은 나중에 허위사실 유포로 잡혀 들어가는 건 아닐까. 저렇게 기사를 퍼 나르는 사람들 조심해야 할 텐데.' 뉴스를 보니 국회 앞에는 의원들의 진입을 막는 경찰 병력에 대응해 많은 시민들이 모여 항의하고 몸을 던져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상황에도 천 원을 내는 당원의 신분을 신경 쓰고 내 안위만 살피고 있다니 부끄러웠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올라오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은 움직임에도 겁을 내는 소시민이 돼버린 건지 실망감에 슬프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뉴스를 잘 보지 않았다. 서로를 비난하기 바쁜 정치인들의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나 역시 무단히 정의라고 생각하는 편에 서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내가 옳다며 상대를 탓하고 있는 내 모습도 싫어졌다. 그때부터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한발 떨어져 완전한 중립의 자세로 바라보려고 했다. 어느 쪽의 주장이든 그들 나름의 최선일 거라며 정신승리의 자세로 판단을 하지 않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점점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돼버렸다. 현안에 대해 누가 뭘 하든 알지 못하니 편을 들 수도 없고, 잘못됐다고 욕할 수도 없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정치적 이슈에 분노하고 열폭하며 에너지를 쏟아 내는 것보다 훨씬 우아한 일상을 누렸다. 이런 삶이 지속됐다면 복잡한 정치적 이슈와는 얽힐 일 없이 평온하게 살아가는 법을 깨달았다며 떠들어 댔을지도 모르겠다.
'난 이 순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대로 두려움 속에 갇히는 소시민이 되는 것은 결코 내가 지향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두려움에 떨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결코 숨어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서 상식을 외치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한 사람에게 위임한 권력이 개인의 삶을 넘어 국가를 송두리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상기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나의 목소리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누구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간디는 비폭력은 인류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비폭력적이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비상계엄이 있던 밤.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기도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겨우 선택한 방법이 이따위 소극적인 방법이냐라고 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최선이고 사랑의 마음을 담은 것이니 욕을 먹어도 상관없다. 분노와 화에 에너지를 더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니까. 기도했다. 모든 것이 평화 속에서 유지되기를.. 한 사람을 더한 궁지에 몰아넣어 벼랑 끝에 서게 하지 않기를. 폭력은 폭력을 가져올 뿐이다. 그대로 멈추기를. 이 모든 것을 신이 도우시기를. (아멘) 난 시민들의 힘을 믿었고,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함을 믿었고,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믿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철회됐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두려운 시간이었기에 눈물이 나고 허탈했다. 끝나고 나니 화가 더 났지만 정의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힘이 나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모든 위험요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소중함과 과거 어렵게 지켜낸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더 감사하게 느낀 시간이 됐다. 오늘의 평화로운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이번 주말엔 몇 년 만에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내가 지켜내야지. 함께 하는 힘, 작은 힘을 더하는 것, 마음에 따르는 것은 우리가 가진 힘이고 그것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