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발견. 마크 브래킷. 북라이프. 2020.
대한민국 상처 받은 영혼을 달래는 멘토가 있다. 학부모들의 육아 고민에서부터 유년시절의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이다.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에 출연하여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학부의 마음까지 치유해주는 오은영 박사의 힘은 무엇일까. 모든 출연진의 이야기를 온몸으로 들어주는 경청과 수용이다. 오은영 박사는 사람의 고민과 말 못 할 상처, 어려움을 아무런 편견 없이 들어준다. 오은영 박사를 찾아온 한 아나운서의 고민은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봐 자신의 우울함, 속상함을 털어놓지 못한다는 것. 이렇게 계속 꾹꾹 참고만 지내는 것이 버겁고 앞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오은영 박사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오은영 박사의 대답을 들으며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마크 브래킷의 「감정의 발견」이다. 예일대 감성 지능 센터장인 마크 브래킷 교수는 유년시절 제대로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지하지 못하기에 표현하지 못했고 수용받지 못했던 그는 학교폭력, 우울증 등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중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다스리는 법을 알려준 마빈 삼촌 덕에 자신이 이렇게 성장했다고 이야기하며 감성 지능 이론을 공부하고 현재는 감정을 다루는 다섯 가지 기술 RULER를 활용하여 직장, 학부모, 학교를 대상으로 감정 수업 프로그램을 전파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감정을 다루는 다섯 가지 기술은 감정 인식하기(Recognizing), 감정 이해하기(Understanding), 감정에 이름 붙이기(Labeling), 감정 표현하기(Expressing), 감정 조절하기(Regulating)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오해하고 살아간다고 책은 말한다. 타인의 표정만 보고 감정을 짐작했다가 오해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많다. 주관적인 감각으로 필요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 감정 인식은 연습을 통해서 비언어적 요소, 목소리의 변화 등과 같은 정보를 통하여 어떤 감정이 생겨났음을 아는 것이다. 감정을 인식하더라도 어떤 감정인지 틀릴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다음 단계인 ‘감정 이해하기’ 전략이 필요하다.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단서는 “왜?”이다. 왜 그러한 감정이 생겼는가. 감정의 밑바닥을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그러한 감정이 생겼는지,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감정을 유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혹시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장소와 관련한 것인지, 이 감정이 생기기 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와 주고받다 보면 어떤 감정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명확해진다. 저자는 이러한 능력을 ‘형태 재인’ 능력이라고 말한다. 시각정보와 장기 기억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행동이 보내는 신호를 바탕으로 감정을 읽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감정을 이해하였다면 올바른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명확하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그에 대한 대응이 달라진다. 책에서 예시로 들었던 두 가지 감정은 질투와 시기심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지만 두 단어는 바꾸어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질투는 관계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지만 시기심은 타인을 갈망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질투와 시기심을 구분하지 못하면 다루거나 해소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정확하게 감정을 구분하고 이름을 지어야 감정을 올바르게 다루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저자가 바라보았을 때에 우리 사회는 암묵적으로 감정에 침묵하는 법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두 행복하다는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느라 서로의 진짜 감정을 듣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사회에서 진정한 감정을 감추려는 욕구와 표현하려는 욕구가 충돌하며 많은 문제가 생긴다. 앞서 오은영 박사에게 상담을 신청한 아나운서의 고민이 어쩌면 이 사회의 정서적인 취약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점점 외롭고 고립되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공부보다 가장 필요한 공부는 바로 감정 공부일 것이다. 감정 표현에 서툰 아나운서에게 오은영 박사는 말한다. “인간은 기쁨과 즐거움만 경험하며 살 수 없습니다. 화남, 속상함, 슬픔, 섭섭함, 억울함 등 부정적인 감정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오은영 박사가 말한 내면의 힘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감성 지능이 아닐까.
영원한 행복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며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며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잠재력을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을 기르려면 유쾌한 기분과 불쾌한 기분을 마음대로 조절해 모든 감정을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제1부 우리에게는 감정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 37쪽-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면 삶이 나에게 주는 쉼표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내가 많아 괴롭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