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요나손. <달콤한 복수 주식회다>, 열린책들
**그 신화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자기 어머니와 결혼했다. 그렇다면 이 케빈이라는 친구가 오이디푸스처럼 자기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다는 얘긴가?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 <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중에서
**복수는 주인공의 의도다. 그렇다면 복수를 원하는 주인공의 동기는 무엇인가? 프로타고니스트의 성격을 발전시킬 때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 독자와 주인공을 동정하게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복수의 과정이 주인공의 가치를 왜곡시키게 하고 싶은가? 작가는 원인과 결과, 범죄의 성격이 희생자에게 미친 영향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플롯은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탐구한다. 행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등장인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중에서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복수'의 플롯을 사용하였다. 보통 '복수'라고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강력한 범죄, 억울한 희생자. 법과 제도권에서 보호받지 못한 울분. 그러나 일상적으로 소소하게 복수는 '갚아주겠다', '앙갚음'이란 개념으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집과 이웃의 경계선 즈음에 거슬리게 놓는 냄새나는 쓰레기, 주차라인을 넘어서 항상 빡빡하게 주차를 하도록 하는 옆집 이웃, 교실에서 아이들끼리 생활할 때 '복수할 거예요.'라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이다.(아이들은 어른들이 받아들이는 무게만큼 무거운 뜻이 아니라 억울함을 꼭 갚아주고 싶다는 '앙갚음'의 개념으로 사용한다.)
요나스 요나손은 복수의 무게감을 ‘달콤함’으로 중화시키며 이념적 갈등과 예술, 자본주의의 다양한 색을 유머와 함께 버무려 한 편의 소설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한걸음 떨어져서 관망하는 듯한 문체에서 등장인물의 고민의 무게는 제법 가벼워지고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등장인물들을 따라가느라 잠시 숨 고를 틈이 필요하지만 –이따금씩 불쑥 등장하는 외국인의 이름에 당황스러워 앞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지만 – 어느새 숨바꼭질의 재미를 느끼듯 작가의 호흡을 따라가게 된다.
소설은 현재, 스웨덴을 소재로 하면서 예술사적 흐름과 함께 병렬적인 구조로 서사를 이어간다. 그리고 예술사의 흐름과 등장인물을 빗대어 표현하는 은유 역시 소설을 음미하는 한 축이다. 신고전주의 인상파 표현주의에 이르는 미술사적 흐름을 현재 복수를 진행하고 있는 여러 등장인물과 연관 지어 갈등관계와 해결 과정을 드러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큰 미술사적 흐름은 신고전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가 있어 간단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신고전주의는 고전적․역사적 내용을 엄숙하고 애국심이 넘치는 모습으로 표현한 흐름이다. 공공을 위한 개인의 희생, 애국심 등을 주제로 매우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했다.
이러한 흐름에 반대하여 탄생한 사조가 바로 인상주의, 인상파이다. 가장 큰 사회․기술적 변화는 바로 사진기의 탄생이었다. 사진기의 탄생으로 더 이상 실물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무의미해졌다. 사진기가 아니더라도 똑같이 복원되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작가의 이름이나 개성은 필요 없었고 자신이 죽거나 다치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 아무런 문제 없이 작품이 만들어지는 미술사조 안에서 조금씩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작가 스스로 주체적으로 색채, 색조, 질감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인상파는 특히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와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를 위해 야외를 소재로 빛을 포착한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모네, 마네, 피사로,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갱, 고흐 등이 있다.
누군가 말했다. 역사는 집단에서 개인으로 자유를 향해 흐르는 여정이라고. 미술사 역시 변화하고 있었다. 화가가 직접 바라본 순간의 빛을 연구하던 그림 역시 자연의 재현으로 보고 예술의 목적을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여기며 새롭게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을 이용하는 표현주의가 시작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연, 실물, 인간의 재현이 아니었다. 회화는 점차 구성(구도)과 균형의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 개념과 멀어졌고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표현주의는 독일에서 어떤 나라보다 발전하였으나 나치에 의해 탄압받으며 해체되었고 이러한 배경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막스 페히쉬타인’의 일화에서 짤막하게 소개된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로 이르마 스턴의 멘토로서 등장하는 그는 나치에 의해 탄압을 받지만 다행히 추후 베를린 대학에서 미술대학 교수로 활동하게 된다. 보태어 설명하자면 20세기 들어 예술상에서의 모더니즘은 20세기 초, 특히 1920년대에 일어난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이즘 ·형식주의(포멀리즘) 등의 감각적 ·추상적 ·초현실적인 경향의 여러 운동을 가리켜 말하는데, 소설 속에서 옌뉘는 모더니즘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빅토르의 안목과 대척점을 이룬다. (예술사와 인물의 성격, 가치관을 대비하는 소설 속 장치이다.)
소설의 시작은 ‘아돌프’라는 예술가에 대한 짤막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의 풀네임이 등장하진 않지만, 맥락을 살펴보면 아돌프 히틀러로 예상할 수 있다. 독단적이고 다른이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빅토르로 대변되는 인물로서 히틀러에 의해 탄압받았고 미술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표현주의를 생각해보면 아돌프에 대한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하는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외국인 일반, 특히 흑인은 페미니스트요, 진보주의자요, 생태주의자요, 사회 민주당 지지자이자 동성애자로서, 이들은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국가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빅토르 알데르헤임은 갈등의 시작이자 복수의 대상이다.
빅토르는 성공하기 위하여 갤러리에 취직하고 자신의 취향과 신념에 맞지 않는 작품들을 논하며 사업수완을 펼친다. 갤러리 주인의 눈에 들어 그의 딸과 결혼할 속셈을 숨긴 채 노인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갤러리 주인의 딸은 옌뉘로 빅토르보다 열아홉 살 어린 여자다. 순조롭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빅토르에게 한 창부가 찾아온다. 흑인 남자아이와 함께.
그 아이의 이름은 케빈. 빅토르의 아들이라고 창부는 이야기한다. 창부는 에이즈에 걸려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며 케빈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곧 노인이 죽고 옌뉘와의 결혼이 얼마 안 남았는데.. 빅토르는 시골 아파트에 케빈이 지낼 곳을 마련해주고 자신을 ‘후견인’이나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후 일주일에 한 번씩 피자를 채워 주며 자신의 할 일을 다한다.
마침내 케빈이 열여덟 살 되는 날, 케빈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꾸미게 되고 그 후로 등장하는 두세 명의 등장인물과 예술가의 삶과 함께 복수 회사의 창립과 케빈, 옌뉘의 만남과 이야기가 시작된다.
등장인물의 현재 시점과 중간중간 나오는 예술가들은 인물들의 삶으로 구현된다. 시대적 흐름 사이의 빈 공간을 이어주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바로 소 올레 음바 티안과 후고 함린이다. 한 사람은 원시적인 순수함과 예술의 정수로서 간결하고 분명하며 유머를 만든다. 문명화되지 않은 마사이 부족 원시성과 순수성과 거짓 없고 솔직한 그를 통해 다시 떠올리는 품위와 존중에 대하여 작가는 어쩌면 분노와 화가 많은 우리 사회를 향한 공감과 포옹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르마 스턴 박물관을 여러 번 방문했습니다. 당시 나는 '다리'가 되어줄 만한 화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와 193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들을 연결해줄 다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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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절망, 희망 등등 독자들이 제 책에도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고
제 글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글의 이면에 있을지도 모를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2021. 서울 국제도서전. '작가의 시대' 요나스 요나손 인터뷰 발췌-
더불어 배고픈 예술가의 삶이 아닌 예술을 향유하고자 했던 창의성이 넘치는 후고 함린 역시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예술과 자본주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소설의 복수의 플롯을 완성해나간다. 명석한 두뇌와 돈을 향한 감각으로 광고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던 그는 소소한 이웃을 향한 복수를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복수 주식회사를 설립한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으나 전혀 돈 되지 않는 케빈과 옌뉘를 돕던 중 그는 어느 순간 복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게 정말 그렇게 재미있을까? 복수는 성장 가능성이 큰 비즈니스라는 사실을 후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누군가의 발을 밟게 되면, 밟힌 사람은 밟은 사람이 발 전체를 잃어야 마땅하다고 느낀다. 그다음에는 발이 없게 된 사람이 그렇게 만든 사람의 머리가 날아가기를 원한다. 이 모든 것은 분명히 돈을 가져다줄 수는 있었지만 더 나은 세계를 위한 의미 있는 기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 맛나 풍미의 마멀레이드만큼도 의미 있지 못했다.
- < 달콤한 복수 주식회사,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중에서
진지한 순간에도 한걸음 떨어져 여유 있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고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모든 이들을 엮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백인이면서 흑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화폭에 담았던 이르마 스턴처럼 작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복수’라는 플롯의 가장 강렬한 정서적 정의는 ‘화합’과 ‘포옹’이 아닐까. 소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잇고 있다. 인종과 나라와 대륙과 미술사조 간에 다리를 놓는 무수한 등장인물들. 복수라는 플롯마저 서로를 잇는 연결고리로 풀어쓴 작가의 의도를 오랫동안 생각하게 한다.
가볍게 읽는다면 한 없이 가볍고 유머 있는 소설이지만 작가의 부탁처럼 오랫동안 시선이 머무는 소설이길 바란다. 책을 읽으며 의외로 미술사적 향기가 너무 짙게 느껴져 당황스러울 수 있는 독자들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걱정 마시길. 이 글을 읽은 당신은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