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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Jul 13. 2022

종합선물세트 같은 도시 예루살렘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올라갔으리라 추정되는 길목에 조성된 비아 돌로로사 (Via Dolorosa)를 답사하기로 했었는데 중간에 다마스커스 대문으로 빠지는 바람에 색다른 모습의 무슬림 시장에서 정신을 빼앗겼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영락 없이 꿈틀거리는 지름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끝내 지갑을 열었다가 무슬림 장사꾼들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또 가슴을 쥐어뜯고 말았다. 제발 제가 낸 돈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셔서 안전한 이스라엘을 만들어주세요. 암튼 예루살렘이 좋은 점은 도시 하나에서 다른 문화권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는 점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 시신을 가지고 내려와 유향을 뿌리고 무덤을 만들고 그리고 부활했던 예수의 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유적지이다. 사실 정말 저 자리에 골고다 언덕이 있었는지, 마치 후대에 예루살렘 가이드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관광산업을 부흥시키자는 선견지명으로 바로 옆에서 시신을 정리하고 무덤을 만들었는지, 아직까지 추측과 심증 이외에 뚜렷한 증거는 없다지만 그래도 그분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같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곳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게다가 카톨릭, 아르메니아, 에디오피아, 콥드 그리스, 시리아 등 기독교를 대표하는 종파들이 한꺼번에 위치해 있어서 세상 어디에서 보았던 성당보다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오른편 창문 밑 사다리는 무려 200년이나 저 자리에 지키고 서있었단다. 그 이유는 저 성당을 수리하거나 보수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저 성당에 위치한 여섯 종파들의 만장일치를 받아야하는데 지금까지 어떤 사안에서도 한번도 만장일치를 얻어내지 못했고, 심지어 저 사다리를 옮기는 데조차도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저 곳은 예수의 시신에 향유를 부었다는 곳. 마침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의식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전세계에서 기독교를 공식종교로 정한 최초의 민족이라고 하니 이제 기독교는 신앙을 넘어서 지키고 보존해야할 민족의 DNA가 되어버렸을듯 하다.



성서에서만 읽었던 여리고성이 있던 곳이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대가 7일 동안 돌면서 나팔을 부니 함락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저기에서 출토된 유물의 연대를 따져보면 대략 시간이 맞아 떨어진단다. 더 놀라운 것은 사진 아랫쪽에 당시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주거지의 모습이 상당히 완벽하게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혹시 여호수아가 보낸 첩자를 숨겨주고 창문에 붉은 천을 걸어 여리고성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구했다는 라합이 살던 집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게 된다.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과 여리고도 불안함이나 긴장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위험의 가능성은 언제나 잔존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랑곳 없이 관광객들을 맞고 흥정하고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을 안내했다. 베들레헴이 위험하기도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을 때 좀 힘이 들거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오늘은 시내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단체관광에 합류를 했지만, 심지어 국경에서 여권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 


목동들이 추울 때 쉬던 동굴이라는데 12월 이스라엘이 나름 춥고 가끔 눈도 내리기 때문에 이곳에서 불을 지피고 몸을 녹였을 가능성이 크단다.  그래서 당시 목동들이 예수의 탄생에 관한 소식을 맨 먼저 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 가운데 있는 사람은 팔레스타인 가이드인데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안내를 혼자 도맡아 한다.

예수의 말구유가 놓였던 곳. 남이 찍은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보게 되니 왠지 가슴이 숙연해진다.


심히 좁은데 사람마저 장사진을 이뤄 자칫하면 무고한 생명들이 압사할 것 같아 보이는, 그래서 트럼프의 망언이나 테러'만큼' 위험해 보이는 예수탄생성당에서의 고행을 마치고 찾아간 팔레스타인의 다른 도시 여리고(예리코)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리고에 진입하자 도로 여기저기 검게 탄 흔적과 잔해들이 보이는데 트럼프 반대시위를 하는 팔레스타인들이 길거리에 타이어를 태우고 시위를 했기 때문이란다. 그 여파로 여리고는 며칠 동안 계속 폐쇄되었다가 너무 다행스럽게도 며칠 만에 처음으로 오늘 외부손님들을 맞는다고 했다. 여리고로 오는내내 보이는 육중한 분리장벽들 때문에 마음이 좀 싸했는데, 막상 팔레스타인에 오니 너무 활기차게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치들 때문에 골치가 싸해진다 ㅡ..ㅡ 오늘도 암말 없이 잘 견뎌준 내 소듕한 발목아. 잘 걸어줘서 고마워! 


예수가 태어난 말구유가 있던 장소. 거의 백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지만 막상 말구유가 놓은 곳은 저렇게 두어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문을 통과해야갈 수 있다. 줄에 서있을 때는 멀리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보니 계단도 가파르고 좁아서 사람들이 뒤에서 밀면 순식간에 압사당하기 딱 좋을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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