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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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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 Mar 01. 2023

1. 나도 자살할 수 있게 되었다

난 자살하는 게 꿈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멋지게 사는 것보다 멋지게 죽는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죽을 때까지는 너무도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았고 그 많은 시간을 나 혼자서 꾸역꾸역 채워나가는 것은 너무 재미도 없었고 지루해 보였다. 마치 재미없어도 채널을 바꾸거나 끌 수조차 없는 지루멸렬한 영화를 봐야 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 재미없는 영화를 끄는 방법은 오직 내 목숨줄을 끊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죽을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난 멋진 자살을 준비하는 것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한강변에서 몸을 던진다던가 높은 데서 떨어진다던가 목을 매고 싶지는 않았다, 한강에 떨어지면 며칠 뒤에 퉁퉁 부운 시신으로 발견될 거고 높은 데서 떨어진다거나 기차에 몸을 던지면 몸이 산산조각 날 뿐만 아니라 내 죽음을 목격한 이들에게 영원한 정신적 충격을 줄 것이고 목을 매달아 죽으면 혀가 징그러운 정도로 몸 밖으로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곰팡이 핀 내 방에서 혼자 죽게 되면 몇 달이 지나 적당히 부패된 상태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난 멋진 자살을 원했다. 


내가 상상하는 멋진 자살이란 군인이 되어 전장에 나가 총을 맞고 영웅스럽게 죽는 거라던가 차에 치일 것 같은 아이를 위해서 몸을 던지다가 세상을 하직하거나 한겨울 깊은 사색에 잠겨 술을 마시고 헤매다가 예술가처럼 길거리에서 얼어 죽거나 아니면 스위스에 가서 친구들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조력자살을 하거나.....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멋있는 자살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없었다. 


군인이 아니니 위험한 전장에 나갈 일도 없었고 나 같은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은 공연히 아이를 구한다고 나섰다가 도리어 아이를 더 큰 불행에 빠뜨릴지도 모른다. 정말 한겨울에 술을 먹고 거리를 돌아다녀 보기는 했다. 눈을 떠보니 난 병원 안에 있었고 며칠간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비급여 항목이라 엄청난 병원비를 지불해야 했다. 그리고 난 스위스에 갈 재정적 여력도 없다. 그러나 죽기 살기로 죽을 노력을 하면 어떻게든 기회는 올 것이다. 




정말 머리도 안 감고 옷도 며칠 안 갈아입은 초췌한 모습으로 길거리를 헤매다가 난 땅바닥에서 긁는 복권 한 장을 주었다. 누군가 사놓고 잃어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별생각 없이 그 복권을 집으로 가져와 긁어보았고 


난 2천만 원이 당첨되었다. 


다음날 부랴부랴 상금을 타러 은행에 달려가 보았으나 꽤 많은 세금이 공제되어 실지로는 얼마 안 되는 돈을 받았다. 그래도 일확천금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큰 돈이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난 이 돈을 받아서 뭔가 호사로운 것을 사거나 빚을 갚는 것 따위에 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살할 돈이 생겨서 아주 기쁘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이 돈만 있으면 한강변에 가고, 목을 매달지도, 농약을 먹지도, 높은 데서 떨어지지 않고서도 멋진 자살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자살할 계획을 수립하고 난 후 난 먼저 집안을 정리했다. 내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깨끗하게 방을 치웠다. 물론 부모님께는 내가 죽으러 간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주인에게는 내가 한 두 어달 집을 비울 터라 말하고 두 달치 월세를 미리 지불하였다. 나중에 내가 죽은 것을 알게 되면 충격은 크겠지만 난 그래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놓았다. 유서는 따로 써놓지 않았다. 


나는 죽기 위해서 인천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죽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죽기 전 꿈꾸던 세계여행을 해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적당히 다니다가 딱 죽기 좋은 곳이 나오면 거기서 자살을 하는 것이 내 목표였다. 인터넷을 통해서 먹기만 하면 고통 없이 죽는다는 약도 구했다. 그 약만 잘 듣는다면 자살을 하기 위한 내 계획은 완벽해진다. 


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살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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