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자살하기
내 목적지는 대만이었다.
대만은 내가 가진 예산으로 가기에 가장 좋은 곳이었고 무엇보다 언젠가 가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던 곳이기도 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백두산보다 높은 산들이 도처에 널려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다고 해서 항상 궁금해하던 곳이다. 그러나 그런들 뭐 하겠는가. 난 가자마자 자살해 죽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리 멀지 않아 비행기 안에서 마을이 바뀔 염려도 없었다.
그러니 대만은 나의 첫째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지가 될 터였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대만땅을 밟으니 내가 목숨을 끊을 나라라는 생각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쑥 들어가 버렸다.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잠시 그늘 안에 들어가서 나의 다짐을 상기했다. 더우면 죽기에 더 좋지 않은가. 난 이곳에 죽으러 왔으니 날씨야 어쩌든 상관없다. 혹시라도 내 주검을 발견하지 못하면 금방 부패해서 백골이 되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긴 했다.
난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죽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숙박 같은 것은 예약하지 않았다. 내 계획은 이러했다. 내가 조사해 본 바에 의하면 중정기념관이라는 곳 앞에 커다란 광장이 하나 있었다. 그 광장에서 내가 준비한 약을 들이켜고 보기 좋게 광장에 쓰러져 죽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살이라기보다 지병으로 세상을 마감했는지 알 것이고 그러면 낯선 타국에서 목숨을 잃은 나를 동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광장에 죽은 채 누워있는 나를 방치해 두지도 않을 것이고 부모님도 그냥 내가 여행하다가 죽은 줄 아실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꽤 멋있었다.
공항에서 중정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마치 내 자살을 도와주는 것처럼 아주 쉽고 간단했으며 갈아타는 일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유별나게 활기찼다. 사람들은 얼핏 비슷해 보였지만 몸대가 땅땅한 남자들과 체구가 아담한 여자들을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공항에서 약 한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중정기념관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큰 복병이 있었다. 그곳엔 나의 죽음을 지켜봐 줄 사람들이 없이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기에는 날씨가 너무 더웠다. 게다가 여러 가지 중요한 건물로 둘러싸인 그 광장은 바닥이 온통 하얀색이라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과 아래서 솟아나는 복사열이 샌드위치처럼 위아래로 나를 누르고 있었다. 대체 바닥을 하얗게 깔았을까. 만약 내가 권총자살을 한다면 그 피색깔이 더 아름답게 보일 것 같다.
약을 먹지 않고 그냥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한 시간 내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약병을 꺼냈다. 손이 떨린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후세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내가 평생 꿈꾸어 오던 대로 멋진 자살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흥분이 더 컸다.
나는 고통 없이 죽는다는 약이 담긴 병뚜껑을 열어 입으로 다가가 망설임 없이 목으로 들이부었다. 고통은 없애준다지만 혀가 느끼는 감각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고약한 화장실 냄새가 났고 목이 심하게 따끔거리더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난 구토를 하지 않으려고 배에 온통 힘을 주며 잠자코 기다려 보았다. 효과가 나타났다. 잠이 왔다. 그리고 살짝 머리가 아팠다. 다리에 힘이 빠지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죽는 게 이런 것이로구나... 나는 죽음의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더위를 먹고 픽 쓰러지는 관광객의 모습이었다.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고 있노라니 뇌리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락스를 사랑하는 모임'의 사람들이었다.
난 그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약을 구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다. 물론 자살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여러 기관에서 자살방지캠페인을 벌이며 자살의 해악성과 하찮아 보이는 인생의 의미, 날 별로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는 주변인들이 느낄 절망감 같은 것들을 강조하는 내용의 글만 팡팡 터져 나올 뿐이었다.
가끔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농약을 먹고 죽었다가 반신불수가 된 사람들, 한강에 빠졌다가 뼈가 다 부러져 헤엄도 못 치고 바다고 휩쓸려 갈 뻔한 사람들, 목을 매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사람들. 그 이야기들은 죽음의 문을 두들기던 그들은 모두 막상 죽음을 실행하는 순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났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살을 말리는 내용의 글이 실린 한 사이트를 보다가 화면 구석진 곳에 점 하나가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혹시 모니터에 먼지가 묻었나 해서 손으로 살살 긁어보았으나 닦이지 않았다. 그냥 점이라고 하기엔 뭔가 심상치가 않았다. 뭔가 반짝반짝하는 것이 클릭을 해달라는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일단은 클릭을 해보기로 했다. 그러자 어떤 사이트가 모니터를 채웠고 상단엔 '락스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글귀가 크게 쓰여있었다. 개인이 돈을 내서 만든 홈페이지가 아니라 어느 인터넷 회사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딱 이렇게 게시판만 덩그러니 있었다.
모임안내
정모안내
구입안내
나는 권한이 없어 접근할 수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