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붉은숲 3
게다가 가족들에게 쓰는 편지에서조차 자신이 어디에 나와 있는지 사실대로 적을 수 없었다. 마당의 사과나무는 잘 자라고 있는지, 사랑하는 부모님과 나타샤가 어려운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지, 일상의 그리움이 가득한 편지 속에 전장의 피냄새나 갈기갈기 찢겨져 스러진 얼굴들에 대한 잔상이 묻어나지는 않는지 그의 편지는 라트비아로 가기 전 언제나 감시를 당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병사들은 소련군인들 사이에서 영혼이라고 불렸다. 페르시아어로 그들은 두스만이라고 불렸는데, 그 말이 러시아어로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와 발음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름대로 그들은 정말 귀신처럼 여기저기서 출몰을 했다. 특히 알료샤가 아프가니스탄에 오기 전 유일하게 배웠던 낙하산 침투법은 그곳의 험악한 산악지형에서는 자살행위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낙하산 부대원들도 장갑차에 의지한 채 정찰을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산이 많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장갑차는 오히려 다른 정찰병들의 발목을 묶을 때가 많았고, 정식 군사교육은 받지 않았지만 그곳의 산지형을 완전히 알고 있는 영혼들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소련이 전달해준 지식은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차라리 그레고리우스 대성인처럼 용이나 잡는 법이나 배울 수 있었으면 배나 실컷 불릴 수 있었을 텐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투는 밤이고 낮이고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주변의 총탄자리를 검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새로 박힌 총탄자국을 찾아 방향을 파악한 후 그 곳을 향해 헬기를 띄워 무차별 공습을 해댔다. 공습을 당한 마을에는 영락없이 여인들과 노인, 아이들의 시신만 발견되었다.
영혼들 역시 악랄했다. 러시아 군인을 생포하면 악랄하게 죽였고, 전지에 쓰러져 있는 군인들을 발견하면 가만히 놔두지 않고 목을 베거나 귀를 잘라갔다.
알료샤는 카추사 로켓포 소리가 끔찍이도 싫었다. 거대한 말벌 수 십 만 마리가 머리 바로 위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그 굉음. 난자당한 소련병사들과 영혼들, 폭격 당한 마을 주민들 주변으로 까맣게 모이던 말벌들. 꿈속에서 말벌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귀가, 머리가, 코가, 팔이 말벌들의 다리에 매달린 채 지평선 너머로 날아가 버리는 그 지독히도 생생한 꿈에서 깨어나면 그는 허겁지겁 몸을 더듬어 보기까지 했다.
라트비아에 다시 크리스마스가 왔을 무렵, 새로운 병사들이 부대로 배치되었다. 그 중에는 알료샤의 고향인 시굴다에서 태어난 울디스라는 이름의 병사가 한명 있었다. 천신만고 끝내 모래사막에 도착한 울디스는 누렇게 뜬 얼굴로 정신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고향말로 인사를 건네는 알료샤의 말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울디스가 받았던 정찰교육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대신 알료샤로부터 무전기 주파수를 맞추는 법이나 먹을 수 있는 뱀을 고르는 방법이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밤에 혼자 남았을 때 살아남는 법 등을 새로 배워야 했다. 그곳에서 생존에 필요한 제대로 된 방법들을 일러주는 이는 없었다. 게다가 울디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 모두, 이 사막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꽃잎 같은 청년들이 황량한 사막에 목숨을 내려놓고 구렁이의 밥이 된다는 사실 역시 고향의 부모들이 알 턱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