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g으로 살아보기
2010년 6월 30일. 담배를 끊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2021년 7월 31일. 월급을 끊은 더 역사적인 날이다. 담배를 끊은 후로 11년을 더 월급을 받아먹었으니,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그래서 얼마나 끊기 어려운지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월급쟁이의 장단은 명확하다. '따박따박'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급여의 정기공급. '월급'을 놓지 못하는 첫 번째 장점이다. 자금 운용 면에서 계획된 삶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심적 안정을 준다. 출근을 하는 한 급여가 들어온다는 그 믿음. 두 번째는 '명함'이다. 꼴랑 종이 한 장에 몇 글자 적혀있지만, 그 한 장으로 더 이상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레 호칭이 정해지고, 그 종이에 적힌 대로 사회에 받아들여진다. 한국 사회에서 이 부분은 필요 이상으로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은행'을 내게 호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 쉬운 소득증빙으로 대출이 용이해지고, '고갱님'일 지언정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회사와 연이 끊겼을 때 은행에 가보면 안다. 그들이 얼마나 내게 냉담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단점은 이렇다. 내 시간이 없다. 주말을 제외하고 해 떠있을 때의 시간은 모두 내 시간이 아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일주일의 휴가로는 유럽여행 따위는 늘 '다음에'라는 말로 대신한다. 올해도 내년에도. 또 한 가지는 어느 정도 '정해진 미래'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월급은 생각만큼 드라마틱하게 오르지 않는다. 약간의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서 엑셀에 10년 치의 연봉을 계산해 보면, 쉽게 내 미래를 엿볼 수 있다. 더 쉽게 보려면 내 윗사람을 보면 된다. 조금 더 끔찍한 미래는 월급이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동안 잘 준비해 놓지 않으면, 월급이 끊기는 순간 절벽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급여 생활자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회사를 벗어나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다. 특별한 기술이 있지도 않고, 더 이상 부장도 이사도 전무도 아닌 이름 석자로 세상에 서야한다.
늦었지만, 사실 좀 많이 늦었지만 나는 월급을 끊었다. 그리고 다른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프리랜서의 삶이라고 하기엔 가진 기술이 너무 없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왠지 전문적인 분야에서 자유롭게 프로젝트를 골라 참여하는 프로의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난 프리랜서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찾은 단어가 'Gig'이다. 원래는 재즈밴드에 즉흥적으로 참여하는 연주자를 말하지만, 요즘은 그냥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돈을 버는 21세기형 일용직쯤 되는 것 같다. 아직 준비가 덜 됐음을 직감했지만, 마음이 그걸 확실하게 알아차리기 전에 저질러 버리기로 했다. 어설프게 고민하다가 실행을 미루느니 그게 무엇이든 그냥 부딪혀 보는게 낫다.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언제나 지난한 시간을 거쳐야 한다.
담배를 끊을 때 겪었던 금단현상보다 몇 배는 더 지독할 '금전 현상'을 나는 이제 막 겪을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