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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균인간 Jan 02. 2022

안전하다

생존본능

새해 첫날부터 악몽이라니. 슬럼화 된 거리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고 누렇게 바랜 엘리베이터 버튼을 힘주어 누르자 바닥이 무릎쯤 되는 높이에서 멈춘 채 문이 열렸다. 상식 밖으로 긴 전신주에는 낡은 전압기가 검게 그을린 채 매달려 있었는데, 한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쓰러져 앞 건물 유리창을 때렸다.


파편이 내 눈에 들어오면서 잠이 깼다. 작은 신음과 함께 몸을 일으켰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금 벌고 많이 행복하겠다며 다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속 조그맣던 걱정이 어른이 되려 하나보다. 벌써부터 이러는 건 아니지. 이런 식이면 꿈꾸던 생활은 시작도 못해보고 다시 취업을 할 수 도 있겠다. 안된다. 절대 안 된다. 


AI가 많은걸 대신해 주고, 우리는 그 위에서 신 행세를 하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동물이다. 고도로 진화한 두뇌를 가진 듯싶지만 그것은 그저'생존'을 진화였을 뿐 '행복'을 위한 진화는 아니다. 이성을 앞세워 '지금이 행복한 시간이야'라고 아무리 정의해줘도,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는 '생존본능'앞에 이성은 언제나 열세다.


지금이 원시시대라면 예민함을 유지해서 맹수를 피하고 영민하게 독초를 골라내야만 한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별일 있겠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일찍 죽기 십상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생존본능은 아주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여긴 정글도, 원시시대도 아니다.  생존 본능은 그저 일 년에 몇 번, 거친 운동을 할 때나 눈길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을 때 잠깐씩만 나오면 족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비집고 나오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발목을 단단히 잡히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진부하고 재미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구닥다리 본능이 작동하지 않도록 자꾸 달래줘야 한다. 최신 이성을 쓰자.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여긴 정글이 아니야..' '원시 시대는 더욱 아니고..'

'그러니 안심해' 

'안전하다..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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