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상이 Mar 19. 2024

커다란 새가 마을 위를 돌고 있다.

-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 

 마치 눈이 마을을 덮은 것처럼 지붕이 하얀색으로 되어 있다. 그 위로 긴 꼬리를 가진 새가 날고 있다. 

 정찰병처럼 돌고 있다. 분명 이 마을에 일이 생겼다. 

 표지 그림에 대한 설명을 보니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이다. 새는 사냥을 하기 위해 하늘 위를 날고 있다. 뭘 사냥할까. 눈이 오고 추운 날씨엔 먹이를 구하기 힘들다. 


 이 소설의 배경 역시 겨울이다. 펄롱은 석탄, 토탄, 무연탄, 분탄, 장작을 파는 사람이다. 매서운 추위에 주문이 많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엄마는 열여섯 살 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일하다 펄롱을 가졌다. 가족들이 외면을 할 때 미시즈 윌슨은 그녀를 해고하지 않고 계속 일하게 해 주었다. 펄롱은 기술학교를 다니다가 석탄 야적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일머리가 있었고 건실한 개신교도 특유의 습관으로 일찍 일어났고 술은 즐기지 않았다. 지금은 아내가 있고 딸이 다섯이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믹 시노트네 애가 오늘 또 땔감을 주우러 길에 나와 있더라고.”

 “그래서 차를 세웠어?”

 “장대비가 내렸잖아.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 하고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좀 줬어.”

 “어련하시겠어.”

 “한 백 파운드는 얻은 것처럼 좋아하더라.”  21쪽     

 펄롱의 한 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을 보여주고 있다. 추운 겨울처럼 혹독한 시기를 다루었다. 조선소가 문을 닫고 많은 회사가 직원들을 해고한다. “경매업자는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다며,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파는 편이 쉽겠다고 말했다.(24쪽)”


 강 건너 언덕 위에 있는 수녀원은 위풍당당한 건물이며 기초 교육을 담당했고 직업 여학교와 세탁소도 운영했다. 세탁소는 평판이 좋았다. 뭐든 깨끗해져서 돌아온다고 했다. 또 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를 받으면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더러운 세탁물에서 얼룩을 씻어내면서 속죄하는 거라고들 했다. 모자 보호소라 미혼모의 아기를 숨기거나 입양시키는 일을 한다고도 했다. 뒷소문은 무성했고 사람들은 반은 믿고 반은 흘러 보냈다. 


 펄롱이 수녀원에 석탄을 주러 갔다가 신발을 신지 않고 끔찍한 회색 원피스에 검은 양말을 신고 바닥을 닦는 한 아이를 보게 된다. 그 아이는 펄롱에게 도와 달라고 한다. 강까지만 데려가 달라고 한다. 아니면 대문 밖으로만이라도 나가게 해 달라고 한다. 머뭇거리는 사이 수녀가 들어오고 펄롱은 수녀원을 나온다. 


 펄롱은 마음이 혼란스럽고 힘들다. 아내에게 말하자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그때부터 펄롱은 마음에 추운 겨울이 온 것처럼 허전하고 답답하다. 

 그러다 석탄광에 갇힌 소녀를 발견한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내 아기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뭐라고?” (71쪽)


 펄롱은 결국 그 아이(세라)를 데리고 나온다.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119~120쪽)”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은 지나갔다.(121쪽)”


 이 책은 긴 여운을 남긴다. 

 생각이 많아지게 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이 책은 짧다. 짧아서 더 좋다. 읽는 사이사이 생각을 하게 된다. 

글귀의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작가에 대해 궁금해졌다. ‘맡겨진 소녀(foster)’를 샀다. 

한 소녀가 등을 보이고 걷고 있다. 곧 태어날 아이 때문에 소녀는 킨셀라 아주머니 집에 맡겨진다. 소녀의 아버지는 무심하고 정이 없어 보인다. 아이를 맡기면서 아이에 대해 좋은 말 보다 많이 먹는다느니 키우기 힘들다는 말만 하고, 심지어 아이의 가방을 내려주지 않고 인사도 없이 가버린다. 


 나도 동생들이 어릴 때 외갓집에 맡겨져 있었다. 

이모들이 네 명이나 되어 좋았다. 

외갓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싸우고 울고 위로받으며 지냈다. 

엄마는 나를 외갓집에 맡겨서 미안하고 안쓰러웠다고 했다. 

외갓집에서 자랐기에 이모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첫째였기에 언니나 오빠가 있었으면 했는데 그걸 이모들이 어느 정도 채워준 것 같다. 

특히 막내 이모가 제일 좋았다. 

나중에 이모가 결혼을 하여 동생들이 태어났을 때 이모의 부탁으로 돌봐 주기도 했다. 

막내 이모가 힘들고 어렵게 살던 시절이었다. 

막내 이모가 제일 잘 살았으면 하는 내 바람과 달리 이모부가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면서 많이 속상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낳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키우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낳으면 그냥 자라는 게 아니다. 관심과 애정을 먹으며 자라야 한다. 부모가 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맡겨진 소녀’에서 소녀가 받은 애정과 관심은 한 여름에, 그 집에서, 모두 받은 느낌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랑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고 누구에게든 받을 수 있다. 가족만이 온전한 관심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이 어느 정도일까. 

내 가족을 넘어서야 한다. 


클레이 키건처럼 짧지만 묵직한 그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레스 푸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