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남편은 시누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시조부모와 시부모님을 모셔 둔 안락공원의 계약이 끝나서 다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천안에 살고 있는 큰 시누이는 알겠다고 했다. 둘째 시누이는 다 내면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셋째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자신이 느낀 섭섭함을 토로했다. 남편은 셋째 시누의 대답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여겼다. 그러나 막내 시누와 통화하고 나서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막내 시누도 돈을 내지 않겠다고 하면서 괜한 트집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화난 남편을 대신해서 아주버님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전달했다.
아주버님이 장남이기에 누나들에게 전화하는 것도 본인이 할 수 있다. 그럼 왜 남편이 했나. 아주버님의 성격 때문이다. 아주버님은 천하태평스러운 스타일이다. 무엇이든 생각을 오래 하고 행동은 느리다.
집안에 일이 생겼을 때 제시간에 온 적이 거의 없다. 시조부모의 산소에 벌초할 때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하지만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매번 남편과 내가 다 하고 나면 왔다. 남편 혼자 땀 뻘뻘 흘려가며 하다가 손을 다치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으면 속상했다. 그러나 늦게 온 아주버님에게 섭섭하다고 하는 것 외에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납골당으로 다 모시게 되어 좋은 점은 벌초의 수고로움이 덜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일도 이미 계약은 8월이 만기였다. 재계약을 하든지 다른 방법으로 해결을 봐야 하는데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런 아주버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남편에게 전화를 돌리고 계약을 마무리하자고 한 것이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누구든 해야 하니까.
시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도 가까이 있는 남편과 내가 기본적인 일은 했다. 시부모님은 인자하시고 불평이 없으신 분들이었다. 막내인 남편과 내가 챙겨야 한다고 해서 힘든 점은 없었다. 그냥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아주버님이 할 일을 안 한 건 아니다. 좀 느릴 뿐이다.
남편 위로 시누가 4명이나 되지만 나는 괜찮았다. 시누들이 나에게 간섭하는 부분은 없었고, 내가 도리에 어긋나게 행동 한 부분 역시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득을 본 게 더 많다. 멀리 있는 큰 시누는 가끔 내려오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고, 둘째 시누는 우리 애들을 돌봐 주는데 손을 보태 주었다.
형제가 많아서 좋은 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있다. 제사나 명절에 다 모이면 의례 그렇듯 술을 마시게 된다. 시댁 식구들은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신다. 처음엔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술 때문에 하지 말았으면 하는 말들이 나오게 되고 결국 싸움이 된다.
결혼하고 몇 년은 순조로웠다. 형제들이 자주 모여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시간이 잦아지고, 서로 처한 상황들에 변화가 생기면서 자잘한 말다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술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면, 약한 술로 인해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서 애들과 집으로 왔다. 몇 번의 싸움을 봤기에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와 셋째가 싸우고, 막내와 셋째가 싸우고, 동서와 막내가 싸우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나는 싸움의 현장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싸우는 게 싫다. 서로 화내고, 큰소리치고, 네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싸우면 벌어지는 험악한 그 상황이 힘들다. 드라마에서도 그런 장면은 싫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가 판타지나 스릴러인지 모른다.
납골당의 계약은 15년을 주기로 세 번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우리는 두 번째이다. 아마 세 번째는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15년이 지나면 시누들의 나이가 많아지고 납골당에 방문할 확률 역시 떨어진다. 물론 그때 가 봐야 알 일이지만 지금 상황으로 유추해 보건대 세 번째 계약은 없지 않을까 싶다.
가능하다면 15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가 땅을 사서 그곳에 나무를 심고 수목장으로 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