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동기시대 시기구분론의 전개
한국 청동기시대는 대개 3~4개의 시기로 구분하며, 아직 완벽한 통일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기를 인정하는 견해와 인정하지 않는 견해, 점토대토기를 청동기시대에 배치하는 견해와 초기철기시대에 배치하는 견해 등이 아직 팽팽히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론은 1960년대 이후 새로운 발견과 견해들이 잇따르며 정반합These-Antithese-Synthese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종류의 시기구분론이 제시되었으며, 개중에는 다섯 단계 이상으로 나누는 분류안도 있으나 이 중 시대구분 논쟁의 큰 흐름을 대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몇 가지 분류안만을 선별하였다.
처음으로 제안된 시기구분론은 전·후기 2분기설로, 동검을 지표로 청동기시대를 나눈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전기는 비파형동검기, 후기는 세형동검기에 해당한다. 당연히 이에 동반하는 공렬문토기·각형토기·적색마연토기·마제석기 등은 전기에, 점토대토기·외반구연토기·흑색마연장경호·일부 석기 등은 후기에 편재될 것이다. 현재의 청동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의 대략적인 분류와 유사하다. 동검을 지표로 한 분류는 이후 동검이 등장하지 않는 시기를 인지하게 되면서 선동검기-비파형동검기-세형동검기로 나누는 견해도 있는데, 기실 한반도에 비파형동검이 등장하는 시점이 송국리문화단계부터로 생각되므로 이후에 이야기할 3분기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후 비파형동검기를 전기와 후기로 세분한 4분기설로 발전된다.
* 동검 2분기설임병태 1969·後藤直 1973·이백규1974
전기: 비파형동검·공렬문토기·각형토기·적색마연토기
후기: 세형동검·점토대토기·외반구연토기·흑색마연토기
* 동검 3분기설박순발 1993
선동검기 - 비파형동검기 - 세형동검기
* 동검 4분기설이청규 1987
선동검기 - 비파형동검 전기 - 비파형동검 후기 - 세형동검기
2분기설이 제시된 이후 1975년 부여 송국리유적이 발견됨에 따라 청동기시대 연구는 새 국면을 맞이한다. 부여 송국리유적에서는 공동묘지가 딸린 대형 환호취락과 함께 이전까지 본 적 없던 새로운 양식의 토기와 주거지 등이 확인되어, 학계에서는 송국리유형을 설정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존의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 사이에 배치되는 것으로 판단되었으므로 송국리유형을 중기로 설정한 3분기설이 제기되었다. 이때 전기는 가락동유형과 역삼동유형, 중기는 송국리유형, 후기는 수석리유형이 편재된다. 3분기설이 제기된 이후 송국리유형과 수석리유형의 배치에 따른 이견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수석리유형의 표지유물인 점토대토기가 단독기를 가지기에 미약하다는 견해와 아예 철기시대로 넘겨야 한다는 견해로 나뉜다. 후자의 경우 송국리유형을 후기에, 그리고 흔암리양식을 중기에 놓는다.
* 토기 3분기설 Ⅰ藤口健二 1986·송만영 1995·안재호 1996
전기: 가락동식토기(이중구연단사선문토기)·역삼동식토기(공렬문토기)
중기: 송국리식토기(외반구연토기)
후기: 점토대토기
* 토기 3분기설 Ⅱ이홍종 1996·정한덕 1999
전기: 가락동식토기·역삼동식토기
중기: 흔암리식토기(이중구연단사선공렬문토기)
후기: 송국리식토기
1980~90년대에 하남 미사리유적과 진주 대평리 어은1지구유적이 조사되는 과정에서 돌대문토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토기가 등장한다. 이것은 신석기시대와는 다른 주거지와 토기형식을 갖추는 동시에 신석기시대 즐문토기의 종말기 퇴화 양식으로 이해되었던 이중구연토기나 발형토기와 동반되었는데, 이 때문에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전이하는 과도기적 요소로 판단되었으며 이것이 나타나는 이른바 미사리유형단계를 조기로 설정하였다. 조기론은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사리식토기 즉 돌대문토기가 단독기를 형성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두고 크게 논란이 일었다. 돌대문토기 단독기를 부정하는 입장은 앞서 언급한 돌대문토기 조합이 역삼동유형이나 가락동유형 등에서도 확인된다는 것이다. 즉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전환이 여러 가지의 교두보를 거쳐 진행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이는 두 가지 갈래의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는데, 하나는 조기에 세 유형이 공존하여 전기까지 이행한다는 견해배진성 2003이며, 다른 하나는 아예 조기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견해김장석 2008이다.
* 토기 4분기설안재호 2000
조기: 말기즐문토기·미사리식토기
전기: 가락동식토기·역삼동식토기
중기: 송국리식토기
후기: 점토대토기
안재호는 2006년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이전에 조기론을 제시하며 내세운 4분기설을 조정하여 신3분기설을 제시하였다. 이는 곧 수석리유형이 삼각형점토대토기를 지표로 하는 늑도유형과 함께 초기철기시대로 배치된 견해인데, 여기서는 전기의 역삼동유형이 흔암리유형과 합쳐져 역삼동-흔암리유형으로 명명되며 송국리유형은 역삼동유형·북한강유형·검단리유형 등 다양한 하위유형을 갖춘 송국리문화로 이해된다. 여기서 흔암리유형이란 가락동식토기의 이중구연+단사선문과 역삼동식토기의 공렬문이 조합된 흔암리식토기를 지표로 하는 물질문화유형이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가락동유형과 역삼동유형의 뒷 단계로 인식되기도 하였지만, 현재는 동단계로 생각한다. 한편 앞서 중기로 설정되기도 했던 흔암리유형은 역삼동식토기를 다수 반출하는 등 역삼동유형과 강한 유대를 갖고 있으므로 역삼동-흔암리유형이형원 2002으로 새롭게 정의되기도 하였다.
* 토기 신3분기설 Ⅰ안재호 2006
조기: 이중구연토기·돌대각목문토기
전기: 가락동식토기·역삼동-흔암리식토기
후기: 송국리식토기·검단리식토기
* 토기 신3분기설Ⅱ이형원 2007
조기: 미사리유형
전기: 미사리·가락동·역삼동-흔암리유형
후기: 송국리·역삼동·북한강·검단리유형
신3분기설을 지지하던 이형원은 곧 수석리식토기를 다시 청동기시대 후기에 편재하는 신4분기설을 제시하였는데, 뒤이어 이청규 역시 이와 유사한 신4분기설을 제시한다. 다만 이청규의 신4분기설은 수석리유형을 철기 등장을 기점으로 양분하여 전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 후기는 초기철기시대에 편재하였다. 이에 더하여 이청규는 조기 논쟁의 절충안으로 전기를 양분하였다. 이것은 돌대문토기 단독기를 인정하면서도, 가락동·역삼동-흔암리유형으로의 전환이 분명하지 않음을 인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토기 발생을 기초로 한 조기 설정 문제는 거듭된 자료의 축적에도 이른바 '조기 토기와 전기 토기'의 발생 시점 차이가 명확해지지 않는다는 한계를 갖는다. 즉 앞서 언급해왔던 토기양식으로 말하자면 돌대문토기 단독기나 조기를 굳이 따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러나 안재호의 조기론은 토기 형식의 변화를 차치하고 신석기시대와 연속적인 관계를 가지면서도 본격적인 원시농경사회를 이룩하는 단계라는 점에서 근원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토기의 형태에 천착하는 물적 단계구분보다는, 유존물복합체를 아울러 신석기시대 종말기로부터 청동기시대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포착되는 사회경제적 변화의 전반적인 추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토기 신4분기설 Ⅰ이형원 2010
조기: 말기즐문토기·미사리식토기
전기: 가락동식토기·역삼동식토기
중기: 송국리식토기
후기: 수석리식토기(점토대토기)
* 토기 신4분기설 Ⅱ이청규 2015
전기 전반: 돌대문토기·이중구연토기(서기전 13~12세기)
전기 후반: 가락동식토기·흔암리식토기(서기전 11~9세기)
중기: 송국리식토기·검단리식토기(서기전 8~6세기)
후기: 수석리식토기 전기(서기전 5~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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