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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지기 Dec 22. 2021

내 몸을 부탁해, 친구!

게으르고 살찐 이의 소심한 핑계

 오후 3시. 졸음이 쏟아진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서글픈 것 중의 하나는 밀가루 음식을 많이 먹거나, 너무 배부르다 싶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못 견디게 졸리다는 것이다. 먼저 내 나이를 앞서간 언니가 말했다. 나이 들어가면서 근육이 약해지고 둔해지는데 위장 같은 몸속 장기도 마찬가지여서 소화시키는데 힘을 써버리면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줄어 그렇게나 졸리다고. 그게 나이 들면 소식해야 하는 이유랬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언니 말대로 나이 들면 소화액이 줄어서 소화시키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탄수화물을 분해시키는데 어릴 때 보다 에너지가 더 소비된다고 했다. 뭐, 어찌 되었든 결론은 하나다. 나이 들어가면서 내 몸은 변하고 있다.


내 몸은 변하고 있다 - 골방지기

 제일 먼저 뚱뚱해졌다. 6년 전 이사 온 이 도시의 공기에는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지 숨만 쉬어도 살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사실 운동은 거의 안 하고 숨만 쉬고 있으니 살이 찌는 거겠지. 이사 오기 전 분당에서 잠실의 회사로 근하면서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데려다주고 지각하지 않으려고 매일 아침마다 2km 가까이 뛰고, 점심시간에는 헬스장에서 근육 운동하고, 퇴근할 때도 어린이집에서 엄마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침에 뛰었던 구간을 다시 반대로 퇴근하던 운동량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겨우 평균 3 천보 정도를 걷고 있으니 살찌는 게 당연할 수밖에. 그렇게 운동 부족으로 내 몸의 근육은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그 빠져나간 자리에는 기름덩어리만 덕지덕지 붙었다. 근육으로 똘똘 뭉친 체력으로 잦은 초과 근무와 밤샘과 독박 육아를 버텼는데 근손실이 생기니 조금 불편하던 곳은 더 불편해지고 안 아프던 곳도 쑤시고 저리기 시작했다.


 작장을 다닐 때에는 회사 안에 웰빙 룸이라는 마사지실이 있었다. 복지 차원에서 마련된 곳이었는데 몇 개의 전신 마사지기와 전문 마사지사가 상주하고 있었다. 사내 시스템에 접속해서 예약을 하면 일주일에 최대 2회 수기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운동을 많이 해서, 전날 밤샘을 해서, 잠을 잘 자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꼬박꼬박 나에게 주어진 혜택을 이용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이용한 사람은 없다는 웰빙 룸에서 내 몸의 뼈와 근육들은 휴식을 얻었다.

 퇴사를 하고 나니 그 손맛이 제일 아쉬웠다. 그래서 이사 오고 얼마 후에 내 몸의 친구가 되어준다는 전신 마사지기를 들였다. 온열치료도 되고 팔, 다리, 등, 머리까지 마사지를 해주니 남편도 나도 즐겁게 하루에 한 번 이상 이용했다. 그렇게 4년 정도 쓰다 보니 여기저기 표면의 인조가죽은 너덜너덜해지고 모터도 약해져서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까지 났다. 매일 열심히 사용했으니 본전은 뽑았다 싶어서 보상판매 기간에 좀 더 업그레이드된 모델로 바꾸었다. 새로 들인 마사지기에는 여름에는 쿨시트도 되고 꾹꾹 눌러주는 힘도 좋아서 더 만족스럽긴 했다.

 

 그런데 사람이 간사하다고, 국소부위의 불편함이 계속되면서 다른 장비들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뭐든지 장비 빨'을 외치는 나는 정형외과에서 몇 번의 물리치료를 받은 후에 저주파 치료기를 샀다. 이건 전신 마사기와 다른 또 다른 신세계였다. 물리치료실에서 받던 통증 치료를 집에서 편한 시간에 원하는 부위에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저주파치료와 온열치료가 주된 치료인 물리치료실은 이젠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손목 사용이 늘면서 다시 통증이 심해져 알아보다가 물리치료실에서 사용했던 파라핀 치료기도 구매했다. 맨솔 향이 가득한 따뜻한 파라핀 속에 손을 담갔다 빼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 당장 아프던 손가락과 손목의 통증도 덜해졌다.

 파라핀 치료가 뜸해질 무렵 전신 마사지 구매업체에서 이벤트에 대한 사은품으로 마사지 건을 보냈다. 한참 물리치료실에서 받던 충격파 치료와 조금 비슷했다. 내가 원하는 부위에 건을 갖다 대고 있으면 동그란 머리가 통증이 있는 부분을 열심히 때려준다 신기하기도 하고 보관이나 관리가 편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선택한 부위를 집중해서 두들겨주면 시원했다. 이즘 되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웬만한 물리치료는 집에서 가능해졌다. 

 


 

  그러나 물리치료실을 통으로 집안에 들여놔봤자 뭐하겠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운동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게으르고 실행력 없는 나는 소중한 내 몸이 편할 궁리를 하면서 그래도 할 만큼 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이제는 건강해질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인데 말이다.

 벌써 연말이다. '올 초에 무슨 계획을 짰던가' 생각해보니 매일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나처럼 벼락치기를 빈번하게 하는 게으른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마감일에 맞춰서 끝내는 거라는데 꾸준히 운동하겠다는 나의 연초 다짐은 정해진 마감이 없으니 차일피일 미루며 머릿속으로만 달리다가 결국은 흐지부지해졌다. 이제 다시 새해가 되면 계획을 짜고 다짐을 할 텐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작심삼일'이 아닌 'only작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년에는 3일이라도 가야 할 텐데.

 이번 연말에도 새로운 다이어리를 마련하고 계획을 적어본다. 당연히 1번은 [꾸준히 운동하기-매일 걷기 5km 이상]이다. 이번에는 '작심 후 무실역행(作心後務實力行)'이어야 할 텐데.

 '마음먹은 김에 계획을 지금 당장 시작해서 나가서 걷다 올까?'라고 생각해보지만 뿌연 미세먼지와 영하의 온도는 내 발을 묶는다.

 '다음에... 공기가 맑아지면...' 흔한 핑계를 대면서 하나 더 덧붙인다. '그러면 새해에 다짐할 계획이 없잖아?'

 그래. 희망찬 새해의 다짐을 위해서 모든 걸 새해로 미루고 난 전신 마사기 속으로 들어간다. 운동은 새해부터. 내려앉는 눈꺼풀을 막을 수 없는 지금은 내 몸을 너에게 맡긴다. 친구!

새해에는 '꾸.준.히' 운동합시다 - 골방지기



*작심(作心) : 마음먹음, 계획을 세움

*무실역행(務實力行) : 실속이 있도록 힘써서 실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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