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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지기 May 06. 2022

어떻게 살고 계신가요?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어떻게 가르칠지를 결정한다.

안녕, 시루야!

  지지난 주말, 우리 집에 새 가족이 생겼다. 2월 17일에 태어난 실버 푸들, '시루'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조른지는 꽤 되었다. 끝까지 걱정하고 반대하던 남편은 새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한발 양보했고, 깊이 알아보지 않고 스탠더드 푸들을 입양하고자 했던 우리는 강아지의 운동량과 양육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스탠더드 사이즈보다는 한 단계 작은 미디엄 사이즈의 푸들을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실버 푸들인 시루를 처음 만났을 때는 완전히 까만 강아지였다. 배냇 털 색은 자라면서 바뀐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가 데리러 갔을 때 입과 눈 주위로 회색 털이 올라오고 있었고, 이제는 까만 배넷 털이 회색과 갈색으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얼룩덜룩한 털을 빗어주고 배변판을 정리해주는 일은 아이들의 몫이다. 한 아이는 배변판과 사료주기를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빗질을 담당한다. 담당은 매일 번갈아가면서 바뀐다. 강아지 식사는 우리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사료 불리기를 시작한다. 일주일 사이에 규칙이 잡혔다.

 

초보 보호자, 공부를 시작하다.

 강아지 생활규칙이야 어차피 보호자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지만 활동이 많아지고 친밀감이 생기면서 어떻게 습관을 들여주고 놀아줘야 하는지, 양육 방법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시루와 계속 놀아주다 보면 보호자인 우리들의 손을 탐색하듯이 물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들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인터넷과 유튜브의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개통령이라 불리는 보듬 컴퍼니 강형욱 훈련사의 블로그였다. 나는 이미 게시된 반려견 교육 칼럼을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600여 개가 훌쩍 넘는 글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 강아지를 갓 키우기 시작한 나에게 어떤 글은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느꼈던 점들이라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어떻게 가르칠지 결정한다.
(강형욱 훈련사의 글, '어서 와, 보듬은 처음이지?' 중에서)


 강형욱 훈련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아간다고 말한다. 남을 배려하기보다는 나의 편리함을 먼저, 나에게 불편함을 끼치면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타인을 탓하는 행태를 꼬집어 말한다. 그리고 보호자가 반려견을 데리고 왔을 때 그런 살아가는 방식들이 교육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키가 된다고 했다. 즉  보호자가 제공한 환경과 기회가 강아지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의 '내 개는 안 물어요', '내 개는 얌전해요' 식의 규칙 없고 무분별한 행동이 반려견에게 혼란을 주고 피로감을 주면서 행동의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훈련사는 말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고 문득 떠오른 생각.


'어, 오은영 선생님인데?'


강형욱 훈련사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hunter527)


강아지나 사람이나...

 개가 사람을 무는 사고가 생기면 보호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우리 애는 안 무는데', '우리 강아지가 먼저 사람을 물지는 않는데...'라고 한다. 길을 가다 보면 다른 보행자의 불편은 전혀 상관없이 넓은 길 전체에 목줄을 길게 늘여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눈에는 자신의 반려견은 남을 물 줄 모르고 순하기만 한 착한 강아지였겠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는 공포였을 수도 있다.


 작은 아이가 유치원 다니던 시절, 반에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남자아이들과 약간씩 다툼은 있었지만 많은 엄마들이 애들은 으레 그렇게 싸우면서 큰다고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리고 애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자 그 남자아이는 여기저기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학폭에 신고되고 소문이 퍼져서 이슈가 되기도 했고,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남자 선배들을 괴롭히기도 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 아이가 들으면서 자란 어른의 말 때문이다.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는 남자아이의 엄마는 다툼이 생겼을 때 하는 말이 있었다.

 '우리 아이가 먼저 건들지는 않아요.'

 남자아이는 그 말이 면죄부가 되었는지, 전학 가기 전까지도 마음에 안 드는 아이가 있으면 먼저 가서 부딪힘을 유도하고 싸움을 일으키곤 했다. 그래서 이 남자아이와 그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꼭 소환되는 사람이 바로 <오은영 선생님>이었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오은영 선생님을 호출하면서 '오은영 선생님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솔루션을 내기도 했다. 대부분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와 엄마나 아빠 혹은 양육 담당자가 같이 치료나 행동교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형욱 훈련사가 반려견과 보호자 모두 같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양육 방법은 일관성 있게

 우리 부부도 큰 딸 은이가 태어나고 둘째 영이가 바로 다음 해 연이어 태어나면서 아이를 키울 때 딱 하나의 규칙은 흔들리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일관성 있게 양육하기>

9글자 이 한 줄의 약속은 매 순간 흔들렸다. 사실 약속을 어긴 순간이 들키지 않고 지나갔을 순 있지만 어쩌면 아이들은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일관성 있게, 대부분의 부모가 그러하듯이 울타리를 정하고 그 안에서는 아이들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울타리의 기준을 조금씩 낮추고 넓혀가고 있다. 문제는 가끔 이 울타리가 주양육자인 우리 부부의 상태에 따라서 높아지기도 하고 엉성한 나무 울타리가 단단하고 빈틈없는 무쇠 벽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은 어쩌면 기본적인 문제다. 가정마다 정해진 울타리의 재질과 높이나 넓이는 모두 다르므로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냥 다를 뿐이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우리만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마음을 고정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넓게는 <융통성>이라고 불리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비공식 사회규칙이 적용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어떤 아이를 만들지 결정한다.

  지인 중에 자녀의 입시를 돕기 위해서 스펙을 만들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선 집도 있었다. 지인은 아이는 내신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시험공부하는 사이에 엄마는 A과목의 수행평가를, 아빠는 B과목의 자료조사를, 삼촌은 교내 에세이 대회에 제출할 글을 써주었다고 했다. 결국 자녀는 좋은 성적으로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학교의 인기 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까지 했다는 입시 성공담을 들으면서 정말로 어쩌면 당시의 관행이었을 조국의 딸과 돈과 배경만 있으면 스펙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새 내각에 들어갈 후보자의 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저렇게 해서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을 얻어서 잘 살게 되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게 될까?'

 금수저를 넘겨준 부모의 능력으로 출발선보다 훨씬 더 앞에서, 다른 아이들은 뛰어갈 때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달려간 아이들은 수저의 종류와 탈 것을 타고 더 빨리 가는 것이 공정이라고 배우지 않을까?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는 비공식 사회규칙도 대물림되어서, 정해진 선에서 출발해서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걸어온 사람은 '융통성 없는', '능력 없는', '해도 되지 않은', '부모 잘 못 만난' 사람 취급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돌고 돌아서 다시 강아지

 강아지 양육법을 공부하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들의 양육으로 이어간 생각은 다시 강아지로 넘어왔다. 이제 사회화를 시작한 강아지를 키우면서, 아기를 키우는 일이나 새끼 강아지 키우는 일이나 도긴개긴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디로 튈지, 어디에 쌀지, 무엇을 주워 먹을지  걱정되는 것은 똑같으니 말이다. 거기에 강형욱 훈련사와 오은영 박사가 주는 가르침도 일맥상통하니 시루도 아이들 걸음마 배울 때 즈음처럼 키우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관성 있게 강아지 규칙을 적용하고,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 불편을 주지 않게 강아지를 관리할 것. 내 강아지도 얼마든지 사고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기, 항상 사람이 우선!'


 시루가 우리 집에 온 지 거의 2주일이 다 된 지금, 시루는 하루 3번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싸고, 놀다가 잠든다. 그리고 오래 잔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는 짖거나 끙끙거리지 않고 자다가 깨도 혼자 뒤척거리다 다시 잠이 든다. '앉아', '기다려'를 알아듣게 되었고, 사람을 물려다가도 안된다고 하면 멈추는 법도 배웠다. 이제 남은 것은 시루가 우리 집에서 사는 동안 보호자인 우리 가족만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도록 돌보면 되는 것이다. 그럼, 다시 블로그로 들어가 아직 읽지 않은 강형욱 훈련사의 글을 읽기 시작해야겠다. 시루랑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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