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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지기 Jun 13. 2022

김여사의 금반지

 

 김여사는 1950년 11월 피난 중에 태어났다. 위로 배다른 오빠가 있었고, 2-3년 터울로 3명의 남동생이 태어났다. 김여사가 10살이 되었을 때, 김여사의 아버지는 오빠의 엄마, 즉 전 부인과 바람이 나서 5번째 아들을 얻었다.

 5남 1녀 중 고명딸이면 귀하게 여길 만도 한데, 돈도 많고 흥도 많고 정도 많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관심 없었고, 후처로 들어갔지만 전처에게 또다시 남편을 뺏긴 어머니는 아들들만 챙겼다. 귀한 고명딸은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그러다가 천연두를 앓고 곰보가 되었다. 학교는 꿈도 못 꾸었다. 남들 다가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몰래 갔지만 어머니에게 끌려왔다. 단지 막내 동생이 울고 있어서였다.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다가 잘생긴 박 씨를 소개받아서 결혼을 했다. 부모 없는 집의 막내아들이었던 박 씨를, 데릴사위를 들이고 싶어 했던 부모님은 마음에 들어 했다. 결혼하고 나서 김여사는 바로 아들을 얻었다. 그러나 혼자 놀만하다 싶었던 5살에 아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갓 태어난 딸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는 못했다. 정신을 차릴 무렵 딸아이는 첫 번째 생일을 맞이했고, 딸이라도 무탈하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 성대하게 돌잔치를 치렀다. 그 후로 3명의 딸을 더 낳았다. '아들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가 듣기 싫었던 김여사는 태어나는 아기가 아들이길 간절하게 바랬지만 그냥 바램뿐이었다. 딸은 그만 낳겠다고 셋째의 아명을 '고만'이라고 불렀지만 넷째도 딸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딸부자가 되었다.

 아들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치르는 사이에 어머니는 호적상으로 전처가 되어 있었고, 전처는 세 번째 부인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흥청망청 쓰던 아버지가 남긴 몇 푼 안 되는 재산은 전처가 챙겼고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김여사네 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동복(同腹) 형제들은 좋은 학교를 나와서 장가를 가더니 누나를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다. 아내들의 치마 속으로 숨어들었고, 빈털터리에 연이은 마음의 상처로 몸도 불편해진 어머니를 김여사에게 맡겼다. 김여사는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다음날 깨어나지 않으셨던 초여름 어느 날, 영원히 잠드신 어머니를 조용히 큰 동생의 집으로 옮겼다. 남들에게 불효자로 흠 잡히지 말라고.


 곰보에 배움도 짧았던 김여사는 적어도 동생들한테는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책잡힐 행동을 하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러나 잘생긴 박 씨는 책임지지 않고 막내로 살아온 세월을 벗어나지 못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다. 동생들은 그런 박 씨를 책망했다. 그간 동생들한테 바친 시간들과 희생에 대한 서글픔이 어느 순간에 김여사의 밑바닥을 치고 올라왔지만 마음 약한 김여사는 결국 터트리지 못하고 혼자서 설움을 삼켰다.


 생계를 책임지는 것도 김여사의 몫이었다. 남편과 동생들 때문에 속이 썩어 문들어진 그녀는 현금이 생길 때마다 금붙이를 모았다. 남들의 선택으로만 떠밀려 살아온 김여사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곗돈을 타면 금을 샀다. 목돈이 생겨도 금 장신구들을 사 모았다. 동생들과의 모임에,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에 김여사는 금반지, 금목걸이, 금귀걸이를 모두 차고 나섰다. 그게 김여사에게는 자존심이었다. 적금으로 돈을 모으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려운 말들이 가득한 은행보다 금은방에서 금을 사는 것이 더 쉬운 투자였고 은행을 믿을 수도 없었다. 전쟁이 나면 금이 최고라는 어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기도 했었다. 박 씨가 사고를 치면 몇 개의 목걸이와 반지가 사라지고 얼마 후면 다시 나타났다.


 김여사의 또 다른 자존심은 딸들이었다. 딸들이 공부해봤자 쓸데없다는 말을, 무심한 동생들은 누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그냥 살림이나 가르쳐서 시집이나 잘 보내라는 동생들의 말에 김여사는 딸들이 누구보다도 스스로 선택하며 살기를 바랐다. 솔직히 열심히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 못했고 아이들의 성향을 보니 공부하는 것이 제일 마음 편하다고 하는 딸도 있었지만, 얼른 졸업해서 큰돈을 벌 것이라는 딸들도 있었다. 김여사는 살아오면서 제뜻대로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딸들이라도 남들 떠드는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맘껏 살기를 바랐다.




 그렇게 김여사는 70년을 넘게 살았다. 어릴 때부터 일을 하면서 동생들을 키우고 딸들과 손주들까지 키워낸 그녀의 손은 깊고 굵은 주름과 굳은살로 가득했다. 주름 하나하나, 굳은살 한 겹 한 겹이 그간 그녀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았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주까지 본 남동생들은 그제야 술만 마시면 김여사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화하고, 조카딸들에게는 잘 커줘서 장하다고 말한다. 김여사는 여전히 돈이 모이면 금붙이를 사모으고, 짧고 주름이 가득한 손가락에 샛노란 반짝이는 굵은 금반지와 팔찌를 끼고 계모임에 나간다.


 큰딸은 어느 날 엄마의 손과 어울리지 않는 장식이 못마땅하기만 했다.


"엄마, 그렇게 굵은 금반지랑 금팔찌랑 한꺼번에 끼고 나가니까 되게 없어 보여. "

"내가 돈 모아서 직접 산거야. 내버려 둬. 그리고 주름이 너무 굵고 손이 못생겨서 가늘고 예쁜 반지 같은 건 주름 사이에 숨어서 보이지도 않아. 반지라도 두꺼워야 주름이라도 좀 가리지......"


 그때까지도 큰딸은 몰랐다. 아니,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마냥 촌스럽고 구식인 엄마가 커다란 알 다이아몬드를 자랑하는 사모님들처럼 굵은 금반지와 팔찌 같은 장신구들을 자랑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었다.

 엄마의 손을 다시 보았다. 정말 가는 장신구는 주름 사이에 파묻힐 것 같았다. 그제야 반지가 아니라 엄마 손의 주름이, 그 주름 속의 세월이, 매니큐어를 바르기 위해 한참을 정성스럽게 다듬었을 손톱 언저리가, 그리고 훈장처럼 주름을 가리고 있는 굵은 금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시큰해졌다.


"아우! 그래도 아무것도 없이 금만 굵게 있으니까 좀 그렇잖아. 기다려봐. 내가 거기에 큰 알도 박아줄게!"


김여사는 미안함에 큰소리치는 큰딸의 헛말에 웃음이 터졌다. 말하지 않아도 김여사는 딸의 마음이 보였다.


"하하하, 커다란 알 사줄 돈 있으면 우리 예쁜 손주들, 은이랑 영이 맛난 것이나 많이 사줘."


 이제는 무엇을 선택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자식한테 짐 되지 않고 건강하게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싶은 김여사다. 자식들한테 잔소리 듣는 것도 귀찮고 동생들의 술 먹은 걱정은 더 듣기 싫다. 그냥 남은 시간은 김여사답게 살고 싶다.

손이 들려준 이야기 <2018, 김혜원 글, 최승훈 그림, 이야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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