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Beach), 오션풀(Ocean Pool), 록풀(Rock Pool
작년 1월, 대한항*으로 부터 남편의 항공사 마일리지 일부가 소멸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뒤로 일사천리로 진행된 마일리지 소멸 작전. 장거리에 쓰자는 걸로 합의를 보고 23년 7월 출국 일정으로 유럽 편 항공권을 끊었다. 런던에 사는 고등학교 단짝 친구를 만나겠다는 이유까지 추가했다.
이참에 아시아* 마일리지도 다 써버려야겠다 생각하고는 급히 마일리지 항공권 검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24년 2월 시드니를 가는 항공편을 끊었다. 목적지로 시드니를 정한건 딱 한 가지 이유, 날씨 때문이었다. 남반구의 따뜻한 날씨. 시드니에 관해 알고 있는 게 없었던 나는 도서관에서 책 몇 권을 빌려서 일정을 짜고 있었는데 유명한 비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뛰었다. 시드니에 가서 수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에 비치와 수영장을 넣었다. 아직 초보 수영인이라 바다 수영이 위험하진 않을까 해서였다. 짐이 많아질까 봐 원피스 수영복 하나만 챙겼고, 아이들과 남편은 실내수영복과 긴팔 긴 바지의 래시가드도 챙겼다. 스노클링 마스크와 물안경도 샀다. 어디서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는데 혹시나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 사기 전에 수영 강사님께 물어봤는데 풀 페이스는 안에 습기가 차면 잘 안 보일 수 있으니 분리형이 나을 수 있다고 하셨고, 스노클링 호흡법이 따로 있다고 하여 유튜*를 보며 아이들과 연습했었다.)
시드니에는 비치가 여럿 있는데 나는 시드니 센트럴에서 333번 버스로 접근 가능한 본다이 비치(Bondi Beach)로 갔다. 도착하니 애들이 수영엔 관심 없고 모래 놀이만 한창이라 그것만 지켜봤다. 비치에는 서핑 하는 사람들과 수영하는 사람들, 그리고 파도에서 노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파도가 치는 걸 보고는 수영할 마음을 접었다. 파도가 어찌나 세게 치던지....
나는 물에 안 들어 가고 남편과 아이들만 파도에서 놀았다. 참고로 이곳은 전문 서퍼가 아니면 노란색과 빨간색 깃발로 표시된 안전지대 안에서만 놀거나 수영할 수 있다. 일례로 남편과 아이들이 파도에서 놀고 있었는데 라이프 가드가 오더니 안전을 위해 지정된 구역에서만 놀라고 하여 해변의 끝 쪽으로 이동했다.
참, 나는 이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에 안 들어가고도 새까맣다 못해 빨갛게 그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챙겨간 알로에 수분 젤 큰 통 한 개를 통증 완화에 다 써버렸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수영장은 록 풀(Rock Pool) 즉 암반 지형으로 된 수영장을 고급스럽게 업그레이드 한 것이라고 한다. 무려 100년 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곳에 처음 간 나는 너무 놀랐다. 물은 너무 차고 짰으며, 내부는 깨끗하지 않았다. 나는 그간 실내 수영장에서만 수영 해왔으니 이곳을 이해할 리 만무했다.
아이스 버그 수영장은 본다이 비치 바로 옆에 위치했는데 본다이 비치에 파도가 높게 치면 그 물이 자연스레 이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물은 본다이 비치의 바닷물이니 당연히 짜다. 수온? 바닷물 온도이니 당연히 차다. 물은 가두어져 있으니 깨끗하지 않다. 특히 유아 풀은 해초 찌꺼기가 있고, 물도 탁해서 아이들이 더럽다고 수영하지 않겠다고 하기도 했다.
수영 초보인 우리 가족은 이래저래 불만을 토로하는데 저 멀찍이 평온하게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절반 이상이 수경을 쓰지 않았고, 수영모를 쓴 사람도 손에 꼽았다. 수경을 쓴 사람은 영법을 구사했고, 수경은 안 쓴 사람은 머리를 수면 위로 들고 물을 즐겼다.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물을 즐겼다.
그들의 여유로움이 질투가 났다.'여기까지 왔으니 몸은 담가 봐야 하지 않겠어?' 하는 생각에 미치자 엉겁결에 물에 들어갔다. 그런데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나는 겁을 왕창 먹은 상태로 바닥에 깔린 이끼 낀 돌들을 보고, 짠물을 뱉으며 허우적대며 수영을 하긴 했다. 해 질 녘이라 날이 쌀쌀했고, 수시로 애들도 봐야 하는 처지라 자유형을 3번 하고는 그만했다.
아이스버그 오션풀의 첫 수영은 만만치 않았지만 뷰는 굉장했다. 경사가 바닷가보다 높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수영은 안 하고 서퍼를 구경하면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도 많다.) 그때 아이스 버그 오션 풀을 100% 못 즐긴 게 못내 아쉽다. 다음번 시드니에 간다면 다시 한번 꼭 방문해야지.
내가 두 번째로 수영한 곳은 록풀이다. '록풀'이라는 말이 생소하여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바닷물이 가두어진 공간으로 돌이 여기저기에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바위의 지형을 이용한 수영장이라니 신기하면서 호주답게 자연 친화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간 곳은 시드니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키아마(Kiama, 현지인들은 "카이아마"라고 읽음)의 록풀이었다.
키아마에는 2곳의 록풀이 있다. Blowhole Point rock pool과 Kiama rock pool이다. 나는 두 곳 모두 답사를 갔는데 블로우홀 포인트 록풀이 사람들이 더 많아서 여기로 정했다.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거리라 수영복 위에 원피스를 입고 갔다. 본다이 비치에서도 봤었지만 현지인들은 대부분 수영복 위에 뭘 걸치고 와서 그걸 탈의하고 수영하고 집에 갈 땐 겉옷을 다시 입고 가더라는....
아이스 버그 오션풀은 입장료가 있어서 그런지 록풀이지만 수영장 모양새를 갖춘 부분이 몇 있었다. 반질반질한 돌, 샤워장 등이 그렇다. 여기는 입장료 무료이며, 록 풀도 자연 그 대로다. 돌은 거칠고 날카로우며 이끼가 껴서 미끄럽다. 난 처음엔 유아풀에서만 아이랑 놀다가 성인풀로 보이는 수심이 보다 깊은 곳으로 갔는데 여기에선 스노클링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잘하지도 못하는) 평영을 시도하다 돌에 날카로운 부분에 발바닥을 베여 바로 집으로 왔다.
물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으로 나오니 피가 철철 흐르더라는... 돌조각 같은 것도 박혀서 남편이 빼주고 근처 약국에 가서 항생제와 밴드를 사서 붙이고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알고 보니 둘째도 돌에 발을 베여 한동안 밴드를 붙이고 다녔다.
시드니에는 우리네 수영장과 비슷한 실내/실외 수영장도 있다. 한 곳은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하이드 파크 근처의 수영장이고, 또 한 곳은 루나파크 옆의 올림픽 수영장이다. 전자는 실내고 후자는 실외 수영장인데 안타깝게도 두 곳 모두 가보지 못했다. 올림픽 수영장은 지금 보수 중이라 못 들어 가는데 공사가 끝나면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