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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별 Apr 05. 2024

3천 포기의 수박 모종과 기후 변화

소규모 농가가 살아남는 법

친정집의 가장 큰 행사는 어버이날도 부모님 생신날도 아니다. 바로 수박 모종 심는 날이다. 부모님 두 분이서 비닐하우스 다섯 동을 소소하게(?) 농사지으시는데  모종 이식의 경우 3천 개를 빠른 시간 안에 심어야 해 식구들이 총 출동한다. 심지어 여든이 훌쩍 넘으신 고모와 고모부도 함께.


올해는 모종 심기 전에 아빠가 한 걱정하시기도 했다. 남편이 수박 모종을 옮겨 심기도 한 날 해외 출장을 떠날 수도 있다고 해서였다. 다행히 출장은 미뤄졌고 부모님은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영세 농가의 비애다.



올해로 농사 11년 차인 아버지는 그날이 되자 아침밥을 급히 먹고 남동생과 함께 예약한 모종을 가지러 가셨다. 모종 이식 5년 차인 우리 식구들은 밭에 도착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장갑을 끼고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는 작년까지만 해도 다리 아프다, 비닐하우스 안이 너무 덥다며 징징댔었는데 이젠 컸다고 자리 하나 차지하고 앉아 묵묵히 모종을 심었다. 6살 조카도 엄마와 아빠를 거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는 이제는 웬만한 성인 몫까지 해낸다. 공부 보다는 농사가 체질인가.

부모님 이야기에 따르면 작년엔 수박이 많이 안 달려 힘들게 농사짓고도 소득이 좋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 논란이 되는 금사과 이슈(사과가 금값이 됨)의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꼽던데 소규모 농가에게는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분위기를 바꿔서......


내가 수박 밭에 가면 의식적으로 들리는 곳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 곳은 사과나무 밭이고 또 하나는 호두나무 밭이다. 사과 묘목은 과육은 먹고 씨는 심어서 4년 동안 키운 거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부모님의 정성 어린 노력의 복합체다. 아쉽게도 이제껏 잎만 무성하게 달리고 꽃을 피우지 않아 '언제 꽃이 필까?' 오매 불망 기다리고 있다.


2024년 3월 사진
2020년 3월 사진

아래는 4년 된 호두나무 사진이다. 이건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떨어져 싹이 나온 걸 옮겨 심은 거다. 작년에 호두가 3알 달렸었는데 슬프게도 새가 다 따먹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공교롭게도 식목일이다. 우연찮게도 며칠 전 돌봄교실에서 초등 1,2학년 학생들과 <The Carrot Seed>를 함께 읽고 관련 영어 표현을 배웠다. 그리고 독후 활동으로 시금치, 멜론, 파프리카 씨앗을 살펴봤다. 멜론과 파프리카는 평소 어렵지 않게 관찰이 가능한데 시금치 씨앗은 보기가 어려워 그런지 아이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하나같이 집에 가서 키워도 되냐고 했고 말썽꾸러기 학생들마저 이날만큼은 엄숙한 태도로 씨앗을 봉투에 담아 집으로 가져갔다.   


아이들에게 싹이 나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문득 나도 씨앗을 다시 키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씨앗을 물티슈에 올려놓았다. 작년 멜론 씨앗을 잘 키워 친정 밭에 심어서 멜론을 수확했었는데 올해는 어떨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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