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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으로 얻은 보물

미야의 글빵연구소 '환승' 숙제

by My Way

우리네 인생이 긴 기차여행이라면, 나는 단 한 번의 환승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그 환승은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새벽녘의 기차역 플랫폼에서, 나는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에 올라탔다. 이 기차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부모님이 쥐어주신 이 기차표가 올바른 곳에 데려다 주리라 확신했다.


“잠시 후, 고등학교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첫 번째 환승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망설였다. 함께 길을 나선 친한 친구들이 죄다 내렸기 때문이다.

“넌 안 내려?” 친구의 말에 엉덩이가 들썩였지만, 내 기차표엔 환승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생적으로 체력이 약한 내가 입시를 위해 버텨야 할 3년이란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긍했고, 그렇게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친했던 친구들이 사라진 기차 안에는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차창 밖의 풍경이 몇 번이나 바뀌고 내 옆자리 친구들이 수다를 늘어놓는 동안, 나는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켰다. 두 번째 환승역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왜, 10번의 기회가 있는데, 너는 한 곳만 바라보고 있는 거야?”


교육제도의 대전환으로 대입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우리들에겐 2번의 시험과 10번의 대학 지원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이 꿈꾸는 미래 설계에 따라 한 곳만 지원해 둔 상태였다. 그 당시 담임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진심으로 나의 꿈과 장래를 걱정해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는 부모님의 꿈이 곧 나의 꿈이기도 했던 시절이라 기회가 많고 적음은 내게 중요치 않았다. 이 기차가 가고 있는 길이 내 인생 목표라 생각했고, 그렇게 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내가 탄 열차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새로운 역에 정차했다. 그럴 때마다 열차 내부의 풍경이 달라졌고, 내 옆 자리의 사람이 바뀌었다. 어떤 사람은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고단해 보였고, 어떤 사람은 너무 활기가 넘쳐 주변을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출발역에서부터 지금껏 단 한 번의 자리이동 없이, 시니컬한 모습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터주대감도, 이방인도 아닌 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 한 남자가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앉았다. “나, 알죠?”라며 미소 짓는 남자는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고, 낯선 이를 경계하던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그와의 대화는 무채색이던 내 세상을 조금씩 형형색색 무지개 빛으로 수놓아주었다. 보고 있음에도 보고 싶은 몽글몽글한 하루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기차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갔고, 그는 나와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었다.


“기다릴게.”

그는 자신의 환승역에서 내리며, 그렇게 다짐을 했다. 가야 할 길이 다르다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결국 이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와의 이별은 내 마음을 깊게 헤집어 놓았다.

내가 탄 기차는 이제 더 큰 세상을 향해 쉼 없이 달렸다.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진 새로운 풍경,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언어, 그리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뒤섞여 기차 안은 어느새 다채로운 세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 세상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기차 안에 있으면서도 외롭고 그리운 마음이 불쑥 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몸은 이별했지만, 마음은 이어져있을 거라던 그의 다짐을 믿고 싶어, 시간의 흐름이 더디고 아팠다.


그런 내게, 천재지변에 가까운 선택의 순간이 왔다. 국가 부도 사태인 IMF가 터져, 운행 중이던 기차가 갈림길에 선 것이었다. 곧이어, "모두를 싣고 갈 순 없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일부는 내려서 환승 기차를 타고 어느 지점까지 되돌아가야 했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일순간 기차 안이 혼란에 빠졌다. 나도 기차표를 손에 쥔 채 처음으로 환승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가진 기차표는 여전히 환승이 선택지가 아니라고 되어 있었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분명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는 길에 응원을 보내준 많은 분들과 실망하실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 선택이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리는 길일지도 몰라' 하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는 그 남자의 미소를 다시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타고 있던 기차에서 내리는 일은, 남들에겐 단순한 환승이었을지 몰라도, 내겐 처음으로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환승역에서 내려 바라본 기차는 꽤 낡고,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기차가 서서히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는 사이, 내 손에는 부모님이 쥐어주신 기차표는 사라지고, 내가 직접 선택한 기차표가 놓여 있었다.


환승열차는 윤기가 반지르르한 새 기차였다. 그 열차를 타고 돌아가, 나는 그와 재회했다.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중간중간 뜻하지 않게 주변 환경에 휩쓸려 계획이 어긋나기도 했지만, 조금씩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와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이젠 정해진 길이 아니라, 매 환승역마다 새로운 선택지가 놓였다. 우리는 함께 결정했고, 그 결정 속에서 우리와 함께 길을 걸어갈 한줄기 빛이 내려앉았다.

어느 겨울, 파스텔 톤의 하늘 아래, 드넓은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을 거닐던 내게, 누군가가 주먹만 한 붉은빛 구슬 두 개를 쥐어주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었다.


셋이 하나가 된 이후부터, 우리가 탄 기차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때로는 출렁이고, 때로는 급정거를 하며 나아갔다. 차창밖을 볼 여유도 없이 기차에 몸을 싣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환승역이 가까워졌다.


나는 아이에게 기차표를 쥐어주지 않았다. 아이는 스스로 선택한 기차표를 들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씩씩하게 자신의 환승역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감과 대견함이 교차했고, 마음 한 켠이 베어나간 듯 쓰라렸다.


하지만 내 곁에는, 여전히 묵묵히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와 같은 기차를 탄 지도 올해로 30년째다. 잠시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우리는 다시 둘만의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그때, 내가 환승을 택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이 스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 한 번의 환승으로,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 두 개를 얻었다.


그거면 내 인생, 충분히 값지다.



이 글은 "미야의 글빵연구소" 제8강 숙제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기존의 <환생> 숙제는 다른 제목으로 퇴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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