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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Dec 03. 2021

아재 개그? 말장난?

어느 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누군가가 필즈상(매 4년마다 세계 수학자대회에서 수여되는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수학계의 노벨상) 감이 될 법할만한 증명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바로 20=22를 증명해냈다는 것이었다. "20=이십이다, 22=이십이다, 고로 20=22이다"라는 것이었다. 오 그럴듯한데?라는 반응과 함께 한글로 쓸 때만 성립되니 무효다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이에 필즈상 후보자께서는 "20 is twenty and 22 is twenty too"라고 하시며 영어로 써도 성립한다라고 하자 모두가 찬사를 금치 못했다. too와 two의 발음이 같음을 이용하여 말장난을 친 것이었지만 내 입에서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릴 때 매일의 할 일을 메모하고 일정을 체크하는 다이어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형도 다이어리를 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형의 다이어리 겉에는 "die early"라고 쓰여져 있었다. 뜻을 생각하면 뭔가 섬뜩할 수는 있었으나, 짐작컨대 아마도 이것은 다이어리다라는 표현을 비슷한 발음의 영어단어로 표시해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ie ealry"의 뜻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므로 저런 식으로 말장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라는 놀라움과 신기함이 드는 순간이었고, 말과 글을 이용해서 장난을 치는 것에 내가 눈을 뜨게 된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 된다.


내성적인 탓에 진지해 보이고 시니컬해 보일 때가 많지만 사실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교 때 발표수업 때도 '웃기지 못한 발표는 실패한 발표다'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어떻게 하면 재치 있게, 재미있게 말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왔었다. 그러한 생각과 습관은 자연스레 글자를 이용해서 장난치는 습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글자를 가지고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변형해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기도 해 스스로 자평하기로는 굉장히 좋은 습관이고 재미있는 습관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러한 습관은 지인들의 별명을 짓는데도 십분 활용이 되었다. 놀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지인들을 좀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대하고 불러보기 위함이었다. 이름이 소중하고 의미 있지만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은 뭔가 재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조금 비틀어보고 옆에서 보기도 하고 뒤에서 보기도 하면서 별명들을 지어보는 것이었다. 가령 '성근'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인 같은 경우, '성큰'으로 불렀고(스타크래프트를 한 번이라도 해 봤으면 당연히 알법한 단어이다. 저그 종족의 '성큰콜로니'의 성큰 바로 그것이다.), 일등만 하는 친구의 이름은 '원일'이었고(one=1, 일=1) '슬기'라는 이름을 가진 지인은 (백)설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 더 재미있는 예시가 많은데, 현직 회사의 선후배들의 이름이라 소개하기가 조심스럽다 ㅡㅜ


가끔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습관과 성향이 창의성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청년부 시절 교회에서 친목모임을 기획하게 되었었는데, 편을 나누어 뛰고 구르고 넘어지고 하는 등의 몸을 쓰면서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이름을 뭘로 할까 다들 고민을 하게 되었고,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본따서 짓고 싶다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유한도전"이니 이런 재미없고 유치한 아이디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무안도전"이었다. 넘어지고 부딪히면서 무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이었고, 다들 신박하다며 단번에 채택이 되었다. 프로그램 내내 모든 참가자들의 입에서는 "아 정말 무안하다"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때로는 '아재개그'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유치하고 재미도 없다라는 평이 물론 적지 않지만 어쩌랴. 나는 재밌는데. 아침에 출근할 때 라디오를 자주 듣는데 7시 SBS에서 하는 '이숙영의 러브FM'을 주로 듣는다. 여기서는 7시 10분경 진행자인 이숙영님께서 '잠깨퀴즈'라는 퀴즈를 내고 청취자들이 답을 맞히면서 상품을 타가는 코너가 있다. 이 '잠깨퀴즈'가 바로 아재개그의 결정체 같은 것인데, 돈(머니)은 돈인데 자식을 사랑하는 돈(머니)은? => 어머니 뭐 이런 식의 퀴즈이다. 가끔 피식하기도 하지만 '뭐야 저게'라는 평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나의 말장난은 저런 아재개그보다는 조금 수준이 높지 않을까 하는 나 혼자만의 바람이 있기도 하다.


평범한 일상을 조금 재미있게 살아보고자, 더불어 표면적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리저리 다르게 생각해보고 뒤틀어 생각해보고자 하는 바람과 노력으로 인해 이런 말장난은 나에게 너무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다가온다. 특히나 글을 쓰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는 나에게, 글자의 조합과 변형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습관과 능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아재개그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을지 몰라도, 이러한 습관과 노력은 나에게 있어 큰 자산이자 나에게 주어진 큰 탤런트(능력, 재능)라고 생각하며 오늘 내 눈에 들어오는 글자들을 다르게 한번 보기 위해 눈을 비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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