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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May 24. 2022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한 축구선수 중의 한 명인 기성용 선수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바로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 열 받아서 한 말이고, 충동적으로 한 말이다. 무엇이 그를 열 받게 했는가. 바로 열심히 뛰고 있던 대표선수들에게 훈장질을 하던, 욕을 하던 사람들 때문이다.


경기를 지켜보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좀 더 열심히 뛰어주고 좀 더 잘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 결과에 대한 화풀이를 선수들에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는 입장과 경기를 직접 뛴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이 가장 컸던 것은 사실 경기를 지켜보는 국민들보다는 경기를 직접 뛰고 있던 선수들이었을 것이다. 위로와 격려까진 바라진 않더라도, '수고했다'라는 말 정도는 들을 자격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위로는커녕 비난과 질책뿐이었으니, 그 열 받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게 욕을 들었다는 것 그 자체도 물론  열 받는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메시나 호나우두가 답답하게 경기를 풀어가던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욕을 했다면, 과연 기성용 선수는 그처럼 열이 받았을 것인가. 아마도, 짐작키로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성용 선수가 열 받은 이유의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본인보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본인에게 훈수를 두고 욕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나보다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참견하고, 간섭하고, 훈수를 두는 일. 참기 힘들다. '그렇게 잘하면 니가 해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나보다 전문가가,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훈수를 두는 일은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운전연수를 받을 때에 조수석에 탄 운전강사가 브레이크를 밟아라, 깜빡이를 켜라라고 훈수 두는 일은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운전을 잘 못하는, 내 차를 얻어 타고 가는 사람이 운전에 간섭하는 일은 참기 힘들다.


운동선수만의 얘기가 아니고, 운전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좁게 보고 깊게 보아야 하는 실무자와 달리, 넓게 봐야 돼서 얕게 볼 수밖에 없는 팀장, 부장, 소위 관리자와 자주 부딪히는 문제이다. 많이 알아보고 많이 고민해보고 많이 생각한 끝에 보고서를 가져갔는데, 돌아오는 건 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냐, 왜 더 알아보지 못했냐라는 핀잔이 돌아올 때의 일이다. 본인은 알아서 물어보는건가? ->아니다. 본인이 많이 알아본 후에 더 알아보지 못했음을 질책하는 것인가? ->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해당 사안에 대해서 내가 더 많이 알고, 내가 더 많이 알아봤는데 그러지 못한 팀장님은 왜 나를 혼내고 있는 것인가.


그럴 거면 팀장님이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기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한다. 참아야 한다. 실무자란 그런 것이고, 팀장이란 그런 것이다. 팀장이 모든 것을 다 알 수가 없다. 팀장이란 관리자이다. 관리자는 관리하는 사람이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관리를 잘해야 관리자이지, 모든 것을 알아야 관리자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나보다 자세히 모른다고 해서 내가 하는 일을 관리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조금 더 알아보게 하고 조금 더 열심히 하게 하는 관리자의 역할 그 자체에 불만을 가진다면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해당 사안에 대해 그 사람이 나보다 많이 알고 나보다 적게 알고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해당 사안에 대한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실무적으로 검토하고 알아보는 일은 실무자의 역할인 것이고, 검토하게 하고 알아보게 하는 것이 관리자의 일이다. 실무적인 세세한 부분을 나보다 모른다고 해서 나에게 지시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나에게 지시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냥 나 혼자 일해야 한다.  물론 세세한 부분을 알아보고 관리자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실무자의 역할이다. 관리자가 똑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부분들을 알아보고 검토한 후에 보고하는 것이 실무자의 역할인 것이다.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바로 관리자의 역할이고.


관리자의 물음과 질문은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과를 달성하기 위함이다. 물음표로 끝나는 의문문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아봤냐, 검토해봤냐라는 느낌표로 끝나는 강조문에 가깝다. 그리고, 알아본 내용과 검토해본 내용을 본인에게 정확히, 자세히 보고하라라는 명령문에 가깝다(물론 이를 강압적이고 감정적으로 한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이러한 태도에 관한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태도가 아니라 역할에 대해 집중하기 위해서). 나보다 실무를 잘해서가 아니라, 관리자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관리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보다 모르는 사람이, 나보다 잘 못하는 사람이 나에게 훈수 두는 일은 분명히 기분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만큼,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만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야 일을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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