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7일, 마드리드부터 생장까지의 기록
20살에 순례길을 걸어보긴 했지만, 프랑스 생장은 나에게 미지의 도시였다. 일반적인 출발지인 생장이 아닌 부르고스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나도 드디어 생장부터 걷는다.
왜 특히 생장을 궁금해했냐면, 과거에 같이 걸었던 언니 오빠들이 '생장 부심 (피레네 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 코스인 피레네 산맥이 그렇게 힘들다고 한다. 모든 순례자들이 피레네 산맥 이야기를 하면서 수다 꽃을 피울 때, 나는 대화에 끼지 못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워듣고 '힘들었구나' 상상만 해볼 뿐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생장으로 가는 게 더 설렜다. 나도 드디어 '생장 부심'을 부릴 수 있게 되는 건가!
마드리드부터 생장까지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과는 달리, 처음부터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스페인 마드리드부터 프랑스 생장에 가야 했는데, 그 길부터가 멀었다. 바로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없어 팜플로나를 거쳐야 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를 타고 팜플로나에 갔다가, 팜플로나에서 버스를 타고 생장으로 가는 여정이었다.
팜플로나 기차역에서 버스 터미널까지는 약 2.2km였다. 다음 날부터는 순례길도 걸을 건데, 이깟 2.2km은 당연히 걸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문제는 날씨였다. 오후 2시 정도 되는 시간이었는데, 더웠다. 그냥 더운 게 아니라 진짜 미친 듯이 더웠다. 시작도 안 했는데 지치는 느낌이었다.
이건 정말 심한데? 이렇게 덥다고? 싶어서 찾아봤더니, 역시나 폭염이었다. 안 그래도 더운 스페인의 여름에, 폭염까지 더해졌다. 유럽에서도 이레적인 폭염이었다. 순례길에 나서기 하루 전 폭염 소식을 접한 것이었다. 절망적이었다. 마음속에는 '개망했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ㅠㅠ)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것을 어찌하랴. 폭염이고 뭐고 난 걸을 수밖에 없었다. 팜플로나에서 햄버거를 먹고, 생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모두 설렘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 또한 그랬다.
버스가 출발한 후, 또 설렘 따위는 사라져 버렸다. 생장으로 가는 길은 아주 험난했다. 엄청나게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로 3시간을 달렸다. 팜플로나에서 먹은 햄버거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냥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생장에 도착했다.
지긋지긋한 버스에서 내린다는 사실에 들떴지만, 내리자마자 또! 절망했다. 상상 이상으로 더웠고, 습했다. 글을 쓰다 보니 왜 이 날은 절망의 연속인 걸까. 하지만 정말 습했다. 팜플로나는 덥긴 했어도 습하진 않았는데, 여기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나는 날씨였다. 딱 내가 싫어하는 날씨.
그와 별개로 생장의 풍경은 예뻤다. 딱 내가 상상하던 풍경이었다. 강이 고요하게 흐르는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그리고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다들 다음 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알베르게로 향했다.
내일을 위한 준비
순례자 사무소에서 2유로를 내고 순례자 여권을 받았다. 요즘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온다고 한다. '스페인 하숙'의 영향인 것 같았다. 여권을 받고, 배낭에 달 조개까지 얻으니 내일부터 걷는다는 실감이 확 났다.
생장에서 머물 숙소는 11번지 알베르게였다. 생장의 알베르게는 번지수로 불리는데, 55번지 알베르게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생장에 늦게 도착하기에 방을 구하지 못할 참사를 대비해서 미리 부킹닷컴으로 예약을 했다. 가격은 17유로.
알베르게 주인이 아주 친절해서 좋았다. 방은 10인실이었으며, 깔끔했다. 방 안에서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게 단점이었다. 나의 이 설렘을 친구들과 공유하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거실로 나가야 했다.
다음 날은 말로만 듣던 '죽음의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날. 새벽 6시쯤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방에 인터넷이 되지 않은 덕분에 일찍 잠에 들 수 있었다. 기대 반, 걱정 반을 품고서 말이다. 이렇게 순례길로 나설 준비가 완료됐다.
이제부터 정말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