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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ul 22. 2021

손님의 맛, 사람의 맛


  7월은 의욕이 떨어지는 달이었다. 


  6월 중순부터 (나를 포함한) 많은 사장님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도 시작되었고, 7월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될 것이라는 데서 오는 기대감이었다. 우리를 답답하게 했던 5인 모임 제한과 영업시간 제한도 조금씩 풀릴 거라며, 이제 열심히 일 좀 해보자고, 그렇게 다들 7월을 기다렸다. 


  그러나 상황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확진자수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면서 7월 1일 바로 전날, 그러니까 6월 30일에, 그것도 오후 늦게, 현행 거리두기 단계를 유지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7월 1일 저녁 7시에 6명 예약을 받아놓았던 많은 가게들은 예약을 취소하고, 준비해놓았던 재료들을 다 버려야 했다. 밤 12시까지 영업할 생각에 새로 직원도 뽑아놓았던 사장님들은 한 번도 출근하지 못한 직원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다시 연락하는 염치없음을 무릅써야 했다. 


  그럼에도 확진자수는 계속 늘어났다. 어디서들 그렇게 걸리는지. 1500명, 1600명, 1800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다. 7월부터 완화된다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오히려 더 격상되었다. 가장 높은 단계인 4단계. 저녁 6시 이후 3인 이상 금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잠자코 집에만 계세요'라는 의미의 조치인 것이다. 


  안 그래도 조용한 우리 카페에는 더 조용함이 찾아왔다. 갑자기 6명이 몰려와서 앉으려고 하면 자리를 어떻게 앉게 해 드려야 하나를 고민했는데, 2명의 손님을 받는 일도 간신히 있는 일이 되었다. 그나마 우리 카페는 큰 길가에 위치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다가 한 번씩 들어오기라도 하지, 구석진 골목에 있는 다른 가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저녁 손님이 뚝 끊기다 보니, 저녁에 알바생을 쓰는 것도 고민이 되었다. 당분간 2주 쉬라고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알바생이 먼저 선수를 쳤다. "사장님, 저 이번 달까지만 일해야 할 것 같아요." 카페 오픈부터 함께 했던 우리 알뜰한 알바생이 작별을 고한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보다 알바비 계산부터 하고 있는 나의 인간미에 진절머리가 났다. 심지어 '그럼 2주 쉬라는 말은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며 정말이지 끔찍한 카페 사장이 되어 버렸다. 


  우리 앞집 갈빗집은 화요일에 문을 닫았다. 그 집은 1년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하는 집인데 (명절 연휴에도 쉬지 않고 문을 여는데!) 그날 하루 종일 문을 닫았다. 우리 카페가 있는 골목은 원래 저녁이 되면 낮보다 환해지곤 했다. 우리 카페의 조명이 환하고, 갈빗집의 조명이 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요일, 골목이 어둑어둑해졌다. 캄캄한 갈빗집을 보니 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 와중에 몇몇 커플이 우리 카페에 들어왔다. 캄캄한 갈빗집 앞에서 불을 환하게 켜놓고 한 두 테이블의 손님을 받는 우리 카페는, 뭐랄까, 이질적이었다. 


  밤 10시, 그날의 영업을 마감하고 캄캄한 갈빗집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거리두기 4단계가 끝날 때까지 당분간 화요일 휴무'라고 손으로 정성스레 써붙인 A4용지를 보며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래, 사장님도 좀 쉬셔야지...' 싶으면서도, 캄캄한 갈빗집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나는 사진도 찍지 못했다. 찍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이 기록을 남겨놓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연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음 주 화요일, 앞집 갈빗집은 또 캄캄해질지도 모르겠다. "사장님, 이번 기회에 푹 좀 쉬세요"라고 마음 편한 소리를 할 수 없어서 슬프다. 






 

 

  나에게 '나의 카페'는 '나의 열정'과 '나의 열망'이다. 나는 나의 열망을 열정을 담아 이곳에 쏟아부었다. (참고 <성의껏 열정 부리기>) 그런 나의 열정과 열망이 사그라들었다. 의욕 넘치게 이것도 저것도 해보려던 나는, 이 푸르른 7월, 무기력하게 앉아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고 있다. 


  연중무휴라는 원대한 꿈도 꾸며 이런저런 계획도 세워보았는데, 한여름밤의 꿈이 되었다. 그래, 한여름밤의 꿈이다. 지금은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으니. 


  뜨거운 여름이다. 연일 폭염경보가 뜬다. 아침에 가게에 출근해서 불을 켜기 전에 에어컨부터 켜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저녁에 텅 빈 가게에 에어컨을 풀가동하며, 이번 달 전기요금을 걱정하며, 나는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한다. 영업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나에게도 '저녁이 있는 삶'이 생기는 것일까. 


  하나도 바쁘지 않았다. 그나마 바쁜 건 아침부터 점심까지의 몇 시간이다. 이후는 계속 아주 한가했다. 글 쓰는데 집중하고 있어도 하나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일주일에 (최소) 하나의 글을 써 올려야 했지만, 나는 쓸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있었다. 글을 쓰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고, 무슨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는 날들이 이어졌다. 


  책을 보지만, 보고 싶은 책은 보지 않았다.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책을 몇 페이지 넘겨보다 덮고, 다시 들춰보고, 다시 덮었다. 사고 싶었던 책들이 모바일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한가득 담겨 있지만, 50~60만 원을 주고 한 번에 결제하자니, 지금 같은 시기에 너무나 부담이 되어, 그럼 몇 권만 골라야겠다 싶어 고르다 보면 또 20~30만 원이 되었다. 그 돈이면 알바생에게 쓸 돈을 더 쓰지 싶어, 나는 책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카페 문을 연다. 영업시간을 단축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정말, 너무나 감사하게도, 와주시는 손님들이 계속 와주신다. 이 더운 여름에도, 꿉꿉하고 후끈후끈한 길을 걸어 우리 카페에 와 주신다. 지친 표정으로 카페에 기어들어와 "사장님... 아이스아메..리카노... 빨리요..."라고 힘겹게 주문하는 우리 손님들을 보며 나는 "네네!!!" 하고 결제도 하지 않고 커피부터 내린다. 얼음을 푸고 있으면 손님은 다시 말한다 "사장님... 얼음... 많이..요..." 그러면 나는 얼음을 더 담을 수 없을 만큼 수북이 올린다. 

  드디어 아메리카노를 손에 받아 든 손님은, 우선 한 모금 빨고, 카드와 쿠폰을 내민다. 나는 결제를 하고 쿠폰에 도장을 찍어 돌려드린다. "밖에 너무 덥죠!"라고 한마디 하면 손님은 말도 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다시 빨고 말한다. "우와, 정말, 어쩜, 날씨, 이럴 수가 있죠! 근데 저는 왜 이 날씨에 여기까지 걸어와서 또 이 커피를 먹고 있을까요!"  


  아, 나의 손님. 


  요즘, 아침에 매일 오시는 여성 손님이 있다. 텀블러에 따뜻한 커피를 가져가신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늘 하던 인사를 했더니, 오늘은 그 손님이 글쎄, "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해주셨다. 잘 웃지 않고 늘 시크한 모습으로 시크하게 걸어 들어와 시크하게 텀블러를 내밀면서 "여기 담아주세요"라고 커피를 주문하시는 그분은 오늘, 그 시크한 목소리와 말투로 나에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해주셨다. 


  아, 이 맛이구나. 

  이 맛에 내가 이 아침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나오는 거구나. 


  이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를 오늘은 두 번이나 들었다. 내가 할 인사를 먼저 해주시는 손님들이다. 


  심지어 오늘 한 손님은 내가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자, 커피를 손에 들고 만지작만지작 주저주저하시다가 "...저번에 여기서 커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그때 잘 먹었다고 하고 싶었는데 말 못 하고 그냥 갔어요. 꼭 인사하고 싶어서 여기 들리려고 오늘 아침에 10분 일찍 나왔어요. 오늘도 잘 마실게요. 고맙습니다^^"라고 해주셨다.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 깊은 곳에 뜨끔뜨끔 열이 오르면서 어금니가 뻐근해졌다. 나는 우물우물하다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겨우 말했다.  


  아, 손님의 맛.

  이 맛에 내가 오늘도 카페 문을 열었구나. 


  한 어린이 손님이 자기가 끼고 있던 공룡 반지를 빼서 나에게 주었다. 내가 반지를 끼고 좋아하며 사진도 찍으니 어린이 손님이 흡족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잠시 후 내가 반지를 빼서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 돌려드렸고, 어머니가 어린이 손님 손에 반지를 끼우자 어린이 손님이 울기 시작했다. "이거 내가 저 언니한테 준거란 말이야!"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하며 다시 나에게 반지를 가져오셨다. 나는 어린이 손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 "이거 너무 고마워요! 근데 우리 영은이 손가락이 더 예뻐서 반지도 영은이가 끼는 게 더 예쁘겠어요^^" 어린이 손님은 다음에 카페 언니 손가락에 예쁜 반지를 가져오겠다며 엄마 손을 잡고 나갔다. 


  아, 이 맛.


  한 손님은 뚜벅뚜벅 카페에 걸어 들어와 카운터 앞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가 "주문 도와드릴까요?"라고 묻자 그분은 "아뇨, 오늘은 커피 마시러 온 거 아니에요"라며 손에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나에게 내미셨다. "맨날 고마워서요." 내가 "네? 이거 저 주시는 거예요?"라고 하자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다시 말하셨다. "맨날 고마워서요." 나는 빵 터져 웃었다. 손님은 같이 조금 웃더니 "안녕히 계세요!"하고 나가셨는데, 남겨진 나는 내 손에 쥐어진 캔커피를 보며 계속 웃었다. 정말 너무 고마운데, 아니, 그런데, 카페 사장에게 캔커피를 주시다니. 

  냉장고에 캔커피를 넣어놨더니 오는 알바생들마다 대체 이게 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에게 물었다. "손님이 주셨어."라고 말하자 알바생들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네에? 손님이요? 사장님한테 캔커피를 주셨다고요?" 하며 빵 터져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지치고 무료할 때마다 냉장고를 열어 캔커피를 보고 웃었다. 


  그래, 이 맛이구나. 


  내 의욕이 떨어진걸 어떻게 아시고, 손님들은 나에게 다시금 열정과 열망을 불어넣어 주신다. 이런 귀신같은 손님들. (참고 <오늘이 대체 무슨 날이길래>) 이 맛에, 나는 이 시기에 열심히 카페 문을 연다. 영업시간을 단축하지 않는다. 







  "넌 사람으로부터 힘을 얻는 타입인 것 같아. 근데 또 신기한 게,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너를 만나는 사람도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 내가 그렇거든. 너는 나중에 꼭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라고 한 선배가 말한 적이 있다. 


  이후 15년 정도 지나는 동안 이 말은 문득문득 내 귓가에 웅웅거렸다. 주로 사람에 지쳤을 때였다. 가까웠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믿었던 사람이 차가워지고, 영원할 것 같던 사람이 떠났을 때. 사람을 만나는 게 끔찍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 사람을 피해 다니던 나의 귀에 선배의 저 말이 자꾸 웅웅거렸다. 이 지경인데도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그 선배 때문은 아니지만, 아무튼 현재의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동네 카페 사장처럼 사람을 만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나의 귀에는 요즘 다시 그 선배의 말이 웅웅거린다. 지금은 사람에 지쳐서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의 마음에 열정과 열망을 불어넣어 준다. 사람의 맛이다. 


  선배의 이 말이 요즘 나의 귓가에 다시 웅웅거린다. "사람을 만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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