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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Jun 16. 2021

자세가 나와야 해

고무장갑


  엄마는 나에게 꼭 고무장갑을 끼라고 했다. 


  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엄마는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달려와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몇 번을 말해!!" 아니, 이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인가. 


  어쩌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베란다에 있던 엄마는 달려와서 반드시 화를 냈다. "고무장갑 끼라고 했지!!!" 내가 주섬주섬 고무장갑을 끼는 걸 확인하고야 엄마는 베란다로 돌아가 고무장갑을 다시 끼고 일을 했다. 엄마는 집에서 늘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주방에 있을 때도, 베란다에 있을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세탁기를 돌릴 때도 엄마는 고무장갑을 꼈다. 


  집에서 내가 혼자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해 놓으면, 밤에 귀가한 엄마는 나에게 물었다. "설거지, 고무장갑 끼고 한 거야?" 내가 그렇다고 하면 엄마는 "그래"하면서도 의심쩍은 얼굴로 내 손을 훑었다. 




  평일 낮의 우리 알바생은 알바 경험이 풍부하다. 스무 살 때부터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이삭토스트에서 풀타임으로 1년 반을 일했다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경력인데, 파리바게뜨와 설빙에서도 1년이 넘도록 지금껏 일하고 있다. 


  한편 그전에 있던 알바생은 우리 카페에서 한 알바가 첫 알바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두 알바생을 보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알바 경험의 차이는 일에 대한 자세의 차이였다. 


  우리 카페에서의 알바가 첫 알바였던 알바생은 맨손으로 설거지를 했다. 그러니 차가운 물에는 "앗 차가워!" 했고, 뜨거운 물에는 "앗 뜨거워!"라고 했다. 청소를 할 때도 맨손으로 빗자루를 잡고 걸레를 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손 끝으로 살짝 잡았다. 바깥에 떨어진 쓰레기를 손으로 주울 때는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두 개로 떨어질 듯 말 듯하게 집어 올렸다. 


  알바 경험이 풍부한 알바생은 모든 일에 앞서 일단 고무장갑을 낀다. 고무장갑을 낀 이 알바생은 거침이 없다. 얼음물에도 손을 풍덩 담그고,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에도 손을 풍덩 담근다. 아무리 더러운 그릇도 덥석덥석 잡아 씻는다. 세제를 풀어 벅벅 행주를 빨고 걸레를 빤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바깥에 나가 양손에 한가득 쓰레기를 줍는다. 


  이 알바생을 보면서, 나는 엄마가 왜 그토록 고무장갑에 집착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의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손이 거칠어지는 것도 걱정했겠지만,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일하지 않는 나의 자세에 대해 화를 냈던 것이다. 







  내 인생은 참 감사하게도 순조로운 인생이었다.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쟁취해야 하고, 서바이벌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적이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성실히 하다 보면 다음 단계가 열렸고, 그다음 단계로 슬슬 돌입해서 또 성실하게 해 나가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꼭 해야 돼!" 하고 달려들었던 적이 없었다. '되면 좋지. 아님 말고.'의 마인드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시험에서 떨어져도 별로 큰 타격이 없었다. '내 길이 아니었나 보지. 어쩔 수 없지.' 하면 끝이었다. 


  아빠는 이런 나를 좋아했다.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모든 젊은이들이 너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런데 그게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아빠가 알게 된 건 내가 스물일곱 살이 되어서였다. 


  아빠는 배드민턴 구력이 30년 정도 되는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었다. 딱 한번 무슨 대회를 나갔는데 거기서 (무려) 우승도 했다. 아빠는 배드민턴 클럽에서 회장도 아니고 고문도 아니었으나,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아빠를 존경했다. 우리 아빠랑 한 게임 같이 쳐보고 싶어서 다들 줄을 섰다. 모두들 서로서로 '언니', '오빠', '누님', '형님'으로 호칭이 통일된 그곳에서 아빠는 유일하게 '교수님'으로 통했다. '선생님'도 아닌 '교수님'. 


  그 아빠가 나를 정식으로 배드민턴 클럽에 데려갔다. 산 중턱에 위치한 그 클럽에 회원으로 등록을 시키고, 레슨도 받으라고 했다. 처음 배울 때는 돈을 내고 제대로 배워야 한다면서 3개월치를 선결제했다. 아빠는 코치님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우리 딸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코치님은 화들짝 놀라 이마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다.  

 

  그동안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가끔 아빠와 배드민턴을 치며 재밌게 놀긴 했어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배드민턴을 치는 건 처음이었다. 


  레슨 첫날, 코치님은 나에게 라켓도 잡지 못하게 했다. 맨손으로 셔틀콕을 잡고 야구공 던지듯이 던지는 연습부터 했다. 그러고 나서 라켓 잡는 법을 알려주었고, 스윙할 때의 각도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스텝을 배웠다. 반대편에서 공이 날아온다고 그냥 달려가서 치는 게 아니었다. 한걸음 한걸음 다 규칙이 있었다. 그 규칙을 따라서 뛰고 또 뛰었다. 이게 이렇게 힘든 운동이었구나. 나는 다리가 풀리고 숨이 차올라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코치님은 "자, 이번엔 진짜 마지막! 한 번만 더!"라며 나를 약 올렸다.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이 계속 반복되었고 그 뜀박질을 하며 나는 죽을 것처럼 헉헉거렸다. 


  아빠는 내가 레슨 받을 때마다 클럽에 왔다. 나와 함께 오진 않았다. 내가 레슨을 받다가 힘들어 주저앉아있다가 물 한 모금 먹으려고 두리번거리면 저 뒤의 한 구석에 아빠가 보였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는 아빠는 앉아서 내가 레슨 받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레슨이 지나고, 함께 집으로 오던 아빠는 나직하게 나에게 물었다. "하기 싫은데 아빠가 하라고 해서 억지로 하는 거 아니지?" 나는 아니라고 했다. 열심히 배워서 잘하고 싶다고, 아빠랑 같이 팀 짜서 게임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네가 그냥그냥 하는 것 같아 보이길래. 모든 일에는 자세가 나와야 해. 바싹 달려들어서 해야 된다는 말이야. 무게중심을 앞에 놓고 허벅지에 힘 빡 주면서 동시에 발은 가볍게. 스윙도 있는 힘껏 하고. 이겨도 좋고 져도 좋고 하는 마음으로는 안돼. 꼭 이기고 싶다는 눈빛으로 이글이글 타올라야 해. 그래야 늘어." 


  아빠는 또 말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가 올 거야.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올 거야. 금방 올 수도 있고. 그럴 때 마냥 느긋하게 있으면 안 돼. 달려들어 덤벼야 돼. 남을 짓밟으라는 게 아니야. 너의 당연한 몫을 챙겨야 한다는 말이야. 아무도 챙겨주지 않거든. 뺏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네 건 네가 챙겨야 해." 


  다음날, 아빠는 나와 배드민턴 샵에 가자고 했다. "자세가 나오려면 장비가 필요한 법이지." 

  제일 좋은 배드민턴 신발을 사고, 운동복을 샀다. 이제 아빠의 라켓 말고 나만의 라켓이 있어야 한다면서 좋은 라켓을 하나 샀고, 배드민턴 가방도 샀다. 그렇게 풀 세팅한 모습으로 배드민턴 레슨을 받으러 갔다. 나는 또 헉헉거리며 뛰고 또 뛰며 레슨을 받았고 아빠는 또 저 뒤의 한 구석에서 내가 레슨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의 레슨이 끝나고 쓰러져 있는 나에게 아빠는 웃으며 다가왔다. "이선수! 집에 갑시다! 오늘 눈빛 좋더라. 자세 나오네!"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아빠 말대로, 아무도 내 걸 챙겨주지 않았다. 뺏기지 않기 위해, 당연한 나의 것을 순순히 받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그렇게 생전 안 해본 걸 하느라 지난 몇 년간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다. 이젠 그렇게 고생을 하며 경험치가 쌓였고, 카페 사장이 되었다. 나는 느긋하게 있다가도 갑자기 달려들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온갖 일들을 한다. 


  막힌 싱크대를 뚫고, 시커먼 물이 줄줄 흐르는 걸레를 거침없이 빤다. 벌레를 잡고, 죽은 벌레를 덥석 집어 버린다.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꾹꾹 눌러 담아 파리가 윙윙 날리는 쓰레기장에 다녀온다. 뜨거운 물에 기름기 가득한 그릇을 담가 닦고 펄펄 끓는 물에 행주를 삶는다. 


  이 모든 일은 나의 훌륭한 장비, 고무장갑과 함께 이루어진다. 


  고무장갑을 끼면 나오는 자세가 있다. 양손을 벌리고 살짝 꼼지락 하면서 무게중심을 약간 앞으로 쏟는 게 기본자세다. 이 자세를 할 때는 눈동자가 오른쪽 왼쪽으로 빠르게 왔다 갔다 한다. 해야 할 일들과 동선을 훑는 것이다. 발은 가벼워야 한다. 이곳저곳을 빠르게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알바생들과 함께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하면 우리는 못할 일이 없다. 구석구석을 문지르고 닦는다. 


  하루에도 수십 번(어쩌면 수백 번) 고무장갑을 낀다. 숟가락 하나를 씻는데도 고무장갑을 낀다. 이젠 엄마가 달려와 화를 내지 않는데도 나는 고무장갑을 낀다. 이게 나의 자세다. 달려들어 무엇이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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