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Sep 30. 2021

열정 없는 여름에 만난 열정들


  우리 카페에는 열정적인 알바생이 있다. 


  일하러 오기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온다. 설레서 잠이 안 왔단다. 3월부터 일했으니 6개월이 넘도록 일하고 있는데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너무 맛있다며 먹을 때마다 감동하며 마신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카페에도 공지, 홍보가 필요하다며 혼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오피셜(official)'이란 이름을 붙여 매일 피드를 올리고 공지를 올린다. 올릴 때마다 나에게 컨펌해달라며 연락을 해오는데, 본인은 출근도 하지 않는 날에도 아침 8시부터 메시지를 보내온다. 나는 조금 귀찮고 짜증도 나고 부담도 되지만, '그래, 내가 복에 겨웠지'하며 공지 내용을 수정해주고 컨펌한다. 


  카페 주방에서 이 열정 알바와 함께 있다 보면 나는 어느샌가 두 손을 모으고 알바생의 잔소리를 듣고 있다. "사장님! 이거 언제 주문하실 거예요?" "사장님! 로스팅 언제 하셨어요?" "사장님! 오늘 우유 오나요?" "사장님! 디저트 신메뉴는요?" "사장님! 사장님!" 

  맡겨놓고 내가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그 사이 뭔가 많은 일들을 한다. 다녀오면 여기저기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파우더 리필!' '설탕통 하나 더!' '수세미 교체!' 등. 


  이 알바생에게는 야망이 있다. 우리 카페의 매니저가 되겠다는 야망.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카페가 무조건 아주 잘되어야 한다며,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하루 종일 메시지를 보내온다. "사장님,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하며. 주방 동선, 원두 진열 순서, 메뉴 개발까지 온갖 아이디어를 날이면 날마다 나에게 쏟아낸다. 


  2021년 여름, 열정 알바는 이렇게나 열정을 불태우는 동안, 정작 카페 사장인 나는 그 열정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동네에 처박혀 조용히 카페나 하며 살려던 나는, 그러나, 그래도 대충 하기는 싫은 마음에 열정적으로 달려들어 이것저것들을 시도하고 일을 벌이던 나는, 7월 8월 9월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무기력함에 몸을 내맡긴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잠시 의욕을 끌어올려봤지만 (참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더라고요>) 그때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뭐라도 핑계를 대야겠어서 코로나를 탓하고 있을 뿐. 그래, 이건 다 코로나 때문일 거야. 


  그러는 동안 열정 알바는 내 몸을 붙잡고 사정없이 흔들며 나에게 열정을 주입했다. "사장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요!" 이 열정 알바의 열정에 나는 나의 열정 없음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카페에는 열정적인 손님도 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시는 손님이다. 이렇게나 몇 달 동안 주 5일 오셨으면 이제는 좀 그냥 판에 박힌 주문을 하고 커피만 가져가실 법도 한데, 오실 때마다 늘 새로운 인사를 해주신다.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금요일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선선해서 걷기 너무 좋네요!" "월요일에 뵈어요." "금요일도 빨리 오지만 월요일도 빨리 오네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번 이렇게 나를 위해 준비해주시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부끄럽고 송구했다. 나는 열정 없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열정 없는 삶은 이토록 빨리 흘렀다. 갑자기 7월이 끝났고, 순식간에 8월이 끝났고, 지금, 9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새로운 달을 맞이할 때마다 "말도 안 돼"라고 혼자 속삭이며 한숨을 쉬었다. 


  브런치 작가님들이 새로운 글을 발행했다는 알림이 울리면 움찔했다. 한 달이 넘도록 아무 글도 쓰지 않는 나의 모습이 겹쳐지며 움츠러들었다. 그분들의 글을 너무나 읽고 싶은 한편, 한없이 의기소침해질 것 같아 읽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미루어두었던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날이면 역시나 나는 움츠러들었다. 작가님들의 열정이 그곳에 있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로 작가님들의 열정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감춰지지 않는 열정이 단어 사이사이로 삐죽삐죽 삐져나왔다. 


  그분들의 열정을 읽으며 나는 나의 열정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분들의 열정을 이렇게나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내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내가, 글을 쓰고 싶지 않다니. 


  써야 할 글을, 아니, 쓰고 싶은 글을 한두 문장씩 저장해놓은 나의 작가의 서랍은 이미 넘치고 넘쳤다.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리고 계속 내려도 끝까지 내려지지 않는 나의 서랍. 이토록이나 많은 나의 생각과 감정들에 제대로 옷을 입혀주지 못한 채 속절없이 시간이 흘렀다. 나는 나의 열정 없음에 미안하고 미안했다.  




  이 와중에 한 사람을 만났다. 열정 없는 나에게 뛰어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매일 나에게 밥을 먹였고, 시간 시간 나의 안부를 물었다. 불명확한 나의 모습을 답답해하면서도 그런 나를 어떻게든 이해하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진심을 전하고, 끊임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백하고 있다. 시간 시간 이 사람의 열정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초라해졌다. 내 열정은 다 어디 갔을까. 


  9월의 시작을 이 사람과 했으니, 9월의 마지막 날인 지금, 그러니까 한 달이 된 셈이다. 알고 보니 이 사람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던 사람은 아니었다. 없는 열정을 끌어모아 나에게 쏟아붓고 있는 거였다. 나는 한 달 동안 이 사람이 바닥부터 끌어모은 열정을 온통 받아냈다. 







  오랜만에 에그타르트를 구웠다. 에그타르트가 나와있는 걸 보고 열정 알바가 환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사장님! 이거 하셨네요! 열정이 돌아오신 건가요!" 나는 왠지 쑥스러워져서 눈길을 피했는데, 열정 알바는 뒤이어 이렇게 말했다. "그분이 사장님한테 열정을 넣어주신 건가요!" 


  그래, 어쩌면 그 사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그저 가만히 앉아 사랑만 받으라고 말하는 그의 열정을 받으며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내 주위의 수많은 열정적인 사람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열정 알바, 열정 손님, 열정 작가님들. 지난 시간 이분들이 쏟아준 열정들이 내 몸과 마음에 쌓여왔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진한 열정이 내 안에 차오를 만큼 차오른 느낌이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오롯한 나의 열정이 아닌, 주입된 열정으로 내가 움직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이끌어주시는 고마운 열정들. 


  덕분에 '그래,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새로운 생두 데려다가 로스팅도 좀 해보고, 새로운 디저트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만들다 만 시그니처 메뉴도 한번 완성 짓고, 메뉴판도 한번 재정비를 하자', '창고 정리도 한번 하고 주방 동선도 손을 한 번 대야겠다' 하는 생각들. 에그타르트는 이 모든 생각들의 아주 작은 시작이었다. 




  내 열정이 떨어지기 전, 우리 카페에 다녀가신 한 손님이 '최애 카페'라는 표현을 해주셨다. 너무 좋았지만, 나는 사실 그 표현을 듣고 조금 쑥스러웠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물론 나는 내 나름대로 용을 쓰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아직 그 정도의 평가를 듣기에는 부족한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욕심이 났다. '최애 카페'가 되고 싶은 욕심. 손님들의 최애 카페가 되었으면, 그리고 나의 최애 카페가 되었으면 하는 욕심. 하지만 욕심뿐이었다. 나는 열정 없는 여름을 보내며 이 아름다운 욕심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나의 열정 없음이 하루하루 부끄러웠다. 열정 없이 여름을 보내게 한 나의 카페에도 미안하고 미안했다. 


  할 일이 많다. 손볼 구석이 많다. 구상하고 궁리하며 힘도 쓰고 바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바쁜 10월이 될 것이다. 바쁜 10월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열정을 쏟아준 사람들의 열정에 최선을 다해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하게 '최애 카페'가 되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나의 '워(Work)'와 '라(Lif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