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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15. 2022

손님들의 애정


  "영원한 단골은 없는가 봅니다." 하는 어떤 카페 사장님의 글에, 다른 사장님이 "영원한 단골이 있기도 합디다."라고 댓글을 달아주신 걸 보았다. 


  이걸 보고 '단골이라...' 하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사장님, 저 여기 단골입니다. 기억하시죠?"라고 말씀하시며 친근함을 드러내셨다. 


  단골이라니. 사실 이 분은 아직 '단골'까지는 아니었다. 어제 처음 오셨고, 오늘 오신 게 두 번째였으니까. 그분이 내민 쿠폰에 찍힌 도장 1개가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도장 하나를 더 찍어드리며 "네~ 그럼요, 기억하죠. 어제도 오셨잖아요^^"라고 말해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싱글벙글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제가요, 이 집 커피만 먹어요. 다른데 커피는 영 못 먹겠더라고."    


  내일 또 오겠다던 그 손님은 다행히 다음날 또 오셨다. 나는 그분에게 '단골'이라는 칭호를 주저 없이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사흘 연속으로 오신 손님이니까. 그래, 이 정도면 단골손님이시지. 


  이분 말고도 우리 카페에는 단골손님들이 계신다. 누가 봐도 단골손님인 진짜 단골손님들이다. 매일 오는 분들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오는 분들도 있다. 요점은 꾸준히 계속 오신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 오신 손님이 다음 주가 되면 또 오신다. 


  한편으론, 자주 오지 않는데도 단골 냄새를 폴폴 풍기는 분들도 있다. 한 달에 한두 번, 아니, 두어 달에 한두 번 오면서 나에게 먼저 말을 걸고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떤 손님은 어쩌다 한 번씩 와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4~5시간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가면서 또 나에게 말을 건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 이런 걸 보면 단골손님은 자주 와서 단골손님인 게 아니라, 가게 주인과 친밀해서 단골손님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요점은 꾸준히 계속 오신다는 점이다. 나는 친밀함을 내어드린다. 


  이렇게 '단골손님'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오셔서 말 한마디 없이 커피만 마시고 가시는 손님이신데,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서면서 의자를 정리하시는 것이었다. 나에게 빈 컵을 가져다주시고 나가는 길에 다른 테이블에 있는 의자가 비뚤어져있자, 그것까지도 정리하고 나가셨다.


  세상에, 의자를 정리해주는 손님이라니. 


  이후 여러 손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다 드시고 일어서면서 행주를 달라고 하셔서 (굳이) 테이블 정리를 해주시는 손님이 계셨고 모아놨던 컵 캐리어를 한 아름 다시 들고 오는 손님도 있었다.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단골손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나의 모습이 일순간 부끄러워졌다. 매일 오시는 손님이든, 가끔 오시는 손님이든, 모두가 나의 손님이었다. 카페 사장에게 말을 걸든 걸지 않든 나의 손님이었다. 나의 손님들은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우리 카페를 이렇게나 애정하고 계셨다. 


  손님들의 애정이 카페 곳곳에 이렇게나 묻어 있었다. 




  "여기 도착하기 5분 전부터 생각해요. 오늘은 무슨 커피를 마실까."하고 말씀해주신 손님이 있다. "덕분에 매일 아침이 좋습니다."하고 말씀해주신 손님도 있다.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손님이 있고,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눈이 오면 눈이 온다고 알려주시는 손님이 있다. 늘 "오늘도 잘 마셨습니다"하고 말씀하시며 나와 눈을 맞추어주시는 손님이 있다. "사장님도 쉬실 때 남이 타 준 커피 한 잔 하세요"라며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주는 손님이 있고, "지나가는 길에 보니까 딸기가 싱싱하더라고요.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라며 딸기를 주는 손님이 있다. 나에게 군고구마도 주시고 포도도 주시는 손님들이다.


  나의 손님들이다. 





  심지어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는 인사를 받으며 카페 일을 하고 있다. 

  이 인사는, 분명, 분에 넘친다. 




  텀블러를 들고 매일 오셨던 손님이 있다. 40대 중후반 정도의 여성분으로, 오셔서 별말씀 없이 그냥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시고,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달라고 하시고, 커피를 받고 나면 "수고하세요"하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 쿨하게 나가곤 하셨다. 매일 만났지만, 우리는 다른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쯤 지났을까, 그분이 드디어 나에게 말을 거셨다. "저 이번 주까지만 이 동네에서 근무해요. 3개월 파견 나온 거거든요. 아침마다 여기 들러서 커피 마시는 게 좋았는데, 이제 그것도 이번 주면 끝이네요. 다른 동네에서도 좀 괜찮은 카페가 있어야 할 텐데..." 

  그 주 금요일, 그분은 같은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오늘이 마지막 커피네요. 잘 마실게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선결제해놓고 커피를 가져가곤 하던 손님이 있다. 한 번에 3~4만 원 정도 미리 결제를 해놓고 일주일에 몇 번이고 오셔서 커피를 가져가셨던 분이다. 우리 카페가 오픈할 때부터 거의 1년을 오신 손님이다. 얼마 전 그분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우리 카페에 오셔서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는 말을 아르바이트생에게서 전해 들었다.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아쉽지만 이제 못 오게 되었다고. 이 동네 놀러 오면 한 번씩 들르겠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또 다른 직장인 손님은 어느 날 회사에 사표를 낸다고 하셨다. 무겁고 힘든 결정이었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보아도 지금이 딱 그래야 할 시기인 것 같다고 하셨다. 그분은 회사를 그만두는 건 홀가분한데, 아침마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가져가는 생활이 끝나는 게 아쉽다고 하셨다. 나는 "한 번씩 놀러 오세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다시 오신 그 손님은 "사장님, 어제 수고 많았다고 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사표 낸다고 사장님한테 처음 말한 거거든요. 그 후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했더니 전부 다 난리네요. 수고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사장님밖에 없어요. 고맙습니다. 제가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이었어요." 그리고 이어 말씀하셨다. "그리고요, 사장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난 그저 받을 돈을 받고 커피를 파는 카페 사장인데, 손님들은 자꾸 나한테 이토록이나 짙은 인사를 해주신다. 사실, 고마우면 내가 더 고마워야 할 일인데, 손님들이 자꾸 나한테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의 고마움을 나에게 표현해준다. 


  나의 손님들이다. 

  분에 넘친다. 





  나는 오늘도 나의 손님들께 커피 한 잔을 내어드린다. 드릴게 커피뿐이라 쑥스럽지만, 받을 돈 받고 드리는 커피라 민망하지만, 이 모든 쑥스러움과 민망함은 오로지 나의 몫으로 끌어안은 채, 다만, '맛있어라, 제발 맛있어라'하는 주문을 외며, 커피를 드린다.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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