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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Dec 24. 2021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1년


  아빠는 말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야." 


  아빠는 또 말했다.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야. 사람들은 모두 돈이 다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돈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한 친구는 '돈'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해도 받는 월급으로는 대출금 이자 내고 세금 내고 나면 생활비 쓰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더 이상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고. 일이란, 하루하루의 보람과 활력이 되는 소일거리 정도의 의미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고. 그렇게 하루하루 일해서 한 푼 한 푼 벌어들이는 돈은 그저 아주 기초적인 생활을 굴러가게 하는 정도의 힘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고. 그 외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자금이나 자아실현을 위한 자금, 그리고 노후준비자금 같은 것들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해결을 봐야 하는 것 같다고. 


  이 친구의 회의감에 공감하진 않지만(그리고 부동산과 주식으로 결론을 내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은 일 자체로의 목적을 두고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며,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에 너무 의지하지 않는다는 자세는 어쩌면 내가 돈에 대해 갖는 자세와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벌어놓은 큰돈이 한 번에 훅 나가기도 하고, 앞이 캄캄할 때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훅 들어오기도 했다. 몇 번이나 이걸 경험한 이후로, 아빠와 나는 '돈'이라는 것에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우리는 우리를 돕는 손이 우리를 감싸고 있으니 만나와 메추라기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돈을 목적으로 두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 자체에 목적을 두고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매일매일의 삶을 감사하며 살 수 있는 힘이 '일'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힘겨운 일도 있고 스트레스도 당연히 있지만, 그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열정, 자부심이 그곳에 있으므로. 그리고 아빠는 말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며 하루를 아름답게 사는 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분에 대한 예의라고. 


  아빠는 이어서 말했다. 이렇게 즐겁게 일을 하면서 벌어들이게 되는 돈은 '나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돈이 아니다'는 것을 유념하자고. 나의 만나와 메추라기가 채워졌다면, 그 외에 벌어들이는 돈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게 되어야 한다고. 






  1년이 되었다. 나의 카페를 오픈하고 출근한 지. 


  월급 받고 일할 때는 '일' 자체에 들어가는 돈이 없었지만, 카페일을 하면서, 그러니까 사업을 하면서는 '일'에 들어가는 돈이 꽤 필요했다. '사업'이라는 거창한 말은 부끄럽지만, 아무튼 나는 이 작은 '일'을 하기 위해 꾸준히 돈을 쓴다. 

  매달 어마어마한 월세와 관리비를 낸다. 그것 말고도 써야 할 돈들이 많다. 돈돈 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사업을 하면서 재료비와 인건비는 아끼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휙휙 내저으며 '돈돈'하는 생각을 떨쳐낸다.


  주위 사람들은 걱정이 많다. "장사는 잘 되니?" "코로나가 이 지경인데..." "손님은 좀 와?" "월세는 나와야 할 텐데..." "관리비 밀린 건 없고?" 나는 "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라고 준비해두었던 대답을 한다. 


  이렇게 괜찮은 척 하지만, 돈이 쑥쑥 빠져나가는 날을 기점으로 나는 긴장과 한숨과 힘 빠짐을 매달 느낀다. 월세를 내는 월초, 카드값이 빠져나가는 월 중반, 그리고 아르바이트비를 지급하는 월말. 통장 잔고에 0이 찍히는 모습을 매달 본다. 통장이 텅장이 된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하고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내 인생에 이렇게 돈돈 거리며 사는 날이 오는구나.


  그런데 이 와중에, 참으로 놀랍게도, 지난 열두 달 동안 단 한 번도 월세를 늦게 낸 적 없고, 관리비를 밀린 적도 없다. 지급해야 할 아르바이트비를 늦게 지급한 적도 없고, 써야 할 재료비를 쓰지 못한 적도 없다. 신명 나는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래도, 가게에 쓸 수 있는 돈을 충분히 쓰고, 나 스스로 쓸 돈 또한 쓰고 있다. 빠듯한 살림살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매달 몇백만 원씩 돈이 쑥쑥 빠져나가지만, 그래도 그 모든 걸 감당하면서 1년을 지내왔다. 어떻게 감당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아빠 말이 맞다.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야. 사람들은 모두 돈이 다인 것처럼 살아가지만, 돈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그렇다.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다. 정말,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더 벌지 못해 더 베풀지 못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도 베풀어야 할 때는, 그러니까 베풀고 싶을 때는 거침없이 베푼다. 나 입을 것 안 입고 나 쓸 것 안 쓴 돈으로 펑펑 베푼다. 비가 퍼붓는 날 버스를 두 번 세 번 갈아타고 온 고모에게 택시 타고 가시라고 5만 원, 10만 원씩 주머니에 찔러 넣어드린다. 극구 사양하는 고모에게 '저 돈 많이 벌어요'라고 호기롭게 말하면서. 후원하는 단체에도 매달 꾸준히 후원한다. 이러려고 아낀 것이다. 베풀 때 아까워하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싫어서. 이때만큼은 돈돈 거리고 싶지 않아서.


  아끼지 않아도 실컷 베풀 수 있을 만큼 벌면 너무나 좋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코로나 때문에라도) 그게 어려우니, 그저 이 '일'이 굴러갈 수 있는 만큼 버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괜찮다. 어차피 내 목표는 처음부터 본전이었다. (참고 <사업 아닌 사업>


  이 코로나 시국에 버티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버티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배우며 즐겁게 나의 영혼을 채우고 있다. 이 일은 나에게 '일' 이상의 보람과 의미를 준다. 나는 거울을 보듯 나의 정체성을 보고, 나의 열정을 느끼며, 나의 자부심을 확인한다. 


  여기에 더해, 나는 카페 일을 하면서,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는 기적과 같은 장면을 종종 목격하는데, 이는 일을 함에 있어 보람과 만족을 넘어 감동과 놀라움이 된다. 



  냉랭한 분위기를 품은 손님들이 카페에 들어올 때가 있다. 


  싸웠는지, 상대방의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무튼, 서로 함께 있는 분위기가 부드럽지 못하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디 들어가서 차분히 이야기 좀 해보자' 하고 카페에 들어온 것 같은 그런 사람들. 


  그분들은 카운터 앞에 서서 커피를 주문할 때도 서로 어떤 걸 먹을 거냐고 묻지 않고, 각각 따로 주문한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분들은 자리에 앉아서 서로 허공을 응시한다. 누가 무슨 말이라도 하면 이제 곧 큰 싸움이 시작될 것 같은, 바로 그런 느낌의 폭풍전야. 나는 그 둘 사이에 쟁반을 들고 가서 "커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다. 들릴 듯 말 듯, 아주 낮은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그분들은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바라본다. 나는 뒤돌아 나의 주방으로 돌아와 앉는다.


  두 손님은 아무 말 없이 커피를 한 두 모금 마시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데 네가 거기서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 이런 식의 날 선 문장들이 나직나직하게 오고 간다. 나는 긴장한다. 큰 소리라도 나면, 혹시라도 우당탕탕 하면서 싸우기라도 하면, 나는 달려가서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다 다른 손님이 들어와 주문을 받고 잠시 커피를 내리고 나면 상황이 바뀌어 있다. 아까 그 냉랭했던 그분들이 갑자기 웃는 것이다. 하하하. 큭큭큭.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카페에 차오른다. 그분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화해했는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고 커피 한 잔 내리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5분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나는 당황스럽지만, 이 전개가 흥미진진하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형제, 자매, 부부, 친구, 회사 동료, 커플... 심통난 얼굴로 들어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하하호호 웃으며 손잡고 팔짱 끼고 나가는 흥미로운 모습들. 


  나는 내 커피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커피를 드시고 나니 이분들의 마음이 사르르 녹았구나. 내가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씀드린 대로 이분들이 커피를 맛있게 드셨구나. 


  이분들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된 문제들이 아니다. 서로 불편해하는 두 사람에게 5만 원을 주며 "자, 이제부터 서로 불편해하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세요"라고 해서 사이가 좋아진 게 아닌 것이다. 아빠 말이 맞다. 세상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이 어려운 문제를 내 커피가 풀어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1년이 되었습니다. 


  돈돈 거리는 1년이었지만, 동시에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매 순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새로운 달이 시작될 때마다 '이번 달은 또 어쩌나' 싶었지만, 모든 달들이 순적하게 흘러 지나갔네요. 만나와 메추라기도 여전했고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들이 커피 한잔으로 해결되는 모습도 있었고, 커피 한잔의 작은 돈으로 세상 행복하게 웃는 손님들의 얼굴도 보면서, 감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값진 시간을 이 카페 안에서 보냈답니다. 


  1년이라는 경력이 쌓였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습니다. 브런치에는 그냥 넋두리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끄적거려보고 저 스스로를 위안하면서도 몇 글자 적어 보았는데, 응원해주신 분들이 너무너무너무 많아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카페 사장입니다. 앞으로 1년 또 한 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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