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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r 12. 2021

사업 아닌 사업

No 번아웃


  "돈 벌어야죠"라는 말을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다.


  내가 "저 돈 벌어야 해요. 열심히 일해야지요."라는 말을 할 때면 옆 가게 사장님들과 주위 이웃들은 갑자기 눈빛이 달라진다. '세상에 이런 훌륭한 젊은이가 다 있네'하는 눈빛이다. 그때부터 그분들은 세상 달달하게 나를 대한다.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필요한 게 없는지,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한다.


  프랜차이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아니에요^^ 저흰 그냥 동네 개인 카페예요"하며 씨익 웃으면 그분들은 다시 물으신다. 2호점은 언제, 어디에 낼 거냐고. 어려 보이는데, 이렇게 일을 하는 걸 보면 보통 배짱이 아닐 것 같다면서. 어서 사업을 확장해서 직원도 여럿 두고 큰 일 할 것 아니냐면서. 야망이 있을 거라면서. 법인도 내고 연매출 몇십억씩 달성하면 너무 좋겠다면서. 분명 다 계획이 있을 거라면서.


  아무튼 나를 좋게 봐주신 거라 생각하고, 나는 "네~ 그러니까 말이에요~"라며 싱글싱글 웃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내 목표는 본전이었다. 일확천금도 아니었고, 부귀영화도 아니었다. 나는 딱 '본전'을 꿈꾸며 이 일에 뛰어들었다. 월세 내고, 관리비 내고, 재료비 쓰고, 아르바이트비 주고, 그리고 내 생활비 조금 할 만큼만의, 딱 그만큼의 본전. 그거면 충분했다.


  내 친구가 꿈을 꿨단다. 우리 가게의 일 매출이 900만 원인 꿈. 일주일에 6일 영업하니까 한 달 매출이 2억을 넘는 셈이었다. 친구는 꿈속에서도 질투가 나서 배가 아팠단다. 하지만 그래도 좋으니, 나보고 성공한 사장님이 되라고 했다. 나는 한참을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심각해졌다. 계산을 해본 것이다. 하루에 900만 원을 벌려면, 커피를 몇 잔을 팔아야 하는 거지. 우리 아메리카노가 3500원이니, 2571잔을 팔아야 900만 원이 되는구나. 900만 원을 벌기 위해서 나는 2500번이 넘도록 그라인더에서 원두를 갈고, 레벨링 하고 탬핑하고 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야 하는구나. 테이크아웃 손님 반, 홀 손님 반이라고 하면, 1200~1300개의 잔을 설거지해야겠구나. 한 테이블에 4명씩 앉는다면 300번이 넘게 테이블을 정리하고 닦아야 하는구나. 그나저나, 하루에 2500번 에스프레소를 내리려면 하루에 원두를 얼마나 볶아놓아야 하나. 우리 로스터기가 하루 온종일 돌아도 그게 다 감당이 될지 모르겠다. 우유는 또 얼마나 주문해야 놓아야 하나. 다 쓴 우유팩을 갖다 버릴 시간이나 있을까.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돈이고 뭐고, 일주일, 아니, 3일, 아니 하루만 해도 넉다운이었다. 그리고 그 900만 원은 병원비로 쓰이겠지. (카페 사장님이런 글을 올리셨던 것도 문득 떠올랐다. "사장님들, 이제 곧 여름 다가오는데 아이스크림 어떻게들 푸고 계시나요? 저 정말 이거 푸는 게 너무 힘들고 손목 아프고 어깨 아프고 서러워서 이번에 아이스크림 들어간 메뉴 가격 올렸습니다. 아무래도 제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아서요." 아아, 세상의 모든 카페 사장님들, 정말 수고 많으십니다...)  


  난 월 매출 2억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난 나의 초심을 다시 떠올렸다. 그래, 난 원래 '본전'이 목표였지. 900만 원에 잠깐 들떴던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내 친구들 중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꽤 있는데, 이제 어느 정도 경력도 쌓인 그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돈 많이 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직급이 올라가면 돈을 많이 벌긴 하지만 그만큼 업무가 과중해지고 스트레스는 말도 못 한다고. 부장님들이 괜히 회식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회식으로 회삿돈이라도 펑펑 써야 하는 거라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지난주,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27살에 작은 디저트 카페를 열었단다. 그냥 동네 주택가 골목 한 구석에 열었는데, 의도치 않게 가게가 너무 잘 되어서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일하고 쉬는 날 없이 일하다가 3년 만에 '이렇게는 못살겠다'싶어 가게를 접었다는 이야기였다. 돈은 벌었지만, 너무 힘들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금 나의 방향을 확인했다. 그래, 내가 맞다.





  살아가는 동안 마음 편히 사는 게 내 인생의 방향이다. 이렇게 나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나서 하는 모든 일은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 되었다.


  돈을 써서 마음이 편한 일이라면 돈을 쓴다.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고, 없다가도 있는 게 돈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어서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라면 무릎을 꿇는다. 몸이 피곤해서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몸을 굴려야 한다. 조금 지쳐도 한숨 자고 나면 회복할 수 있다. 조금 다쳐도 괜찮다. 그냥저냥 적응하고 살아가면 된다. 어차피 몸이라는 건 시간이 지나면서 닳아가니까. 하지만 마음은 다르다. 한번 다친 마음은 회복이 잘 안된다.  


  마음 불편하게 사람을 만나고, 마음 다쳐가며 일을 해보았기 때문인지 나는 '아무튼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건지를 뼈저리게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아마 '번아웃'이었던 것 같다. 일하러 나가야 하는데, 양말을 신다 말고 주저앉아 엉엉 울던 그런 시간들. 횡단보도에 서 있는 나를 지나가는 차가 그냥 들이받으면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될 텐데 하던 그런 시간들.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페이스 조절을 좀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일하러 나가길 간절하게 싫어하면서 주저앉은 나는 계속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게 뭐 어쨌다고.


  그때 이후 다시 몸을 일으켜 '일'을 시작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2년 동안 건강한 몸과 튼튼한 마음을 준비했다. 쉬었고, 운동했고, 먹고 싶은 걸 건강하게 먹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고, 보고 싶은 책을 보았고,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리고 나는 '일'에 뛰어들었다.


  사고 치듯 일을 벌였지만, 방향은 똑바로 잡아야 했다. 이 '일'은 그 전과는 달라야 했다. 이 일은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다. 이 '일'은 내 의지와 열망이 이끄는 일이므로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지쳐서도 안되고, 지겨워져서도 안 되는 것이다. 사업이지만, 사업이 아니다. 이 '일'은 거대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이 '일'은 나에게 꽤 중요한 의미이지만, 그래도 나는 이 '일'에 목숨을 걸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또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하겠지만, 떠나야 할 때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훌쩍 떠날 것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 번아웃은 없다.




  내 목표는 본전이다. 월세 내고, 관리비 내고, 재료비 쓰고, 아르바이트비 주고, 그리고 내 생활비 조금 할 만큼의 본전. 그러니까, 딱 즐겁게, 내가 열심히 할 수 있는 만큼만, 마음 편하게. 그거면 됐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발바닥이 부르트고, 손톱 사이사이에 커피가루가 끼고, 피곤함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지만, 마음이 좋다. 다 내 마음 좋자고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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