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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r 30. 2021

내 커피가 제일 맛있어

(브런치 메뉴에 욕심부리다가 현타 온 카페 사장의 푸념)

 

  (오늘 글은 다소 감정적이고 매우 자기위안적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ㅠㅜㅜ)




  시간에 쫓겨 간신히 오픈 날짜에 맞춰 카페를 오픈한 이후, 야심 차게 이런저런 메뉴를 만들었다. 햇살 좋은 하늘 아래 여유로운 커피 한잔과 풍성한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예쁜 접시에 예쁜 브런치들을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사람들이 "어머 예뻐라!"하고 환호하는 장면은 나의 로망이었다.


  이후 3개월이 지났다.


  메뉴들은 많이 수정되었다. 아니, 없어진 메뉴들도 있다. 덕분에 우리 카페의 메뉴판은 바람 잘 날이 없다. 나는 계속 메뉴판을 교체하고, 우리 직원들은 계속 바뀌는 메뉴판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언제쯤 메뉴판을 온전히 완성할 수 있을까.)


  사실 이 과정은 꽤 큰 스트레스였다. 장사의 세계는 아예 다른 세계였다. 그냥 내가 먹을걸 만드는 것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 나는 정성껏, 건강한 재료로 아주 정성껏 만들고 싶었지만, 장사의 세계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빨리빨리 만들어 내보내는 게 우선이 되어야 했다. 손님들은 10분만 기다려도 오래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만드는 과정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지 1도 생각하지 않으셨다. (아니, 냉장고에서 감자를 꺼내 프라이팬을 달구고 감자를 익히는 데만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 있는데, 5분 안에 안되냐고 하시면 대체 저는 어떡하나요ㅠㅜㅜ)

  조리는 어떻게든 간결해야 했다. 주문이 들어온 이후 재료를 씻고 손질하는 건 가장 큰 시간낭비였다. 신선하게 한답시고 주문이 들어온 이후 양상추를 씻고 쪼개고, 딸기를 씻어 꼭지를 따는 건 그래서 아주 비효율적인 행동이었다. 따라서 미리 손질해놓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하고, 심지어 한꺼번에 주문이 들어올 상황을 고려해 어느 정도 미리 준비해야 두어야 하는데, 그래서 재료 준비는 여러모로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날 다 팔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보관방법도 고려해야 했다. 미처 쓰지 못한 재료가 다 물러 썩어 버리는 일처럼 마음 아픈 일이 없었다. 가장 신선하고 좋은 것들로 장 봐온 것들이었는데. 그래서 오래 두어도 괜찮은 것들, 최소한, 오래 보관할 방법이 있는 재료들을 엄선해 레시피와 메뉴를 다시 구성해야 했다.

 

  특별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도록 메뉴 이름도 정해야 했다. 예쁘게 보이려면 플레이팅에도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원가 계산해서 적정한 가격도 정해야 하는데, 그 가격은 손님들이 느끼기에도 합당한 가격이어야 했다.


  무엇보다 맛있어야 하니 조미료를 안 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건강하게 만든답시고 조미료를 안 넣으면 '그냥 맛없는 집'이 되는 게 현실이었다. 맛있게 하려면 슬프더라도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넣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든 조금 더 맛있게 하려면 재료 원가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나는 '맛'과 '건강'과 '계산'의 이 삼각형 사이에서 계속 길을 잃었다.


  이 모든 일들은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온갖 재료를 다 사다 놓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았다. 나는 조리도구를 잡았다가, 펜을 잡았다가를 반복했다. 주방 한쪽에는 주방저울을, 한쪽에는 계산기를 놓았다. 주방은 랩(Laboratory), 즉 실험실이 되고,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실험 과정은 혼란과 갈등의 과정이었다.


  결국, 하려던 메뉴들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문득 이 말을 떠올렸다. "내 커피가 제일 맛있어."





  때는 지난 12월, 카페 오픈 이틀 전이었다.


  카페 일에 뛰어들어 일을 하는 동안 가장 힘겨웠을 때는 오픈 전 일주일이었다. 오픈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해야 할 일은 해도 해도 줄지 않았다. 할 일이 나를 잠식해왔다. 숨이 막혔다. 그 일들 중에는 시간이 필요한 일도 많아서 나는 몸과 마음이 매우 바쁜 일주일을 보냈다. 어떡하냐고, 큰일 났다고 징징댈 시간조차 없었다. 그냥 휘몰아치는 일더미에 같이 휩쓸렸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장 신경 쓴 것은 아무래도 역시 커피였다. 내 목표는 확실했다. 커피를 먹지 않는 내가 먹어도 괜찮은 커피. 오픈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도, 당장 다음 주부터 팔아야 할 '나의 커피'는 포기할 수 없었다. 호기롭게 가장 비싼 로스터기도 질렀고, 아무튼 내가 커피콩을 골라 이렇게 저렇게 로스팅을 하고 커피를 추출하고 직접 맛을 보았다. 이 과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의 과정이었다. 목표는 확실한데 해도 해도 손에 잡히지 않으면 두려움이 몰려오는 법이니까. 이 불확실성의 두려움에 나는 짓눌려갔다.


  여러 종류의 생두를 약하게도 볶아보고 강하게도 볶아보고, 볶아놓은 다른 원두와 비율을 조절해 섞어 마셔보기를 끝도 없이 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한 것 같다. 이 와중에 뜨거운 커피의 맛이 다르고 차가운 커피의 맛이 다르고, 우유를 섞은 커피의 맛이 달라지니 나는, 커피를 먹지도 않는 나는, 평생 먹고도 남을 만큼의 커피를 밤새 먹고 또 먹었다.


  그러면서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정답은 없다지만, 아무튼 나는 내가 팔 커피를 정해야 하는데 이미 온갖 커피의 맛을 본 나는,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그냥 울고 싶었다. '이거다!' 하는 지점을 찾지 못했다. 아니, 이미 찾았는데 지나친 것 같기도 했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나는 계속 커피맛을 보며 '나의 커피'를 찾아야 했다.


  그때 내가 풍긴 분위기가 많이 음울했던지, 나를 도와주던 분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그냥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요, 이제 곧 오픈하고 손님들 맞이할 텐데, 손님들한테는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보여야 하는 거 알죠? 아니, 괜한 걱정이겠지만, 그냥 노파심에요. 설사 본인이 아직 본인의 커피를 찾지 못해서 노심초사하고 있더라도, 손님들 앞에서는 '내 커피가 제일 맛있다'는 자신감으로 다가가야 해요."


  다행히, 운이 좋게도, 아니, 하나님이 보우하사, 나는 오픈 전날 나의 커피를 찾았다. 커피를 먹지 않는 내가 먹어도 괜찮은 커피. 난 매일 아침 내 커피의 맛을 보고 카페 문을 활짝 열어 손님을 만난다. "어서 오세요!"




  3개월 차 카페 사장인 나는 아직 의욕이 남아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메뉴가 아직도 차고 넘친다. 와플도 하고 싶고, 이제 다가올 여름을 준비하며 빙수도 하고 싶다. 현재 있는 파니니도 조금도 다양하게 하고 싶고, 샐러드도, 에그타르트도 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메뉴들을 가지고 주방에서 실험을 할 때면 나는 계속 이런저런 벽에 부딪힌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은데...' 하는 결론이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커피를 찾는다. 볶아놓은 원두들 틈바구니에 잠깐 앉아 평정심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안 되겠으면 다 빼면 되지. 커피만 있으면 되지. 카페는 역시 커피지. 그래, 내 커피가 제일 맛있어.







  며칠 전, "자리 잡았다면서요?" 하고 옆집 사장님이 인사를 건넸다. 하마터면 푼수처럼 "제가요?"라고 손사래를 칠 뻔했으나, 다행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하며 방긋 웃었다.


  카페로 돌아와 앉았는데 그 말이 계속 내 귓가에 맴돌았다. "자리 잡았다면서요?"라니. 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 카페가 자리를 잡았다고 봐주는구나. 내가 자리를 잡았구나.


  처음 카페를 오픈하고 한동안은 사람들의 반응을 세밀하게 살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커피가 그들에게도 괜찮은지. 맛이 없는데 맛있다고 하는 건 아닌지. 커피가 맛있다고 하는 친절한 손님들에게 "커피 맛있으셨어요?", "커피 괜찮으셨어요?", "정말요?"라며 나는 계속 눈치를 봤다.


  "카페가 너무 예뻐요!", "자몽에이드 너무 맛있더라고요!", "브런치 있어서 너무 좋아요!"라는 여러 칭찬의 말을 들었지만, 내가 가장 기뻤던 칭찬은 "커피가 맛있어요."라는 말이었다. 오픈 첫날 오셨던 손님이 다음날 또 오셔서 "커피가 맛있더라고요"라는 말을 하셨을 때는 눈물이 다 났다.


  "그냥 친구 만나러 카페 온 건데, 커피가 맛있어서 먹다 보니 다 먹어버렸네요."

  "커피가 맛있어서 가면서 한 잔 더 들고 가야겠어요. 한 잔 테이크아웃해주세요."

  "직접 로스팅하세요? 어쩐지 커피가 진짜 맛있더라고요."

  "지난주에 저 왔던 거 기억하세요? 맛있는 커피 먹으러 일부러 또 왔어요."

  "커피 정말, 잘, 마셨습니다."


  모든 손님이 다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한 번 온 손님이 한 번 더 오는 게 너무나 소중하다. 브런치를 먹으러 일부러 한번 찾아와 볼 수는 있지만, 한번 와본 손님을 두 번 오게 하는 건 역시 커피다. 카페는 커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저 이 동네 안 살아서요."라며 극구 우리 쿠폰을 안 받으시던 한 손님은 떠날 때 이렇게 말하셨다. "아까 주시려던 쿠폰 주세요. 커피가 정말 맛있네요. 커피 먹으러 한 번 더 이 동네 와야겠어요."


  이제는 커피가 맛있다고 말해주는 손님들에게 나는 어깨에 힘을 주고 이렇게 말한다.

  "그쵸? 커피 맛있으시죠? 저희 커피 진짜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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