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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02. 2021

빵 사주는 어른


  지난주부터 새로운 알바생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2주를 함께 지냈더니 꽤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는데, 알고 보니 이 알바생은 엄청난 빵순이였다. 빵을 너무나 너무나 좋아하는. 빵순이를 넘어 빵귀신인 나는 빵순이를 만나자 신나서 온갖 빵과 빵집에 대해 이야기했고, 우리는 근처 빵집을 하나씩 섭렵해가기로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작년, 재작년에 빵에 한창 꽂혀서 아주 그냥 빵을 엄청 사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는 빵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썼다고. 한번 빵집에 들어가 먹고 싶은 빵을 다 골라 한가득 빵이 담긴 빵 봉지를 양손에 들고 나오면 3~4만 원, 심할 때는 5~6만 원도 쉽게 쓰고 나왔다고.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한 달에 빵값으로만 돈을 꽤 많이, 정말 꽤 많이 지출했다고. 그러면서 빵이란 빵은 다 먹었다고. 실컷 먹었다고.


  나는 별생각 없이, 그냥 그때 내가 빵을 너무나 좋아했어서 온갖 빵을 다 먹어보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이 알바생의 눈빛이 조금 달라지더니 결심한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도 사장님 같은 어른이 되겠어요!"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자기는 3000원이 넘는 빵은 큰 맘먹고 사 먹는다고 했다. 파리바게뜨에서 2000원짜리 빵을 집으려다가 옆에 1500원짜리가 있으면 그걸 집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언젠가 빵집에 가서 가격표 보지 않고, 싼 빵인지 비싼 빵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먹고 싶은 빵을 집어 먹을 수 있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알바생은 스물두 살이었다. 키가 170이 넘고, 외모도 성숙한 편이라, 그리고 나도 별로 내 나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살지 않아서, 그래서 우리는 서로 스스럼없이 지내서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 알바생은 스물두 살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알바를 해서 자기 손으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스물두 살이었다. 난 5~6만 원 정도는 지나가는 길에 슥 써도 아무렇지 않은 서른다섯 살이었고, 알바생은 큰 결심하고 심호흡하고 힘겹게 5만 원을 쓰는 스물두 살이었다.


  나는 스물두 살 때 어땠더라.


  대학교 3학년이었고, 공부에 지쳤던 것 같다. 대학원은 가지 말아야겠다고 이때 다짐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딱 공부하는 걸로 하자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 같다고. 물론 공부는 평생에 걸쳐 하는 거지만, 그래도 정식적인 공부는 여기까지만 하자고.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공부를 하며 학교를 다녔지만, 그럼에도 후배들은 나를 우러러봤다. 1학년 새내기들은, 그리고 친한 2학년 후배들은 자꾸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친한 척들을 했다. 후배들과 밥을 먹으면 선배랍시고 내가 밥을 샀다. 그때는 최저시급이 4000원이 채 되지 않을 때였는데, 나는 뼈 빠지게 알바를 하면서 번 얼마 안 되는 돈으로 후배들 밥을 사주었다. 후배들 앞에서는 가격표를 보지 않았다. 학생식당이나 근처 맛집은 그래도 1~2만 원 선에서 해결이 되었으나, 한 번씩 호기롭게 아웃백 스테이크를 지르는 날이면 5~6만 원이 쑥 나갔다. 10시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5~6만 원. 이렇게 한 번 돈을 쓰고 나면 밤에 침대에 누워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스물두 살이었다. 파리바게뜨의 피자빵을 선뜻 집어 들지 못하던,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동네의 모든 빵을 다 먹어보며 찾아낸 나의 인생빵




  지금의 이 빵순이 알바생이 오기 전, 또 다른 알바생이 있었다. 그 알바생도 스물두 살이었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교 2학년(이제 곧 3학년) 학생이었다. 나는 건축을 전공한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건축에 대해(정확히는 '건축'보다는 '건축 공부를 하는 과정'에 대해) 조금 아는 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두에서 결점두를 찾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3학년이 되면 공모전도 준비해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 대학생활도 눈 앞에 지나갔다. 대학원에 가서 더 심도 있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현장 일을 하고 싶다는 이 알바생은, 나중에 자기 이름을 붙인 건물을 지어 그 건물의 한 층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려면 일단 경력을 쌓아야 하고, 돈도 모아야 하고...


  나는 그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 주자, 우리 알바생은 책을 손에 받아 들고 그 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책을 그렇게 곧장 열어보며 집중해서 읽어주는 모습이 좋았고, 그리고, 사회에서 어떤 좌절도 해보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야말로 '순수한 꿈'을 꾸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어느 사회에서든, 어느 분야에서든 전혀 안 힘들 수는 없으니까, 좋은 점 한두 가지가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그냥 한껏 기대하라고 할걸.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기대하라고 할걸. 딱 지금 너의 때에만 할 수 있는 그런 허황된, 그러나 소중한 기대를.


  스물두 살의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서른다섯의 미래가 확실한 것은 아니다. 쉰다섯이 되어도 미래는 불확실하겠지. 하지만 스물두 살의 불확실한 미래는 뭔가 달랐다. '기대감'이었다. '이래서는 내 집 장만은 꿈도 못 꾸겠네'하는 불확실한 미래와는 달랐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멋진 어른'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것이다. 자기 이름을 붙인 건물을 짓는 '멋진 어른', 가격표 보지 않고 먹고 싶은 빵을 맘껏 고르는 '멋진 어른'. 이들의 '기대감'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장면은 없다.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그런 게 없다.


  스물두 살의 나도 그랬겠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꿈은 '어른'이었다. 나는 내가 아직도 '어린이'인 게 싫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는 '청소년'이 되었을 뿐이었다. 어느덧 대학생도 되었지만, 아직 '학생'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어도 어른은 아니었다. 성인이 되었다고 어른이 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 어른이 되었다. 그건 아마, 더 이상 '어른'을 간절히 꿈꾸지 않게 된 시점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더 이상 나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얼마나 더 살아야 어른이 되는 걸까'하고 일기에 쓰지 않는다. 물론 아직은 '어린 어른'이어서, 지금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훌륭한 본보기가 되고 싶지만, 아무튼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손님들에게 주는 영수증의 '대표자'란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온갖 고지서를 받아 든다. 가게에 문제가 생기면 다들 나를 찾는다. 해결의 시간은 내가 움직이는 시간이고, 모든 결정은 내가 해야만 한다.


  나는 빵순이 알바생에게 1만 원을 주며 내 단골 빵집에 가서 네가 먹고 싶은 빵을 아무거나 골라 사 오라고 했다. 만 원짜리 한 장을 두 손에 고이 들고 알바생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만큼 사 올까요? 나는 1만 원으로 사 올 수 있는 만큼 사 오라고 했다. 빵순이 알바생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큼직한 맘모스빵 2개를 품에 끌어안고 돌아왔다. 우리는 4500원, 5000원짜리 빵을 함께 먹었다. 배가 불러 다 못 먹고 남은 빵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엔 또 다른 빵을 먹어보자고 했다. 알바생은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저도 사장님 같은 멋진 어른이 되겠어요."


  세상에.  

  내가 멋진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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