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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28. 2021

하고 싶은 말


  안녕, 아빠. 


  3년이 되었네. 나는 3년 동안 아빠를 보고 싶어 하고 있어요. 


  아빠와 갔던 강릉에 가서 바다내음을 맡고 싶지만, 이번에는 못 갈 것 같아요. 카페 사장이 되었거든요. 아빠, 난 카페 사장이 되었어요. 사업이라면 사업이지만, 사업가라는 말은 좀 부끄럽네요. 가끔 '대표님'이라는 호칭도 듣는데, 그것도 좀 부끄러워요. 난 그냥 자영업자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가게에서 일을 해요. 직원도 있어요. 3명이나 있어요. 이게 무슨 복인지, 사장보다 더 훌륭한 직원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한 명은 사장보다 더 알뜰하고, 한 명은 사장보다 더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한 명은 사장보다 더 물불 가리지 않고 가게 홍보를 해요. 


  시작한 지 4개월이 넘었어요. 4달 동안 매일 온 손님이 많아요. 덕분에 난 4달 사이에 절친이 많이 생겼어요. 어떤 손님은 미용실 다녀오는 길에 우리 가게에 괜히 들어와서 자기 머리 예쁘게 되지 않았냐면서 한참 동안 자랑을 하고 가요. 


  원래 있던 절친들은 더욱 절친이 되었어요. 내가 늘 가게에 있으니까 친구들과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어요. 친구들은 자기 시간 될 때 아무 때나 불쑥불쑥 우리 가게에 와요. 아, 아빠도 다 아는 애들이에요. 특히 희연이랑 지혜는 거의 1주일에 한두 번씩 가게에 와요. 나는 칼같이 받을 돈 다 받아가며 커피를 팔아요. 대신 다른걸 조금씩 줘요. 아이스크림도 주고, 빵도 주고, 케익도 주고...  


  희연이는 이제 이사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청약에 당첨이 되었거든요. 아직 이사 갈 날이 한참 남긴 했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준비할게 많아서 여러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이사하고 나면 우리 가게랑 더 가까워져서, 앞으로 더 쉽게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지난주에는 글쎄 아침 8시부터 와서 우리 가게 그림을 그렸는데... 이 얘기를 하면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에 할게요.

  세미는 드디어 결혼을 했어요. 남편은 희연이 회사 동기예요. 코로나 때문에 결혼도 계속 미루고 맘고생이 많았는데, 그래도 결국 결혼을 했어요. 결혼하는 걸 보니, 마치 내 애가 결혼하는 것 같더라고요. 얼마나 감동적이던지. 나 참. 


  은희는 요즘 복싱을 해요. 지난 몇 년 동안 춤을 그렇게 추더니, 이제 복싱을 또 그렇게 해요. 은희네 아기 해온이는 방긋방긋 웃는 모습이 너무너무 예쁜 아기예요. 나는 해온이가 은희 에너지를 닮으면 큰일이다 싶었는데, 다행히 은희 남편의 선비적인 모습을 많이 닮았어요. 양반의 기품이 넘쳐요. 

  문제는 지혜네 아기 영서예요.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저번에 지혜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정말 오랜만에 지혜 어머니도 뵈었는데, 많이 마르신 것 같더라고요. 홈플러스에서 과일이랑 이것저것 해서 한가득 장 봐가지고 갔었는데, 그러길 잘했어요.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는데, 에너지가 넘쳐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힘들어한대요. 아, 민아도 최근 아기를 낳았어요. 이름은 찬희예요. 찬희도 한번 만나고 싶은데, 아직 만나질 못하고 있네요. 가게에 유아의자를 준비해놓아야 할까 봐요. 


  가게를 하면서 '자영업이란 이런 거구나'를 알아가고 있어요. 한 달이 끝나갈 시점이 되면 딱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 또 월세를 낼 때가 오는구나.' 한 달이 빨리 지나가는 느낌은 아닌데, 월세는 자주 내는 것 같아요.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던 거겠죠. 그래도 참 감사하게도, 월세 걱정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매달 그 월세를 내며 가게 문을 열어요. 

  옆집 사장님들은 참 고마운 분들이에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마운 일이 많아요. 손이 이렇게 차서 어떡하냐면서 생강차를 갖다주고, 아, 지난주에는 뜬금없이 예쁜 화분을 선물로 받았어요. 나는 꽃보다 풀이 더 좋다고 했더니 그 말을 기억하고 초록초록한 화분을 주셨어요. 아빠가 줄 사랑을 그분들이 나에게 주는 것 같아요. 이 동네가 나를 키워요. 



  아, 지금 나의 카페가 있는 이 동네는 우리가 살던 동네예요. 지금 이 자리는 맛있는 식빵을 팔던 자리예요. 그때 내가 몇 번 식빵 사 가지고 가서 같이 먹었던 그 식빵이요. 기억나죠! 맛있다면서 둘이서 말없이 흡입하던 그 식빵 말이에요. 샤론이한테 한 입도 주지 않고 우리끼리 돼지처럼 다 먹어치우고는 나중에 미안하다고, 우리끼리 다 먹어서 미안하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 빵집 자리에서 내가 카페를 시작했어요. 우리가 다니던 그 길, 그 지하철 출입구를 나는 지금 매일 다녀요. 내 귀가가 늦어지던 밤길, 아빠가 샤론이 끌어안고 마중 나와 기다리던 그 길이요. 


  나의 이 카페에 아빠가 와서 내가 내려준 커피를 마시고 같이 앉아 책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가 보고 싶은 책 목록 적어놓으면 내가 사줄 수 있는데. 이제 내가 다 사줄 수 있는데. 


  샤론이는 하늘나라에 갔어요. 토칠이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아빠가 토칠이를 끌어안고 울었듯, 나는 샤론이를 끌어안고 울었어요.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어 샤론이를 끌어안고 울었어요. 그러면서 아빠 생각이 났어요. 아빠는 그때, 토칠이를 끌어안고 울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우리가 할아버지 병원 모시고 다닐 때 차로 다니던 길 옆에 있어요. 왜 그때, 우리 그랬잖아요. "이 길 너무 좋지? 올 때마다 좋아. 와도 와도 좋네. 아, 딱 이런 길 옆에 살고 싶다." 큰길 양쪽에 큰 나무들이 우거져서 사계절 내내 눈부시게 아름답던 그 길. 지금 나는 바로 그 길 옆에 살아요. 차로 그 길을 지나 집에 돌아올 때마다 매번 아빠를 생각해요. 우리가 좋아했던 이 길. 

  지금 집은 아파트예요. 지하 3층까지 주차공간이 있어서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요. 아빠가 여길 왔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항상 골목골목에 낑겨서 주차하느라 힘들었는데. 


  아, 우리의 자동차는 잘 있어요. 아빠의 그 차요. 내가 잘 타고 다니고 있어요. 내가 타기엔 차가 좀 커서 다른 차로 바꿀까도 고민했지만, 그냥 타요. 아빠가 가르쳐준 대로 운전을 해요. 아빠와 다니던 카센터에 다녀요. 지금 사는 집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일부러 거길 계속 가요. 이번엔 오랜만에 카센터를 갔더니 사장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졌더라고요. 사장님이 "요즘 계속 혼자 오시네요, 아버님은 어디 멀리 가셨나 봐요"라고 하시길래, "네^^ 공기 좋은 데로 가셨어요"라고 했어요. 사장님은 "아버님 뵙고 싶네요. 안부 전해주세요."라고 하셨어요. 





  코로나가 세상을 많이 바꾸어 놓았어요. 아빠랑 한 달에 한두 번은 영화 보러 갔었는데. 나는 지금 1년이 넘도록 영화관에 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공연도 참 많이 봤는데.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을 내 집 드나들듯 그렇게 드나들었는데. 아빠랑 마지막으로 보러 간 공연이 라프마니노프였었죠. "암인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이틀 후였어요. 그 공연도 정말 멋진 공연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1년이 넘도록 공연장에도 가지 못했어요. 작년 3월에 갔던 공연이 마지막이었네요. 발렌티나 리시차라는 피아니스트의 내한 공연이었어요. 70~80%의 관객이 표를 취소했지만, 그래도 강행한 공연이었죠. 대부분의 관객이 나처럼 혼자 온 관객이었어요. 관객도 마스크를 쓰고, 피아니스트도 마스크를 썼어요. 

  여러 상황들이 절박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날 그 피아노는 유독 절박했던 것 같아요. 그 절박함에 '건반 위의 검투사'라고 불리는 이 사람은 그날 피아노를 치다 말고 공연 도중 엉엉 울었어요. 나도, 다른 사람들도 같이 울었어요. 




  '브런치'라는 곳에 글을 쓰고 있어요. 거의 1년 반이 되었네요. 그냥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끄적거리는 거긴 하지만, 아무튼 꾸준히 글을 쓰고 있어요. 누가 봐주길 바라고 쓰는 것도 아닌데도 그래도 내 글을 봐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른 몇몇 작가님들과도 꽤 친해졌는데, 그분들과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는 느낌이에요. 


  나는 이 '브런치'를 하면서 만족을 넘어 감동, 감격하고 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아빠가 내 브런치를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아마 나는 아빠에게 내 브런치를 보여주지 않았겠지만, 아빠는 숨어서 어떻게든 찾아보면서 혼자 좋아했을 텐데. 아빠가 참 좋아했을 텐데. 이건 싸이월드와는 다르거든요. 난 여기에 나의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 글을 써요. 


  난 여기서 '작가님'이라고 불려요. 생각해보니까 아빠가 처음으로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렀었네요. '이 작가님'. 그때는 그 별명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었는데. 지금 다른 사람들이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는 좀 쑥스러워요. 언젠가는 정말 번듯한 글을 써서 "네, 제가 이 작가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하는 날이 올까요. 




  김범석 교수님이 책을 냈어요. 얼마 전 우연히 책 서평을 보았는데, 저자가 서울대병원 김범석 교수여서 깜짝 놀랐어요. 혹시나 싶어 사진을 보니 그분이 맞더라고요. 우리 엄마 주치의. 엄마가 얼마나 내 자랑을 해 놨는지, 뉴욕에서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이 따님이 그 따님이세요?"라고 물었던 그분. 그때가 2012년이었으니 9년이 지났네요. 사진으로 보니 이 분도 머리가 희끗희끗해지셨더라고요. 그래도 그 눈빛은 그대로였어요. 분명 부드러운 것 같은데 찌르는 눈빛. 아니, 나쁘다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눈빛 있잖아요. 정확한 사람의 눈빛. 

  혹시라도 나를 보면 알아보실까요. 난 그래도 머리가 희끗희끗하지는 않은데. 그래도 스물여섯 살이었을 때보다 달라져 보이긴 하겠죠. 


  아, 김준석 교수님은 은퇴하셨어요. 아빠가 마지막 환자였던 것 같아요. 아빠 장례 다 끝나고 떡케익 사 가지고 한번 찾아갔었는데, 자기 이제 하나도 안 바쁘다고, 종종 놀러 오라고 했어요. 그분도 그런 눈빛이었는데. 분명 부드러운 것 같은데 찌르는 눈빛. 아니, 그러니까, 정확한 눈빛. 




  최근 <아침의 피아노>라는 책을 보았어요. 김진영 작가는 아빠와 비슷한 시절, 비슷한 기간 동안 병원 생활을 했더라고요. 아빠처럼, 이 분도 '병' 없는 병상기록을 썼어요. 짤막한 글을 하루하루 기록해놓은 거죠. 책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해요.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 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암이 맞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날, 아빠가 그랬죠.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그동안 가르치고 말해왔던 게 진짜라는 걸 보여줄 때라고.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고. 

  김진영 작가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썼어요. "내 마음은 편안하다." 아빠의 트위터 마지막 글은 "성찬"이네요. 난 오늘도 가게 문을 열며 하나님을 불러요. 하나님, 아 하나님.




  아빠, 난 새로운 이름이 생겼어요. 그동안 우리 계속 얘기했었잖아요.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 그때 아빠랑 더 깊이 얘기했으면 좋았을걸. 결국 아빠랑 상의하지 못하고 나는 이름을 바꿨어요. 그렇지만 물론, 아빠 말대로 '기도하면서 결정'했어요. 


  지금 내 이름에는 '도울 원(援)'자가 들어가요. 이 '원(援)'은 손으로 다른 사람을 붙잡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예요. 이 글자의 모양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절대적이죠. 원군(援軍), 원조(援助), 구원(求援)에 이 원(援)이 쓰여요. 아빠, 나는 내 이름에 이 글자를 넣었어요. 이건 아빠의 기도였어요. 아빠가 나를 위해 평생을 기도했던 단 하나의 기도, "하나님, 우리 딸을 지켜주세요"라는 그 기도 말이에요.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아빠의 기도를 들어요.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나를 지켜주고 계세요. 나는 오늘도 살아서 내 온 존재로 그걸 증명하고 있어요. 




  서정윤 시인의 '보고 싶은 것만으로 죽을 수 있다'는 문장 앞에서 나는 숨이 멎도록 울지만 그래도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오늘 이렇게 아빠한테 글을 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요. 밀린 이야기를 다 하려면 며칠밤을 새도 모자라요. 졸려서 하품해가며 새벽까지 우리 이야기하던 그때처럼, 언젠가는 또 끝없이 세상의 모든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그날을 기다리며 난 오늘도 살아요. 열심히 살아내고 있어요. 난 아빠의 자랑스러운 친구니까요.  


  나중에 만나요. 오래오래 이야기해도 피곤하지 않을 그곳에서요.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금방 피곤해져서 오래 이야기 못하겠어요. 난 이제 자러 갑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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