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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May 12. 2021

무엇이 삶을 움직이는가

카페 사장이 된 사부작 대마왕


  나의 첫 덕질은 바네사 메이(Vanessa Mae)였다. 


  모두들 HOT, 신화, god를 사랑할 때, 나는 바네사 메이를 사랑했다. 그의 연주를 보고 또 보며 나는 전율했다. 바네사 메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듣고 있자면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내뿜는 열정, 그의 바이올린이 내뿜는 에너지에 사로잡혔다. 음악을 듣는다는 게 어떤 건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음악은 온몸으로 듣는 거였다. 나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나의 손톱 하나하나가 그의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듣는 동안 그 음악 이외의 다른 어떤 소리도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내 방의 문을 닫았다. 헤드폰을 구입했다. 있는 돈을 몽땅 털어, 아빠의 비상금도 몰래 빼서, 엄마한테 문제집 사야 한다고 거짓말도 해 가면서 돈을 긁어 모아 꽤 좋은 헤드폰을 샀다. 좋은 음질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 CD도 샀다. 여러 개 샀다. 걸어 다니며 교통비를 아끼고, 분식집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돌아서면서 돈을 아껴 CD를 샀다. 돈만 생기면 CD를 샀다. 살 수 있는 CD를 다 샀다.  


  바네사 메이와 바이올린의 연주는 열정적이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열정적인 '열정'이 또 있을까 싶었다. 바네사 메이가 인터뷰하며 말할 때의 모습은 가만히 기품 있는 느낌이었으나, 그럴 때 옆자리에 놓인 바이올린 또한 가만히 기품 있는 느낌이었으나, 바네사 메이가 손을 뻗어 바이올린을 잡고 연주를 시작하면 순간 폭발적인 에너지에 내 방구석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알았다. 진짜 열정은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한다는 걸. 


  난 겨우 중학생이었지만, 바네사 메이의 연주 앞에서 '아, 저렇게 인생을 살아야지'하고 생각했다. 나는 온라인 아이디를 vanessa를 집어넣어 만들었고, 닉네임은 '바네사'라고 했다. 당시 나를 온라인에서 알게 된 친구들은 나를 "네사야!"하고 불렀다. vanessa가 '큰 멋쟁이 나비'라는 의미라는 건 나중에 알았는데, 이것조차도 "너무 훌륭하잖아!" 하며 감격했다.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이상하다. 평범하지 않다. 열심히 돈을 벌어 엉뚱한 데 올인한다. 


  분기마다 여행을 가서 어떻게든 통장 잔고를 비워야 하는 친구가 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는 요즘, 자꾸 통장에 돈이 쌓인다며 온갖 덕질을 한다. 

  취미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시험을 준비하느라 인강을 패키지로 끊었는데 그게 몇백만 원이고, 교재값도 또 몇백만 원을 했단다. 퇴근하고 스터디 카페에서(가끔 우리 카페에 와서) 토익공부를 하고, 인강을 듣는다. 

  한 친구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춤을 췄는데, 그게 그냥 춘 게 아니라, 발레를 하고 한국무용을 했다. 마치 거기에 쓸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다니는 것 같았다. 토요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춤을 춘다고 했다. 연말에는 공연도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한번 가본 부산이 너무 좋다며 근무지까지 억지로 바꿔가며 아무 연고 없는 부산에 정착해 2년째 살고 있다. 있던 곳에서 계속 있었으면 곧 진급할 수 있었는데, 진급보다 부산이 더 좋아 보였다고 했다. 


  내 친구들을 만난 아빠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네 친구들은 정말 다 왜 그러냐고.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고. 집에 데려올 정도면 정말 친한 친구들이었을텐데, 하나같이 다 그랬다고.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내 친구들을 떠올려보면 다들 이상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중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는 검도를 하는 친구였다. 여자 친구였는데, 덩치도 크고, 잘 웃지 않는 어두운 친구였다. 일진들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아우라를 풍겼다. 그 친구에게 먼저 가서 말 걸고 친한 척한 게 나였고, 그래서 그 친구가 유일하게 다정하게 대해준 게 나였다.

  그 친구네 집에서는 롯트와일러 2마리를 키웠다. 온몸이 근육질로 울끈불끈한 개들이었다. 정말 살벌했다. ('살벌하다' 말고 다른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개들보다 큰 개를 보지 못했다. 친구가 롯트와일러 2마리를 산책시킬 때 몇 번 따라간 적이 있는데, 정말, 주위 모든 사람들이 홍해의 바다처럼 갈라졌다. 커트머리의 덩치 큰 여학생이 양손에 바짝 줄을 잡고 그 무지막지한 두 마리의 개와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장면이라니. 친구의 양팔에는 근육이 울끈불끈, 개들의 앞다리와 뒷다리, 등에도 근육이 울끈불끈 했다. 산책이 끝나면 친구는 개들을 집에 묶어놓고 도복으로 갈아입고 검을 들고 검도장에 갔다. 


  그 친구뿐 아니라,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정말 다 이상했다. 

  일주일에 최소 다섯 번 노래방을 가던 친구가 있었고, 한국사에 빠져 다른 공부는 일절 하지 않고 희귀 자료를 찾아 도서관을 다니며 한국사만 공부하던 친구도 있었다. 요리를 하고 싶은데 '요리는 과학'이라며 과학공부를 특히 열심히 하던 친구가 있었고, 학교 끝나자마자 뛰어가 서예 학원으로 가던 친구도 있었다. 영어도 못하면서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괜히 먼저 다가가 말 걸면서 "오우!", "뤼얼뤼?" 하며 온갖 리액션을 해대던 친구가 있었고, 아이돌을 좋아해야 마땅한 나이에 혼자 나훈아 콘서트에 가서 열광하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네, 내 친구들 다 이상했네.  




  한번 가본 부산이 너무 좋아서 부산에 눌러 살기로 한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가 제일 또라이야. 이 시국에 영끌해서 카페를 여는 사람이 어딨어. 글은 또 무슨 글이야."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네, 내가 제일 문제네. 





  지난주에는 한 친구가 우리 집에서 2박 3일 동안 숙식을 했다. 취미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그 친구다. 일주일에 이틀 재택근무를 하는 그 친구는 우리 집에서 자고 아침에 나와 함께 우리 카페로 출근해서 재택근무 겸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다. 내가 퇴근할 때 우리 집으로 함께 퇴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는 또 할 일이 많다. 집안일이 밀려있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해야 한다. 나는 현관문을 열면서 온 몸에 긴장을 가득 채운다. 집안일을 최대한 빨리 후다닥 하고, 씻고, 5분이라도 빨리 누워 자야 아침에 또 출근할 수 있다. 집안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지난 며칠 동안 쓰레기 정리는 미뤄두었다. 거실 벽에 걸려있던 시계의 바늘이 며칠 전부터 떨어져 있었는데, 그 시계에까지 시간을 쓸 수가 없어 그냥 식탁 위에 올려놓고 며칠을 그냥 보냈다. 


  집 안에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내가 발이 보이지 않게 뛰어다니자, 함께 퇴근한 그 친구는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이 날은 (손님도 왔겠다,) 밀린 집안일을 해치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날이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싱크대에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 정리를 하고, 빨래를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시곗바늘을 붙여 벽에 걸었다. 내가 드디어 좀 씻으니 친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세탁기가 다 돌아간 소리가 났고, 나는 세탁기의 빨래를 꺼내 빨래를 널고, 다 마른 옷들을 다림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아무래도 너무 적막한 것 같아 스피커를 켜고 음악을 틀었는데, 그때 소파에 누워있던 친구가 소리쳤다. "아, 쫌! 사부작 대지 좀 마라." 응? 자기가 자란 경상도에서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모양'을 '사부작거린다'고 한다고 했다. 나는 한참 웃다가, "알았다~"하고 또 사부작댔다. 


  다음날 나는 카페에 출근해 하루 종일 사부작거렸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출근해 우리 카페의 한 구석에 앉아 나의 아침부터 낮, 저녁, 밤을 지켜보고 또 함께 퇴근했다. 

 

  두 번째 날 밤, 친구가 나에게 별명을 붙여주었다. 사부작 대마왕. 어쩜 그렇게 하루 온종일 사부작거릴 수가 있냐고. 카페에서도 도대체 앉아있는 꼴을 볼 수가 없더니, 집에서도 어쩜 그렇게 계속 서 있을 수가 있냐고. 살다 살다 이 지경으로 사부작대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그러더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 예전에 직장에서도 이렇게 사부작거렸어?" 내가 그렇다고 하자 친구는 한숨을 쉬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왜 직장생활을 그만뒀는지 알겠어. 직장에서는 또 오죽했을까. 말도 못 하게 사부작거리면서 돌아다녔겠지. 인정도 받았겠지. 일 열심히 잘하는 직원으로 아주 정평이 났겠지. 근데 보통의 직장인들은 이 지경으로 사부작거리지 않아. 할 수 있지만 안 해.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지. 너는 아마 이렇게 정신없이 사부작거리다가 현타가 왔을 거야. '아니 내가 왜?' '누굴 위해서?' 이런 식의 현타. 그러니까, 내 말은, 너는 누구 밑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런 면에서 카페 사장이 된 건 너한테는 잘 맞는 일인 것 같아. 이렇게 끝없이 사부작거리는 사람은 계속 사부작거릴 일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아무튼 너는 너의 사업을 하는 게 맞다는 거지. 근데, 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피곤하겠다. 너네 알바생들 피곤해하지 않아? 난 너네 알바생들이 착하고 부지런해서 끊임없이 사부작사부작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네. 사장이 이 지경으로 사부작거리는데 알바생들이 눈치 보여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겠지. 아, 쫌, 사부작거리지 좀 마라. 이 사부작 대마왕아."


 





  바네사 메이를 사랑했던 열다섯 살의 중학생은 20년 후 '사부작 대마왕'이 되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바네사 메이의 연주 앞에서 '아, 저렇게 인생을 살아야지'하고 생각했던 건, 폭발하는 열정과 에너지에 대한 열망이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상한 친구들을 옆에 두기 시작한 것도 열다섯 살 이후였다.


  '이상한 친구들'은 사실 '열정적인 친구들'이었다. 검도에 대한 열정, 노래방에 대한 열정, 요리에 대한 열정, 역사에 대한 열정, 서예에 대한 열정, 나훈아에 대한 열정, 춤에 대한 열정, 여행에 대한 열정, 부산에 대한 열정... 나는 그게 무엇이든 열정을 들이붓는 친구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들의 열정을 보는 게 재밌었고, 그들의 에너지를 옆에서 느끼는 게 즐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열정적인 친구들 중 한 친구가, 부산에 대한 열정으로 부산에 눌러앉은 그 친구가 나에게 "니가 제일 또라이야. 이 시국에 영끌해서 카페를 여는 사람이 어딨어. 글은 또 무슨 글이야."라고 말했을 때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 아, 내가 제일 열정적이네. '사부작 대마왕'이라는 별명 또한 결국 그 의미였다. 아, 내가 참 열정적이네. 


  나는 타고나기를,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내가 먼저 나서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거나,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사람은 못 된다. 그런데 그런 내가 카페 사장이 되어 지금은 먼저 나서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다. 바네사 메이를 열망했던 나의 열망이 지금의 나를 이끌어가고 있다.  


  나는 '큰 멋쟁이 나비'를 열망하며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아이디어를 낸다. 사람을 만나 적극적으로 들이대고 온갖 친한 척을 한다. 사부작거리고 돌아다니며 열정을 쏟아붓는다. 


  그렇네, 내가 참 열정적이네. 




  +)


  열다섯 살, 열여섯 살의 나를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네사야!"라고 불러주었던 이과생이었던 목포 언니와 미술 전공하던 부산 오빠도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은 무려 고3이었는데 매주 토요일, 일요일 저녁마다 꼬박꼬박 채팅방에 모여 두세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네요. 수능에 대한 이야기도 간간이 했던 것 같긴 한데, 딴 얘기를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주로 음악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데 황금 같은 주말 저녁시간을 몇 시간씩이나 보냈네요. 아니, 무슨 고3들이. 아 정말, 이런 열정적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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