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워녕 May 26. 2021

엄마가 좋아하던 것을 좋아하는 기분

 

  엄마의 과거를 처음으로 궁금해한 건 열일곱 살 때였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그날부터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 모든 어른들의 입에서는 '입시'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나는 어느 대학을 가야 하나. 무슨 전공을 해야 하나. 앞으로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나. 


  평범한 건 싫었다. 흔해빠진 명문대 말고 뭔가 신박한 게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군! 생각만 해도 너무 멋있었다.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설렜다. 그리고 나는 조직생활도 잘하는 편이어서 나에게 딱일 것 같았다. 그래, 육사에 가자. 그 이름도 멋진 육군사관학교. 


  학기초, 희망 대학을 적어내라고 할 때 나는 1 지망에 육군사관학교를 적었다. 곧장 담임선생님과 상담하고 입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자료를 받았다. 신났다. 그래,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하자. 운동도 열심히 해서 체력단련도 해놔야겠다. 

  내가 육사에 가고 싶다고 하자 친구들은 나를 우러러봤다. 모든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SKY 대학을 목표로 할 때 난 육사를 목표로 고등학교 3년 계획을 세웠다. 공부계획도 세우고 체력단련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난 육사에 갈 수 없었다. 키가 작았다. 입시요강을 살펴보다 깨달았다. 육사 입시에는 필요한 최소 신장이 있다는 것을. 1, 2cm 정도 모자랐으면 척추를 꼿꼿하게 피든 목을 세우든 머리카락에 볼륨을 채워넣든 아무튼 어떻게든 했을 것 같은데, 그걸로 커버될 수 없었다. 

 

  처음으로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현실적인 꿈을 꾸고 계획을 세웠던 나는 터덜터덜 집에 돌아왔다. "학교 잘 다녀왔니?"라고 묻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설움이 복받쳤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 엄마에게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는 대체 나를 왜 이렇게 낳아놔서! 내가, 응? 아니 난 육사에 가려고 했는데! 처음으로 내 인생을 내가 계획을 좀 해보겠다는데 이게 뭐냐고. 나를 조금만 더 크게 낳았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느냐고. 내가 공부를 못해서 못 가는 것도 아니고, 체력 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한참 동안 엄마 앞에서 내 신세를 한탄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 말을 듣더니 큰 소리로 깔깔 웃었다. 아니, 지금 하나뿐인 딸이 이렇게 속상한데, 엄마라는 사람이 웃다니. 한참을 웃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더 크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근데,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육사에 가고 싶었어. 군인이 되고 싶었거든. 여군! 멋있잖아. 근데, 키가 작아서 못 갔어.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니고, 체력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냥 키가 작아서 못 갔어. 너만 그런 게 아니라, 엄마도 그랬어." 


  응?


  신세를 한탄하던 나는, 갑자기, 엄마가 불쌍해졌다. 엄마도 그랬던 것이다. 키가 작아 육사를 포기하면서 엄마도 서럽고 짜증 나고 억울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엄마를 닮은 내가 군인이 되겠다고 했을 때, 그러니까 육사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엄마가 가졌던 첫 번째 꿈을 하나뿐인 딸이 똑같이 열망하고 설레 하는 모습에 엄마는 묘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좀 좋아져서 키가 작아도 군인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려나 싶었을 것이다. 


  처음이었다. 내가 엄마의 과거를 상상해 본건.


  그러고 보니, 난 엄마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엄마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가장 친한 친구는 어떤 친구였는지, 어떤 교과목을 가장 좋아했었는지, 엄마를 아껴주었던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이었는지, 엄마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뭘 하고 놀았는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엄마의 20대는 어땠는지, 엄마가 다닐 때 대학생활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아르바이트는 해봤는지, 혼자 여행은 해봤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했는지 나는 하나도 몰랐다. 

  엄마는 그냥 엄마였을 뿐이었다. 엄마의 10대, 20대는 나에게 없었다. 엄마가 "엄마 어릴 때는 말이야"하는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때 엄마가 어떤 옷을 좋아했고, 어떤 가수를 좋아했는지 나는 관심이 없었다. 


  처음으로 엄마가 궁금해졌다. 군인이 되고 싶었던 엄마라니. 


  생각해보면, 나보다 엄마가 훨씬 군인에 어울렸다. 엄마는 정말 훌륭한 군인이 될 자질이 충분했다. 아마 엄마가 육사에 가서 정말 군인이 되었다면, 우리나라 군 역사에 한 획을 긋는 굉장한 군인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난 엄마가 짠했다. 군인이 되지 못한 엄마가 짠했고, 엄마를 궁금해하지 않는 딸을 키우는 엄마가 짠했다.  





  피자나 치킨을 먹을 때면 엄마는 늘 말했다. "엄마는 한 조각이면 돼. 엄마는 배부르게 먹는 거 질색이야." 그렇게 딱 한 조각씩만 먹고 방에 들어가던 엄마는, 그러나, 아빠와 내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피자와 치킨 몇 조각을 먹곤 했다. 버릴 거냐면서. 아깝다면서. 

  중국 음식을 먹을 때도 그랬다. 엄마는 늘 짬뽕 아니면 우동이었다. 탕수육은 한 두 조각만 먹었다. 그래 놓고 아빠와 내가 배부르게 먹고 남은 탕수육은 먹었다. 버릴 거냐면서. 아깝다면서. 


  나는 귤을 미친 듯이 좋아해서 겨울마다 손발이 노래지도록 귤을 먹었는데, 그런 나를 위해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락시장에 가서 자동차에 한가득 귤을 실어왔다. 새우깡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면서. 우리 딸 많이 먹으라면서. 

  나는 초코파이보다 몽쉘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엄마는 늘 몽쉘을 사 왔고, 혹시라도 누가 초코파이를 주면 그건 엄마가 먹었다. 나는 감자깡이나 포테토칩 같은 과자를 좋아해서 엄마는 늘 그런 류의 감자과자를 사 와서 나에게 주었고, 사은품으로 꿀꽈배기나 짱구 같은 게 딸려오면 그건 엄마가 먹었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나에게 안겨 주었는데, 정작 엄마는 늘 남은 것들을 먹었다. 그리고 난 한 번도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궁금해해 본 적이 없다. 난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하고 아빠는 양념치킨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무슨 치킨을 더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냥 아빠와 내가 합의 본 치킨을 시키면 엄마는 그냥 그걸 한 조각 먹었다. 내가 탕수육을 먹자고 하면 엄마는 탕수육을 한 두 조각 먹었고 내가 칠리새우를 먹자고 하면 엄마는 칠리새우를 한 두 조각 먹었다. 나는 엄마가 어떤 중국요리를 좋아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는 귤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어떤 과일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엄마가 정말 초코파이를 좋아했는지도 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엄마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무려 고등학교 1학년, 17살이나 되어서였다. 17년 동안 엄마는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같이 먹으며 나를 키웠다. 




  그때부터 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부먹이다. 탕수육 소스를 탕수육에 부어 먹는 걸 좋아한다. 나는 늘 하던 대로 탕수육에 소스를 들이부으려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는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는 걸 좋아하는지, 찍어 먹는 걸 좋아하는지. 엄마는 날 빤히 쳐다봤다.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눈빛. "그냥 빨리 부어. 먹게." 난 소스 그릇을 손에 쥐고 엄마에게 다시 물어봤다. 엄마는 부먹인지 찍먹인지. 드디어 엄마는 말했다. "탕수육은 찍어먹어야지..." 나는 탕수육에 반만 소스를 부었다. 그날 이후 난 완부먹(완전 부먹)이 아니라 반부먹(반만 부먹)이다. 


  치킨집에 전화를 하려다 말고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후라이드? 양념?" 엄마는 또 날 빤히 쳐다봤다.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시켜." 난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무슨 치킨?" 드디어 엄마는 말했다. "...후라이드. 아니, ...간장." 


  그렇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엄마는 어린 시절 바닷가에 살았어서 해산물 먹는 걸 좋아했다. 해산물이라고 해서 랍스터 같은 뭐 대단한 것들도 아니었다. 겨우 조개, 미역 같은 것들. 엄마 어렸을 때는 가난해서 손톱만큼 김을 뜯어서 그 김에 밥을 두 숟갈씩 올려 먹었다고 했다.

  엄마는 항상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어 끓였는데, 내가 이번에는 조개 미역국을 먹고 싶다고 했다. 또 (당시에는) 먹지 않던 굴을 먹는 방법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보며 은근슬쩍 "굴 한 번 먹어볼까?"라고 해보았다. 

 

  수산시장에 가서 엄마가 장을 보는 모습을 보았다. 마트와 정육점에 다니던 엄마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굴을 보고 갈치를 고르는 엄마의 모습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갈치가 참 크고 싱싱하네!" 내친김에 해물탕을 해 먹자면서 엄마는 미더덕도 샀다. 쑥갓도 사고 버섯도 샀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있던 엄마는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불쑥 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이런 거 안 먹잖아!" "이제부터 먹으면 되지. 먹어보고 싶어.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그날 저녁, 생전 처음 보는 밥상이 우리 집에 펼쳐졌다. 초고추장과 생굴, 미역초무침과 꼬막, 갈치구이, 그리고 미더덕이 한가득 들어있는 해물탕. 어리둥절한 아빠를 보더니 엄마는 조용히 계란 후라이를 두 개 해서 내 밥과 아빠 밥 위에 얹어 주었다. 난 그날 처음으로 생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았고, 미더덕을 씹어보았다. 먹을만했다. 엄마는 밤이 늦도록 꼬막을 까먹었고, 갈치를 발라먹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가족은 조개 미역국을 먹었다. 그다음 날은 굴 미역국을 먹었다. 오징어 초무침과 고등어조림도 먹었다. 엄마는 괜히 혼자 미안했는지 자꾸 계란 후라이를 해서 아빠 밥과 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17년 만에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먹었다. 내가 차려준 밥상도 아닌데, 엄마는 내가 차려준 밥을 먹는 사람처럼 그렇게 정성껏 밥을 먹었다. 엄마는 열심히 장 봐다가 부엌에서 열심히 만들어서 엄마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마치 내 허락이 필요했던 사람처럼. 

 

  이후 하나씩 엄마의 취향에 대해 더 배워나갔다. 라면 면발은 푹 익혀서 먹는 걸 좋아했고, 계란 후라이는 완숙이어야 했다. (완숙은 정말 반전이었다. 나와 아빠는 항상 반숙이거나 스크램블이었으니까.) 칼국수는 바지락 칼국수, 신라면보다 삼양라면, 우유보다는 두유. 드라마보다는 동물의 왕국, 멜로 영화보다는 액션 영화, 남진보다는 나훈아였다. 소설보다는 시나 에세이. 귀걸이는 치렁치렁한 거 말고 귀에 딱 붙는 거, 정장은 바지 정장, 원피스는 무릎이 보일락 말락 하게, 향수는 안 썼다. 가방에는 온갖 것들을 다 넣어야 하니 내부 공간이 큼직한 것이어야 했다. 


  엄마가 가수 이선희를 좋아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난 가수 이선희의 노래를 다 들어보았다. 내 방에서 가수 이선희의 노래가 들리자 엄마가 거실에서 흥얼흥얼 거리는 모습도 보았다. 


  엄마는 진파랑색을 좋아했다. 바다에 가면 엄마는 진파랑으로 둘러싸여 웃었다. 







  아빠의 손은 보드라웠다. 내 손은 아빠와 똑같이 생겼는데, 그래서 엄마는 아주 흡족해했다. "이거 하난 아빠를 닮아서 좋네."


  엄마의 손은 단단했다. 언제부터 단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엄마의 손은 단단했다. 엄마는 내 손을 잘 잡지 않았다. 아빠는 내 손이 보드랍다면서 덥썩덥썩 잘 잡았는데 엄마는 내 손을 잘 잡지 않았다. 엄마의 단단한 손이 내 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같이 걷다가 손등이 스칠 때면 엄마는 말했다. 아이고, 보드라와라. 그러면 나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는 또 말했다. 아이고, 보드라와라. 


  카페 사장이 된 지 반년이 되어가고 있다. 6개월 차 카페 사장이 되었다. 매일같이 손에 물을 묻히고 일을 해서 그런지, 어느 날 밤, 문득, 내 손이 단단해진 느낌이 들었다. 내 손이 엄마의 손을 닮아가고 있다. 그냥 하얗고 통통하기만 하던 내 손에 파란 힘줄이 보이고, 그 파란 게 볼록볼록 솟아오르고 있다. 손끝도 강해지고 있다. 덕분에 뜨거운 것도 아무렇지 않게 잘 만질 수 있다.


  내 손에는 이제 아빠의 손과 엄마의 손이 함께 보인다. 늘 아빠의 손만 보이던 내 손이었는데, 이제 엄마의 손도 충분히 보인다. 나는 내 손에서 아빠의 보드라운 손과 엄마의 단단한 손을 함께 느낀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엄마가 하던 것처럼 핸드크림을 양손에 듬뿍 바른다. 엄마가 발라주는 것처럼 골고루 꼼꼼하게 바른다. 엄마를 닮은 나의 두 손이 서로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아이고, 보드라와라. 

 



  책장에 꽂혀있던 책에서 엄마의 흔적을 발견했다. 엄마의 밑줄, 엄마의 글씨. 엄마가 좋아한 책. 엄마가 좋아한 문장. 


  엄마가 흔적을 남겨놓아서가 아니라, 이 문장은 그 자체로 내 마음에 콕 들어왔다. 엄마의 손을 닮은 단단한 내 손으로 펜을 잡고 엄마의 밑줄 위로 나의 밑줄을 한번 더 겹쳐 긋는다. 나는 책을 볼 때 기억하고 싶은 문장에 파란색 밑줄을 긋는다. 그러고 보니 이 색도 엄마가 좋아하던 색이었다. 진파랑색.  


  엄마가 좋아하던 잔으로 차를 마신다. 엄마가 이 잔을 들고 차를 마시던 그 모습을 안다. 나만 아는 딱 그 모습. 아마 지금 내가 이 잔을 들고 차를 마시는 모습은 엄마의 모습과 똑같지 싶다. 


  엄마가 좋아했던 것을 지금의 내가 좋아한다. 마음에 든다. 

  엄마가 보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무엇이 삶을 움직이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