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를 잃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나는 나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후, 그냥 가만히 있어도 몸의 에너지가 스물스물 빠져나가는 나날을 계속 보냈다.
카페 사장은 에너지 쓸 일이 많다. 힘쓸 일도 많고, 꼼꼼하게 디테일을 챙겨야 하는 일도 많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에너지를 받는 한 편,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다.
하루 온종일 없는 에너지를 다 털어 쓰고 터덜터덜 퇴근하면 강아지 없는 집이, 넓고 캄캄한 집이, 밀린 빨래와 설거지 더미를 잔뜩 끌어안고 있는,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집이 블랙홀처럼 나를 집어삼켰다. 아침이 되면 나는 블랙홀에서 간신히 간신히 기어 나와 출근해 또 하루 종일 에너지를 썼다.
하루는 길었다. 이미 더 쓸 에너지가 없는데, 아직도 점심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한 주를, 아직도 6일을 더 버텨야 했다.
마침 설 연휴가 다가왔다. 연중무휴를 꿈꾸던 나의 카페는 연휴 내내 문을 닫기로 했다. 기회였다. 이렇게 좋은 핑곗거리가 있다니. 하루하루 손님이 많아지고 하루하루 조금씩 매출이 늘고 있었지만 나는 쉬기로 했다. 꼼짝도 안 하고 쉬어야지.
그런데 쉴 생각을 하면서, 걱정이 되었다. 집에 강아지가 없는데.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는데. 집이 넓은데. 강아지 집도 치워야 하는데. 쓰레기 정리도 해야 하는데. 할 일이 많았다. 하나같이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일하다 말고 주저앉아 울지나 않으면 다행인 일들.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산이나 와. 빈집에 혼자 있지 말고. 바다 보며 물멍때리자." '바다 보며 물멍'이라는 말에 나는 당장 부산 가는 티켓을 예매했다.
퉁퉁 부은 얼굴로 부산에 도착한 나를 데리고 내 친구는 자기가 아는 부산의 가장 좋은 곳들을 갔다. 바다를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봤다.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고, 낮은 곳에서 바다를 온몸으로 느꼈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걸었고, 바다를 만지며 앉았다.
바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같이 먹자는 나의 권유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연애를 해." 나는 대답했다. "해." 친구는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더 해. 양다리 삼다리 더 해. 아이스크림이나 퍼먹지 말고." 아 왜, 아이스크림 좀 먹겠다는데.
'괜찮다'고 하는 나를 데리고 계속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좀 웃어"라고 하던 이 친구에게 나는 결국 즐거움이 크게 묻어나는 사진을 찍혔다. 친구는 만족해하며 말했다. "그래, 이게 너지."
오랜만에 만난 분이 나에게 조그맣고 예쁜 다육이 화분을 4개나 주셨다. 나에게 주려고 일부러 가장 예쁜 걸로 고르고 골라 잘 키웠다고 했다. 사실 5개를 준비하셨다는데, 4개만 주는 거라고 했다. 하나는 꽃이 필락 말락 하는데, 아무래도 집에 가져가다가 톡 치면 꽃대가 똑 부러질 것 같다면서, 부러지면 내가 울 것 같다면서, 울지 말라면서, 웃고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다육이를 4개만 주셨다.
2월의 마지막 금요일, 예상치 못한 꽃다발을 받았다. 해외에 계시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는 것처럼 일상을 공유하고 나누는, 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나의 브런치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분이 카페 오픈을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보내주셨다.
"아니, 세상에, 아니, 어떻게..." 하며 멈춰있는 나에게 꽃집 사장님은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 꽃다발을 끌어안고 주룩주룩 울었다. 꽃다발을 처음 받아본 것도 아닌데. 오렌지에이드를 만들다 말고 커피머신 뒤로 몸을 숨겨 울었다.
꽃다발은 나의 모든 시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옛날, 나의 최근, 그리고 나의 지금. 꽃다발은 나의 새로운 시작을 누구보다 기뻐해 주는 동시에 나를 애틋해하고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너무나 부족한데, 다른 표현할 말이 없어 일단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낸 나에게 그분은 이렇게 답해주셨다. "저런, 울면 어떡해요. 웃어요. 활짝 웃으라고 보낸 거예요. 많이 웃어요. 우리 작가님 많이 많이 웃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연중무휴를 꿈꾸던 나의 카페는 삼일절도 휴무의 시간을 가졌다. 나는 옆동네에 사는 친구를 한 명 불러내, 그전부터 먹고 싶었던 짬뽕을 먹고, 카페 사장으로서가 아닌, 손님이 되어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먹었다. 친구는 오늘 같은 날은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는데, 아이폰과 스노우 어플의 조합은 자꾸 사람을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어놔서, 나는 그냥 좀 오리지널로 찍으면 안 되냐고 툴툴댔고, 그 친구는 결국 오리지널로 찍었지만 본인은 별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웠는데, 그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언니, 이건 내가 찍으려고 찍은 건 아닌데, 언니, 웃는 게 예쁘네요."
그러고 보니 아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를 보면 기분이 좋아져.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너한테는 밝고 빛나는 기운이 있어. 너의 매력은 이거지."
아빠는 늘 나의 웃는 모습을 찍었다. 아빠가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늘 웃고 있다. 안 웃는 순간도 분명 있었을 텐데, 아빠가 찍은 나는 늘 웃고 있다. 아빠가 보는 나의 모습이었다.
봄이다.
나는 이번 봄에 카페 신메뉴를 출시하고, 새로운 직원을 뽑고, 테라스에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 놓아야 한다. 작년 봄에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올해 나의 봄이다. 밝고 빛나는 나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