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사람보다 동식물이 많은 집이었다. 엄마는 사람 키우는 건 나 하나로도 버겁다고 했으면서 키울 수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을 키웠다. 서울 한복판에 풀숲으로 우거진 정글 같은 집을 만들어놓고는 고양이, 햄스터, 거북이, 물고기, 토끼, 새, 닭이 된 병아리 등을 키웠다. (사실 엄마는 원숭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결국 집에 원숭이는 들여놓지 못했다.) 강아지가 3~4마리는 항상 기본으로 있었고, 그 강아지들이 새끼라도 낳으면 순식간에 10마리가 넘는 강아지들이 집안에 바글바글했다.
그 엄마가 마지막으로 데려온 강아지가 치와와였다.
그동안 우리 집의 그 수많은 강아지들은 엄마의 강아지였다. 엄마가 밥을 챙겨주었고, 엄마가 목욕을 시켜주었다. 훈련도 엄마가 시켰고 산책도 엄마가 시켜주었다. 나와 아빠는 옆에서 거드는 정도였다. 엄마는 그 엄청난 많은 일들을 척척 혼자 해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쯤에는 다들 나이가 많아 죽고, 동물이라고는 마지막에 우리 집에 온 치와와 한 마리만 남았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치와와는 온전히 나의 치와와가 되었다. 처음이었다. 나의 강아지는.
강아지는 나만 쳐다보았다. 밥을 줄 때도, 안 줄 때도. 산책을 시켜줄 때도, 안 시켜줄 때도. 내가 텔레비전을 볼 때면 옆에 앉았고, 화장실을 갈 때면 화장실 문 밖에 앉아서 나를 기다렸다. 내가 밥을 먹으면 옆에 앉아 밥 먹는 것을 구경했고, 건조대에 널려있던 빨래를 걷어 정리할 때면 흐뭇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집 밖을 나설 때 강아지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 다녀올게. 너무 늦지 않게 올게." 강아지는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또 강아지에게 인사를 했다. "언니 왔네. 언니가 드디어 왔네. 하루 종일 외로웠네, 우리 강아지." 그러면 강아지는 나를 쳐다보며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강아지를 앞에 앉혀놓고 온갖 말들을 했다. "난 말이지, 죽을 때까지 단 한 사람의 음악만 들어야 한다면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거야. 그중에서도 딱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조금 고민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합창교향곡이지. 아 진짜 이건 미쳤어. 이 이상의 음악은 없다고 봐, 난." 그리고 합창교향곡 4악장을 들으며 언제나처럼 줄줄 울면 강아지는 나를 쳐다보다가 드러누웠다가를 반복하며 내 옆에 있었다.
그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다. 금요일 밤이었다.
나이가 많긴 했다. 우리 집에 온 건 2008년이었다. 다른 집에서 살다가 왔으니까 2007년에 태어났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러면 지금이 2021년이니 15살이 된 셈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다리가 아파 잘 못 걸었고, 화장실 가는 걸 힘들어했다. 그리고 이번 겨울이 되었다.
이번 겨울에 나는 카페를 오픈했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언니 다녀올게. 밤에 올게. 아무리 일찍 와도 10시는 넘을 거야. 미안해. 잘 지내고 있어."라고 인사하고 집을 나와 가게에 나갈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가게에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 구경시켜줘야 할 텐데. 오늘은 짐이 많아서 못하니까 내일, 아니 다음 주에.
내가 '내일', '다음 주'를 기약하는 동안 강아지는 점점 더 힘들어했다. 언제나 허겁지겁 밥을 먹던 강아지였는데, 밥을 잘 먹지 않았다. 나는 밤 11시, 12시에 죽을 쑤고 곰국을 끓였다. 그러면 강아지는 한입 정도 간신히 먹고 돌아섰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더 이상 여기에 시간을 쓸 수가 없었다. 얼른 씻고 자야 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했으니까.
아침이 되면 밤에 만들어놓은 죽을 데우고 약을 챙겨줬다. 강아지는 이불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강아지를 붙들고 밥을 떠먹일 시간이 없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나는 강아지가 밥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했다. "언니 나갈게. 오늘도 밤에 올 거야. 밥 잘 먹고 있어. 우리 밤에 만나."
밤에 돌아와 밥그릇을 보면 아침에 내가 차려놓은 그 상태 그대로인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한 그릇 싹싹 비우더니, 그래도 한입 두입 먹은 흔적이 있더니.
밤에 잘 때면, 강아지 끙끙 앓는 소리에 잠을 깼다. 그 전에도 그러긴 했다. 같이 자자고. 자기도 침대에서, 내 옆에서 자고 싶다고. 그런데 이번 끙끙거림은 조금 달랐다. 힘들었던 것 같다. 나는 그 끙끙거림을 듣고 일어나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언니가 여기 있어. 그러면 강아지는 잠시 잠이 들었다. 새벽 두 시, 세 시 무렵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나는 또 출근을 해야 했다. "언니 다녀올게. 조금이라도 밥 먹고 있어. 한 입씩이라도 좋으니까, 다 안 먹어도 좋으니까, 암튼. 밤에 만나."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언니 왔네. 언니가 드디어 왔네. 하루 종일 외로웠네, 우리 강아지"하고 인사를 하는데 강아지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강아지의 몸은 차가운 채로 굳어져 있었다.
강아지와의 시간은 내가 사랑받은 시간이었다. 강아지는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했다. 나는 '너는 너무 적극적'이라며, '너의 사랑은 너무 지나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강아지의 세계는 온통 나를 향해 있었다. (참고 : <나의 엄마, 나의 치와와>)
그랬던 강아지를 화장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손이 덜덜 떨렸다. 울 수도 없었다.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운전했다. 옆좌석엔 이불로 감싼 강아지의 차가운 몸을 태우고.
화장터에 도착해서 나는 담담히 말했다. 아까 전화로 예약했는데요. 상담실로 안내받고 이런저런 절차와 구성에 대해 설명 듣는 동안 나는 두 손에 힘을 꽉 쥐었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하고 담당자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상담실 안에는 나와 이불에 감싼 강아지만 남았다. 나는 주저앉았다. 온몸이 눈물이 되어 쏟아져내렸다. 슬픔이 아니었다. 아픔이었다.
다음날 집을 청소했다. 강아지 이불을 치우고, 바닥에 깔아놓았던 미끄럼 방지 매트를 걷어냈다. 집이 넓어졌다. 집이 또 넓어졌다. 나의 한 세계가 송두리째 없어졌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는데 뭔가 빠진 느낌이었다. 나의 아침 할 일 중에 하나가 없어졌다. 강아지 밥 챙겨주기.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문을 닫는데 뭔가 또 빠진 느낌이었다. 인사를 해야 하는데. "언니 다녀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