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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워녕 Apr 15. 2022

I가 장사를 할 때


  "카페 일 하신지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라고 한 손님이 물어오셨다.


  나는 쑥스러운 얼굴로 "이제 1년 반 정도 되어가네요"라고 대답했더니 손님은 다시 물으셨다. "그럼 카페 일 하기 전에는 어떤 일 하셨어요? 직장 생활하신 거예요?" 그리고 이어서 질문을 마구 던지셨다. "아휴, 그럼 직장 그만두고 카페 차리신 거예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이놈의 회사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 그래도 또 직장 생활하는 건 하는 것 대로, 이렇게 자기 사업은 사업대로 힘든 점이 있겠죠?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힘드세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직장생활은 주어진 일만 실수 없이 처리하면 되죠. 틀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틀이 갑갑하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제 친구들도 그럴 때 많이 힘들어하고 좌절하기도 하더라고요. '월급이나 받으니 버티는 거지 뭐'라면서요. 사업은 그 반대예요. 틀이 없어요. 제가 하는 만큼 일이 되고, 아니, 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죠. 근데 그렇다고 안 하면 일이 아예 안돼요. 그래서 가만히 있지 말고 계속 움직여야 하고, 생각을 멈추면 안 돼요. '지금 이것까지는 했는데, 그래서 그다음은?' '이젠 또 뭘 해야 하지?' 하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해요."


  "카페라 아무래도 더 그럴 것 같아요. 요즘 시대의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하니까요. 계속 고민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음, 이걸 어떻게 이해시켜야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도태되는 기분 하고는 조금 달라요. 도태될 수도 있죠. 모든 카페가 세련되고 화사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복고'나 '촌스러움'이 컨셉이 될 수도 있고요. 다만, 굳이 따진다면 현재에 안주하느냐 더 나아가느냐의 문제일 텐데, 제가 조금 해보니까, 안주하면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도태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꾸 뭘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뭐라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게 사업이었어요."






  MBTI 유형 중 E(외향형)와 I(내향형)가 있다. E와 I의 차이는 쉽게 말하면 에너지를 어디서 받고 어떻게 쓰느냐의 차이라는데, 그러니까, E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쓴다면 I는 내부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쓴다고 한다. 즉 E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받는다면, I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한다는 의미다.


  나는 I(내향형)이다. 가끔 E처럼 활동적인 모습이 나오기도 하지만, 아무튼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나로서는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내가 무언가를 '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게 아무리 작은 일이더라도 나에게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 된다. '그게 뭐라고' 하는 별것 아닌 일도 I인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몸을 일으켜 그 행동을 하기까지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에너지를 쓰기 위해서는 남는 시간에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하는데, 그래서 나는 멍하니 있거나 혼자 웅크리고 있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카페일을 하면서는 '내가 정말 I가 맞구나' 하고 매 순간 확인하고 있다. 매일 사람을 만나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일은 모두 나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들이었다.



  하루 매출이 바닥을 치는 날이 있다. 손님을 많이 만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런 날도 나는 괜히 바쁘다. 가만히 있는 시간이 더 바쁜 느낌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불현듯 "자, 이제 또 뭘 해야 하지?"의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 나는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 매장 청소를 하고 재료 준비를 해 놓는다.


  다 하고 다시 앉아 잠시 멍하니 앉으면 또 한 문장이 번뜩 눈앞을 스친다. '뭐라도 더 해야 한다.' 레몬청도 담가놓았고, 디저트도 다 만들어 진열대에 빵빵하게 채워 놓았고, 설거지도 다 했고, 필요한 재료들 발주도 다 해놓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뭐라도 더 해야 한다'.


  나는 생각하고 생각한다. 널려있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쥐어뜯는다. '손님들을 더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포스터를 새로 만들어 붙일까, 쿠키 스티커를 새로 만들어 붙일까, 바깥에 내놓은 배너를 새 걸로 바꿀까, 테라스 테이블에 꽃을 놓아볼까,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볼까, 인스타그램 광고는 어떤 식으로 하는 게 좋을까, 새로운 이벤트를 한번 열어볼까, 자주 오는 단골손님에게 가끔 서비스로 줄만 한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또...' 심지어 나는 창의적인 사람도 못되므로, 이 일은 나에게 매우 큰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다.


  에너지가 줄줄 흘러나간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밤이 되면 나는 지친다. 하루 종일 손님이 별로 없었어도 나는 기력을 모두 소진한 느낌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시키는 일이나 고분고분하게 하고 싶다. 주는 돈이나 따박따박 받고. 그러는 게 마음은 편하지.'




  월급을 받으면 생활비 걱정만 하면 된다. 집세, 공과금, 식비, 그리고 약간의 용돈과 저축. 사업을 한다는 것은 그 사업에 들어갈 비용 또한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매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생활비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200만 원 월세를 내는 집에 사는 것과 200만 원 월세를 내는 매장을 운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규모가 큰 사업장일수록 큰돈을 벌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들어가는 돈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장 유지비용과 재료비, 인건비, 그리고 세금과 온갖 수수료까지.   


  치킨집 사장님은 치킨값을 3만 원은 받아야 한다고 하고, 손님들은 아메리카노 3천5백 원이 비싸다고 한다. 이 사이에서 나는 시름시름 앓는다. 운영하는 입장에서 쓸 돈 쓰고도 충분한 이익을 내야 하고, 그리고 고객의 입장에서도 쓴 돈 이상의 만족스러움을 갖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 위에 걱정이 더해진다. 매일 걱정과의 싸움이다. 걱정을 덜 하기 위해 고민하고 고민한다. 고민 위에 고민이 더해진다. 이 걱정과 고민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의 일' 말고 '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이 무게감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도태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무게감을 견뎌내려면 자꾸만 뭘 해야 하는 것이었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I인 나는 에너지가 더 필요하다. 에너지에도 빚을 질 수 있다면 빚을 지고 싶을 만큼 에너지 쓸 일이 넘치고 넘친다. 생각해야 하고 생각해내야 한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쓴다. 무언가를 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걱정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에너지를 쓴다.






  퇴근 후 쌓인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내일은 출근하면 뭐부터 해야 하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일이 끝난 게 아니다. 이쯤 되면 예전에 떡집 사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울컥한다.

  "일이란 게 말이죠,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야 하는 건데 말이에요. 이건 그게 없어요. 장사라는 게 말이에요. 오늘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 맘 편히 쉴 수가 없어요. 끝난 게 아니거든요. 다음날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게 아니에요. 어제 못다 한 일, 미뤄둔 일을 이어하는 거지. 오늘이 어젠지 내일인지 모르겠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몇 월 인지도 모르겠더라고."  (참고 <자영업자 옆에 자영업자>)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서 계신 옆 가게 사장님들을 본다. 무언가를 계속하고 계신 사장님들이다. 손님이 있든 없든 움직이고 계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련한 움직임일 수도 있고, 다음 스텝을 위한 부지런한 움직임일 수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또다시 에너지를 흥청망청 쓸 준비를 한다.

  "자, 이제 뭘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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