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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엽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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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14. 2023

세레나데 2

 경비 아저씨를 찾아간 건 세 번이었다. 우선 그전에 낮에 회사에서 은아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며 안내방송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층간소음 온라인 카페에 들어갔다가 ‘안내방송 시끄러워 죽겠다, 저런 걸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아직도 있나? 애초에 말이 먹힐 인간들이었으면 층소충이 되지도 않았다’등의 글을 보고 민망과 절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첫 번째로 경비실을 찾은 날은 경비아저씨 두 분 중 이 아파트에서 일한 지 몇 년 되셔서 마당발 같은 분이셨다. 오후 6시쯤이었는데 아저씨는 당장 위층에 올라가 보자며 은아에게 희망을 던져주셨다. 아저씨와 은아는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이 내렸지만 은아는 비상구 계단에 숨어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저씨는 은아의 윗집과 그 양 옆집의 벨을 차례로 눌렀다.

  “경비원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 윗집 1811호에선 은아 자신보다 어려 뵈는 여자가 요가복을 입은 채로 나왔고 1810호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으며 1812호는 문 만 열리고 사람이 나오진 않았다.

  “아래층에 새로 이사를 왔는디 시끄러워서 못 산다 안 하요. 집에 애들 있소? 악기나 개는?”

  “저희 집은 아니에요”

 12호는 열린 문틈으로 한 마디를 내뱉고 사라졌다. 

  “우리 집은 아니에요. 우리 손녀 혼자 사는 집인데 거의 집에도 안 들어와요”

 10호 할머니는 오늘 손녀의 빨래를 해주러 잠깐 들렀다신다.  은아는 남은 저 두 여자분이 험악해 보이지 않아 서서히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래층 사는 사람입니다. 이제 막 이사 왔는데 밤 되면 특히 쿵쿵 발소리에 문을 쾅쾅 닫아서 살 수가 없는 상태여서 아저씨께 부탁 좀 드렸어요.”

 혹시 보기와 달리 그들이 까칠하게 굴까 싶어 ‘혹시 14층은 층간소음에 시달리시지 않나요?’라고 동병상련을 유도하는 멘트도 넣었다. 

  “맞아요. 어제도 어디서 싸우는 소리 들리는 거 같던데...”

  11호 입주민이 말했다. 

  ‘인정하니? 니들이 새벽까지 떠들기까지 했지. 근데 그것보다 지금 쿵쿵쾅쾅이 문제다 이 여자야’

  소음의 발원지가 바로 윗집처럼 느껴져도 옆, 대각선, 두 세 층 위, 심지어 아래에서도 소리가 올라온다고 하니 그녀를 범인으로 단정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유력한 용의자는 바로 그 집이었다.

 

 두 번째 경비실 방문은 그로부터 4일 뒤인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다. 경비아저씨가 정확히 몇 시에 근무를 –지하 숙직실에서 올라오시는 시각- 시작하시는지는 몰라도 7시에는 확실히 계실 거라 은아는 새벽 내내 그 시간만을 기다렸다. 

  “윗집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물증 잡았어요. 윗집이 맞아요.”

 은아는 핸드폰에 찍힌 사진 하나를 아저씨께 내밀었다. 어젯밤 10시경 잠에 들었다가 발망치와 문소리에 다음날까지 가지도 못하고 12시가 되기 전에 잠에서 깨 새벽 2시가 넘어서도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자 은아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비상계단으로 14층에 도착했고 혹시라도 들킬까 고개만 쭈욱 내밀어 복도를 쳐다봤다. 그런데 글쎄, 한 집만 문이 열린 채 거기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저씨, 저 정말 어젯밤에도 밤새 문 쾅쾅 닫고 쿵쿵 걸어 다니는 소리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요. 윗집에 전화 좀 해주세요”

  “그때 당장 경찰을 불렀어야제”

  “네?”

  “저번에 같이 올라갔을 때 안 그럽디까. 자기네 집은 아니라고”

  “제가 물증 가져왔잖아요. 다 고요한데 그 집만 불이 켜져 있고 그 집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구요”

  “아니 그러니까 경찰을 불렀어야지 왜 나한테 그러요 참말로”

  “원래 경비아저씨 통해서 얘기하는 거라고 하던데요? 경찰 부르면 일이 더 커지니까 좋게 해결하려는 거잖아요”

  “하아 참... 자기 집 아니라고 한디 참말로 난처하네”

  “아래층에서 민원 들어왔다고 전해주시기만 하면 되잖아요”

  “경비가 뭔 힘이 있소? 이런 건 관리사무소에 가서 얘기하쑈. 그러면 거기서 경비한테 어떻게 하라고 시킬 거 아니요. 그라믄 내가 말 전하다 뺨이라도 맞으면 명분이라도 있제. 지금은 나도 곤란하요”

 은아는 경비 아저씨가 출근만 하시면 새 세상을 맞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아까보다 더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은아는 배가 고파 속이 쓰리지만 한강공원을 걷고 싶은 바람이 더 컸다. 먹은 것도 없이 속이 답답하니 별 수 있나. 한 시간쯤 걸었을까. 은아는 구구절절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하필 며칠 전 뉴스에 어떤 아파트 주민 한 명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 묻지마 살해를 당했다는 게 나와서 은아는 층간소음에 대한 개선을 더이상 청하지 않기로 굳건히 마음먹었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귀만 틀어막을 순 없었다. 은아는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갔고 A4에 연필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적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사 온 날부터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등 다소 문어체 형식으로 자신이 매우 어려운 심경임을 토로했다. 그리고 오후 6시쯤 편지는 선물과 함께 그 집 앞에 놓였다. 결과는? 무반응이었다. 아참, 편지를 놓고 오는 길에 경비실에 들렀는데 아저씨는 윗집 남자에게 쌍욕을 들었다 했다. 아저씨가 그동안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은아는 알 것 같았다. 머리를 조아려야 할 인간은 큰 소리를 치고, 밥 벌어먹는 중인 사람은 인격모독을 당하고,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는 내동댕이 쳐있고.. 어쩜 이게 한국 사회의 단면일지도.  

 월요일, 은아는 회사에 반차를 내고 관리사무소를 직접 찾았고 관리소장과 독대했다. 소장은 은아가 제시한 방법들에 다 회의적이었다. 아파트의 층간소음관리위원회도 유명무실, 경찰이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현재 우리 단지에 2년째 싸우고 있는 케이스가 있다 등 하나같이 절망적이었다. 방송이나 공고문도 효과 없다고 소장은 현실을 분명히 했지만 은아는 그래도 해달라고 했다. 원한다면 해주겠다, 그러나 경비가 이미 전화를 한 상태이니 오늘 말고 다른 날 하는 게 낫겠다,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언제든 전화하면 바로 실행하겠다가 그들 대화의 결론이었다.      

 2주 뒤 저녁 7시, 207동에선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는 공고문이 붙었다. 은아는 처음 알았다. 층간소음 안내 기준은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이며 ‘금지’ 항목과 ‘자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은아가 봐선 사회인이라면 죄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이었는데 말이다. 금지 항목 6가지 중 은아의 최대 하소연 두 가지가 볼드체로 첫 두 줄을 차지하고 있었다. ‘쿵쿵 걷거나 문, 창문 등을 크게 소리 나게 닫는 행위’, 그리고 ‘망치질, 가구 끄는 행위’였다. 참고로 자제 항목 3가지는 ‘세탁, 청소’, ‘TV, 음악’, ‘주방, 샤워’ 소음들이었다. 효과는 없겠지만 은아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자 제 할 만큼은 했다. 은아가 할 수 있는 것은 새 집을 구하는 것 외에 더 남아있지 않았다.  


 경비아저씨를 향한 은아의 마지막 구조 요청은 밤 10시, 인터폰을 통해서였다. 야근 후 집에 막 들어왔는데 진동과 함께 문이 드르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기어코 ‘쾅’ 닫혔다. 

  “아저씨, 위층에서 문 쾅쾅 닫아요. 전화 좀 해주세요”

  “또 그런다고요?”

  “또가 아니고 항상 그래요. 방금도 심장이 내려앉아서 바로 전화드린 거예요"

  "예, 지금 전화해 볼라요"

 아저씨는 바로 전화 못 하고 또 고민하시겠지? 시간 좀 걸리겠네. 은아는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샤워 중에 인터폰이 울렸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바로 뛰어나갈 수 없어 은아는 그냥 벨소리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벨은 꽤 오래 울리다 멈췄고 윗집의 소음도 멈췄다. 거봐, 위층 맞다니까.

 은아는 그 뒤로 더 이상 관리사무소든 경비실이든 주변 지인들에게 층간소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부질없는 짓이란 걸 더는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2주 뒤, 은아의 왼쪽 귀에서는 ‘삐-’하는 소리가 들렸고 다음날 아침에 돌발성난청 진단을 받았다. 멀쩡했던 은아의 청신경은 장차 60일의 모험을 뚫고 마침내 망가졌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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