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엽편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삐삐 Nov 13. 2023

그녀의 노래

 “주은아, 건강검진 예약 좀 해줘”

 자부담 50프로에 나머지는 회사에서 비용을 제공하는 부모님 건강검진 코스를 몇 년째 거부해 온 엄마였다. 심혈관 문제 때문에 내시경을 수면이 아닌 맨정신으로 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아예 공짜도 아닌 점을 들어 엄마는 계속 병원 출입을 꺼렸다. 실제로 큰 병증 없이 살아오기도 했고 네가 일해서 번 네 돈이니 너 원하는 거 하나라도 더 하라는 뜻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엄마, 근데 웬일이야?”

  “우리 히어로가 하라잖아. 팬들 건강까지 생각해 주는 가수 너 봤니?”

  엄마는 언젠가부터 뭘 사도 웬만하면 하늘색을 고르고 노래라면 찬송가만 틀어놓던 사람이 타 장르의 특정인 목소리를 –하늘의 그분에 대한 배반이라는 생각에 차마 이 땅의 그를 하루 종일 찾진 못한다- 많이 듣는다. 그렇다. 우리 집엔 ‘히어로시대’ 회원님이 산다. 그 음성의 주인공은 나에게 여러 번 효도의 기회를 –이름하여 효켓팅- 주었지만 나는 번번이 실패했다. 덕분에 내가 인생에서 달성 못한 것들 리스트가 한 줄 추가되었다. 의외의 패배감이다. 아무튼 나도 대한민국의 많은 아들 딸들의 의견과 마찬가지로 어서 그분이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여 더 큰 공연장, 더 많은 공연을 시도하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그분의 영향으로 다른 종류의 효도 하나를 달성했다. 고마워요 히어로, 당신도 꼭 건강하세요. 그의 안부가 이미 그녀 마음에 꽂힌 만큼 번복 의사는 없겠지만 그래도 엄마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예약해야겠다 싶어 나는 한밤중 노트북을 켰다. 


 우리 회사 출근시간은 9시인데 어제 못 끝낸 일이 마음에 걸려 나는 한 시간 일찍 출근을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 조용히 내려 마시며 기분을 업시켜야지. 그런데 주차장에 팀장님 차가 있었다. 차를 놓고 가셨나? 칼퇴근이 목표인 우리네 월급생활 중 이 시간에 출근한 사람이 있을 리 없는데 왜 내 차가 1번 손님이 아니란 말인가.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에스프레소 향이 풍겨왔고 팀장님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오, 주은 씨.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어제꺼 마감을 못 쳐서요. 그런데 팀장님은요?”

  “나는 매일 7시 반에 출근하잖아.”

  승진하려면 이래야 하는 건가? 나는 늘 온화한 그녀가 다시 보였다. 내 짐작이 –그녀가 솔직히 대답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맞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오세요?”

  “우리 애가 고3이라 애 데려다주고 시간이 어정쩡해서 그냥 회사로 와요”

  “같이 수험생활하는 마음이시겠어요. 고생 많으세요”


 엄마 본인도 자신의 마음이 무언가에 그렇게 사로잡힌 것에 대해 놀라긴 했지만 사실 나는 처음에 엄마의 그런 변화가 못마땅했었다. 

 ‘갑자기 웬 연예인? 이런 감수성은 젊었을 때나 폭발하는 거 아닌가? 가황이나 가왕 콘서트였으면 이해라도 됐을 텐데...’

 평소 나는 ‘나이’를 잣대 삼고 걸림돌 삼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그런데 정작 내가 나의 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내 사고적 모순을 부여했다니. 엄마도 자신의 리즈시절에 지금의 나처럼 본인에게 최고로 집중하여 외모를 더 가꾸거나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돈과 정성을 쏟거나 자신만의 세계를 더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 등교 시간에 딱 맞춰 출근하고 아이 하교 시간에 딱 맞춰 퇴근하는 동료를 보며 나는 우리 엄마가 지나온 그 시절에 숙연해졌다. 맞아, 우리 엄마도 그랬지. 선배의 딸이 어떤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나보다 까탈스럽진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그때 얼마나 자유롭고 싶었을까.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던 게 아니라 그럴 여건이 안 되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엄마가 내 예상대로 정말 그렇게 답할까봐 감히 물어보진 못했다. “근데 엄마 왜 이렇게 변한 거야?”라고 비아냥대던 나의 ‘이해 불가’는 결국 ‘이해 거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책 속에 파묻혀 꿈을 꾸던 소녀는 치열히 살아가는 동안 힘에 부치고 벽에 가로막힌 시간을 거쳐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다시 꿈을 꾸게 됐다. 엄마는 환갑이 지나서 자신만의 ‘오빠’가 생겼다. 몇 년 전까지의 엄마는 살면서 한 번도 기쁨의 원천이 완벽한 타인 누군가였던 –가족은 끔찍이 아낀다- 적이 없었다. 그런데 티비에 재미있는 프로가 없어 리모컨으로 채널 전체를 두 바퀴째 돌리던 중 노래 한 소절이 스쳤고, 자꾸만 귓가에 맴돌아 아까 지나쳤던 그 채널로 돌아갔고, 결국 노래의 남은 소절을 다 듣고는 그에게 마음을 뺏겼다. 엄마는 분명 전보다 활기차졌다. 엄마의 건강한 도파민 분비를 앞으로도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레나데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