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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Nov 26. 2023

꿈, 꿔 말어?

Be a nice dreamer

 나는 자면서 꿈을 많이 꾼다. 대부분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지만 어쩔 땐 괴상망측한 것도 있고 어쩔 땐 꿈에서 깨버린 게 원통할 정도로 기분 좋은 것도 있다. 길몽인지 흉몽인지 의미를 두진 않는다. 몇 년 전에 되게 좋은 꿈같아서 난생 처음 로또를 사봤는데 꽝이었다. 그 후 나는 꿈에 더욱더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좋은 점이라면, 무서운 꿈도 내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 하나 정확한 꿈이 있다. 이것은 틀린 적이 없다. 바로, 시험 보는 꿈이다. 내가 꿈속에서 시험 때문에 내내 곤욕을 치렀다는 것은 현실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스탑 드리밍!


 지금은 초등학생들의 소원도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꿈으로 한창 부풀어도 모자랄 판에 그놈의 '잘 먹고 잘 사는' 프레임은 블랙홀처럼 꿈나무들의 포부와 상상력까지 모조리 앗아가 버렸다. “선생님은 꿈을 이뤘어요?”라고 묻는 6학년 학생에게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더니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돈 세는 폼을 해 보이며 “왜요, 이게 안 돼서요?”하는 모습에 나는 참담했다. 도대체 돈이 뭐길래, 태어난 지 이제 십 년 남짓 된 애들마저 돈돈 거리는 걸까. 이것도 ‘경제관념’이라고 포장할 수 있을는지. 그런데 오늘의 나는 그들의 선견지명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지경이다. 나이가 그들 부모쯤 되는 나는 지금까지도 자가 소유에 대한 바람이 그다지 없는데 말이지. 물론 허무맹랑한 뉘앙스로 ‘건물주 되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여성들의 흔한 장래희망이 카페 사장 아닌가. 내 건물만 있다면 매출 걱정 없이 카모메 식당 같은 공간을 가질 수 있고 나는 마침 제과 자격증도 따놓았으니 겸사겸사. 결국엔 애나 어른이나 같은 목표를 갖게 된 이 어처구니없는 세대 공감 사회여. 


 옷방에 들어가 보니 천장까지 높이 고정되어 있던 행거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며칠 동안 일부러 못 본채 지나쳐왔었다. 저 많은 옷들을 내리고 다시 행거를 고정시키고 다시 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기에 나는 지지대를 살짝 돌려 쓰러짐만 막아놨었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 다시 휙 위험하게 돌아가있는 행거를 보니 마침 집에 하루 종일 있는 날이고 해서 바로 해결에 들어갔다. 촘촘히 걸린 옷걸이들을 하나씩 내렸다. 그리고 과감히 옷을 골라냈다. 기증할 목적의 분류였다. 이사할 때마다 몇 박스씩, 집 정리를 할 때마다 조금씩 해오던 일이긴 했는데 이번 기회에 나머지 정리를 다 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들이 아직 내 옷걸이에 걸려있는 이유는 비싸게 주고 산 멀쩡한 옷인 데다 한창 다이어트에 성공해 신나게 쇼핑했던 작은 옷들이 대부분이라 그때의 찬란했던 '영광'을 다시 맞이하겠다는 포부에서였다. 살을 빼서 꼭 입고 싶었다. 그런데 오, 멀어져 가는 사이즈여. 나는 오지 않을 그 숫자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는 양이 제법 많아서 온라인으로 방문 수거 신청을 했다. 기부금 영수증도 발행되니 올해 연말정산에 쪼끔 도움도 되겠지. 얼마 전에는 시대에 발맞춘답시고 온갖 액세서리에 고전문학 500권까지 옵션으로 넣은 E-book 리더기를 샀는데 도무지 읽히지 않아서 나는 다시 종이책으로 돌아갔다. 팔기도 아깝고 그냥 갖고 있기도 아까워 나는 결국 새 물건을 삼분의 일 가격으로 당근에 내놓았고 어떤 학생이 5천 원만 깎아주면 바로 사겠다고 해서 그가 원하는 가격으로 바로 직거래를 했다.

 내게는 허상이지만 누군가에겐 값진 현실이 될 수 있고 세상 속 개체들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는 각자의 꿈을 위한 서로 돕고 돕는 공생관계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깝지 않다. 공부는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 경우만 봐도, 지금까지의 노력들이 이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다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거든. 그래서 장차 다른 꿈을 꿔보려 한다. 오, 컴온 마이 드림!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를 하면 꿈을 이룬다는 걸 명언으로 삼던 시절이 있었다. 개뼈다귀 같은 소리다. 잠을 잘 자야 -수면장애가 생긴 이후에야 알았다는 이 아찔함- 꿈을 이룬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꿈은 선별되어야 한다. 무지성 추구는 개인과 사회를 일방적으로 내몰고, 방향성이 없는 움직임은 삶을 지치게 한다. 더 이상 꿈속에서 헤매지 않청사진을 건져 올리고 싶다. 선명한 드리머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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