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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r 24. 2024

고양이로부터

길을 걷다 고양이와 싸움이 붙었다

먼저 뚫어져라 쳐다본 건 그쪽이었고

나는 맞장구를 쳐준 것뿐이었다


인간끼리의 그것과는 룰이 달랐다

눈은 깜빡여도 된다

단, 먼저 눈을 피하는 쪽이 패자다

물론 상대와 협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싸움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그럼 나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가 눈으로 계속 나를 뚫으려 했지만

봄바람에 간지러워 눈을 깜빡이는 내 약점이 문제가 아니라고 하니 

난 언제까지고 녀석을 째려보기만 하면 됐다


나는 이기고 싶었다

지난 꿈들에 연이어 나타났던 적들에게 시원스레 내뱉지 못하고 번번이 잠에서 깨버렸던 분함이 

갑자기 살아났기 때문이다

다시 꿈에서 만난다면 그땐 당당히 승전고를 울리기 위해 

나는 예비전투가 필요했다

그리고 길고양이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만났다


그저 아파트 화단에서 일광욕을 하던 중이었다

저쪽에서 움직임이 느껴졌고

감각의 일함으로 고개는 그쪽을 향했다

시야에 인간이 잡혔다

다시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시야 속 인간은 아직 거기 있었다

나도 계속 바라봐주었다, 영문 모른 채 


혼자만의 싸움이었다

시비는 허상이었다

그때의 우리도 혹시 그랬을까

지나가며 훅 날려버릴 것들에 서로를 투영하고

필요치도 않은 의미 한 줌씩을 툭 던졌던 게 아니었을지


나는 승자가 아니었다

대치하며 서 있기엔 시간이 아까워

내가 먼저 떠났기 때문이다

뒤돌아보지 않았기에

녀석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늦은 선택은 옳았을 터

다시는 오해로 우물쭈물하지 않겠다

그러다 보면 삶의 치열함도 점점 부드러워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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