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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백이 May 09. 2023

처음 써보는 소설

가제 : 꿈

* 1.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눈이 떠졌다. 안주가 부실했나? 의도적으로 참았던 술을 한 달 만에 마셨다. 무너질까 봐 술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술을 멀리했다.


  어젯밤에는 불현듯 이제는 마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겨서 큰 컵에 맑은 술을 가득 채워보았다. 안주라고는 저번에 반절 잘라 끓여 먹고 남은 라면 반절에 김치와 달걀을 넣고 특식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김 빠진 청하도 술은 술이었나 보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통 입맛이 없어서 음식과 멀리했었는데, 생리가 오려나 음식이 당기고 있다. 젠장 남들은 이 나이에 폐경을 걱정하던데, 난 이별 때문에 술을 찾다니 한심하다. 큰 컵에 벌컥벌컥 한 컵을 마셨다. 울화통으로 늘 뜨거웠던, 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갈 때 그 녀석 얼굴을 가방으로 내려쳤을 때의 시원함과 통쾌함이 밀려왔다. 한 컵만 마시려고 한 컵만 따라왔는데, 한 컵 더 한 컵 더 석 잔을 연속으로 마시고, 라면 국물에 참 오랜만에 달게도 마셨다. 순식간에 아무 생각 없이 마시고 상을 대충 치우고 멍해 앉아있다가 휴대전화를 바라보다. 이런저런 생각에 이불속으로 가라앉는다. 모처럼 일찍 잠이 들었는데, 초저녁부터 잠을 잤는지 눈을 떠도 그날 밤이고 또 눈을 떠도 새벽 또 눈을 떠도 아침이 되지 않았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이쪽으로 돌리고 저쪽으로 돌리고 술이 깨고 있는 것이다. 급하게 연속 큰 컵에 마신 것이 취기가 올라왔나 보다. 술이 깰 때 머리 아픈 것이 어제 목줄기를 시원하게 타고 내려가는 것이 좋아서 여러 잔을 마셨다.술을 마실 때는 좋은데 취기에 천장이 뱅글뱅글 돌고 천장이 나에게 달려들 때 머리를 이쪽으로 피하고 저쪽으로 피하면서 천장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몸부림칠 때 기분이 좋지 않다. 잊고 싶어 마신 술이 뒤끝이 좋지 않다. 뒤끝 오래가는 나 같다. 겨우 머리가 괜찮아졌다. 애들 학교 갈 준비 해 줘야지.


  조용한 집안 밀대 청소를 하고 일기 몇 자 적어본다. 잊고 싶어 마신 술이 더 모든 기억을 생생하게 만들어 내려간다. 누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단 말인가? 잊혀지고 지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흐릿해지겠지, 우리 가슴에 흔적이 남아있겠지. 흉터로 지금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마데카솔과 과산화수소가 필요하다. 엄청나게 쓰라리겠지. 그래도 계속 소독하다 보면 언젠가는 꼬들꼬들 상처가 아물 것이다.     


  엎드려서 책을 보다가 문자가 와서 혹시나 하고 얼른 휴대전화를 열어보았더니, 2년마다 하라는 건강검진 문자가 왔다. 그래 연말에 하면 건강검진센터가 밀릴 테니 지금 잠시 쉬고 있을 때 빨리 받아보자. 병원에 전화하니 안내 전화가 건강검진센터로 돌려준다. 가장 빠른 날짜를 잡아보았다. 기본적인 검진을 1차 적으로 먼저 하고 대장 내시경과 위 내시경은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한다고 한다. 촬영이 밀려있어서 뒤로 미뤄졌다. 

    

  희망종합병원에 도착하니 다들 마스크로 입을 꽁꽁 싸매고 눈만 보인다. 종합병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극심한 다이어트로 접수대에서부터 검진 과로 옮겨 갈 때도 말 시키는 것이 힘들고 짜증이 난다. 대변을 가져오라 해서 대변을 비닐봉지에 담아왔더니, 소변도 받아오라면서 대변 통에 아주 조금만 찍어서 넣어 주라 한다. 화장실 옆에 소변 놓는 곳이 있었다. 바로 검사실로 연결해서 가져가는 곳이다. 참 신기하고 구도를 참 잘해놨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대변받아오기 싫어서 수면내시경 한다고 했더니, 대변을 받아와서 검사 후 이상이 있으면 수면내시경 가격을 보험적용 해준다고 하니 더러워도 받아와야지, 채변 검사하면 국민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싫고 더러운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똥을 가져오라 하면 더러운 똥을 약봉지 같은 것에 넣어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들고 간다. 꼭 손에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세 손가락은 짝 펴고 꼭 두 손가락으로만 집고 갔던 기억이 난다. 채변 검사 후 선생님은 우리에게 흰 알약 한 알씩을 주었다. 그 시절 다들 배속에는 꿈틀거리는 해충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기차역 앞 약장사는 사람들을 끌어 모이고 아이들 두명을 불러서 아이들에게 약을 먹인 후 막대기를 서로 맞들고 있게 하고 10살쯤 되는 사내아이들의 바지는 팬티와 함께 엉덩이 반절까지 내려놓고 막내기를 잡고 있으라고 한다.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빛나는 눈 중에 어린 내 눈도 포함되었다. 요즘 같으면 아이들의 엉덩이까지 내려진 바지를 보면 인격 모독이고 아이들을 학대한다고 시끌시끌했을 것이지만, 그때는 그런 게 어디 있어 우선 어른들 실속 챙기기 바쁘다. 빛나던 눈은 더 커지고 미간에는 주름이 생긴다. 엉덩이 사이로 흰 지렁이 같은 해충이 서너 마리씩 아이들 팬티로 떨어져 나왔다. 기다란 그놈들이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를 뚫고 작은 똥꼬 사이로 밀고 나왔던 것이다. 그게 가능한가 하는 의심은 눈으로 봤기 때문에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생생한 기억 때문에 병원에서 채변 검사를 위해 똥을 가져오라 했을 때 싫었지만, 혹 똥에 혈변이라도 나오게 되면 수면내시경 비용이 보험 혜택을 받는다고 하니 안 가져갈 수 없었다.


  아직도 흰 지렁이가 아이들의 똥구멍으로 뚫고 내려오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더럽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배속에 그런 큰 해충이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다. 어릴 때 눈을 가리고 봤던 외국 드라마 브이(V) 파충류처럼 생긴 외계인이 우리 지구를 점령하고 쥐를 입에 넣어서 먹던 기억이 떠오른다. 충격적인 드라마는 그 시절 우리의 주말 밤을 기다리게 했다.     


  혈압을 재고 배 둘레를 재고 눈 시력을 재고 눈 시력은 엄청 좋다. 청력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을 들라고 한다. 혹시 내가 잘 못 듣고 손을 잘못 올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다행하게도 소리를 잘 듣고 오른쪽 왼쪽 잘 들었다. 치과 검진 시 입을 벌리라고 해서 벌렸더니, 그렇게 크게 벌리면 턱이 빠질 위험이 있다고 한다. 벌리라고 해서 크게 벌렸더니 겁주고 있어 산부인과 검진은 늘 기분이 별로이다. 다른 사람에게 앞 트임 치마를 입고 다리를 쫙 벌리고 누워 있는다는 게 느낌이 묘하다. 간호사의 주문대로 치마를 입고 팬티를 벗고 진료대에 앉았더니, 의자를 눕혀서 날 눕혀버린다. 다리를 쫙 벌리고 커튼 사이로 의사가 아주 짧게 세포를 띠고 둥근 초음파를 내 질 속으로 넣어서 이쪽저쪽 돌려가면서 초음파 검사를 한다.  둥근 초음파가 내 질 속을 헤집고 다닐 때 기분이 별로이다. 차가운 느낌과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그 짧은 시간이 선생님의 꾸지람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처럼 길게 느껴진다.

  의사는 별말이 없다. 의사의 나가는 발소리와 간호사의 치마 내려주는 손길과 눕혔던 의자를 올려주고 다 끝났다고 한다. 오만 원이나 더 추가해서 초음파를 받았는데, 의사는 한마디도 않고 나간다. 돈이 아깝고 본전 생각이 난다. 간호사가 의사의 배려라고 하지만, 여성질환을 자주 앓아서 개인병원을 많이 다녀본 난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진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영상의학과에서 본인확인 할게요. 성함과 생년월일 확인할게요.

“신수경 730510” “네 확인했습니다. 앞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유방암 검사는 두 번째다. 내 가슴을 쓸어 올리고 누르고 밀고 가슴이 커서 그런지 검사준비 과정이 오래 걸렸다. 처음에 했을 때는 이 정도로 힘들지 않았는데, 종합병원 선생님이 잘못하는 건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들었다. “눈 감지 마세요. 더 어지러워요.” 윙 칙 찍는 것은 간단하고만 내 가슴을 주물러서 누르고 쓸어 올리고 오래도 걸렸다. 영상의학과 담당 선생님이 촬영 결과를 보면서

“유방촬영 검사 결과 왼쪽 유방에 국소 비대칭 의심 소견이 있어요. 오른쪽과 다르죠, 살일 수도 있고요. 초음파 꼭 해 보세요.”

처음에는 국소 비대칭 이상한 검은 부위가 걱정되어서 가슴이 철렁했는데, 살일 수 있다는 말에 철렁했던 심각성이 떨어졌다.


  대장내시경과 위내시경 날짜는 일주일 후이다. 내시경 약을 먹는 설명을 아주 친절하게 전해주는데, 채혈 검사 때문에 밥도 굶고 와서 그런지 멍해서 설명이 귀담아 들리지 않는다. 꼭 보호자와 함께 와야 한다는 소리를 여러 차례 듣고 병원문을 나선다. 보호자가 없는데, 남편과는 오래전에 이혼을 해서 수면내시경 한다고 같이 가자고 할 수도 없고, 큰딸은 학교 갈 것이고, 와도 운전 못 하니 소용이 없고, 그 녀석 하고는 헤어져서 부를 수도 없고, 누구랑 가야 할까? 바쁜 친구가 그날 시간이 될까? 참 건강검진받기도 어렵다.

 [정원아 수요일 1시 30분 나 수면내시경 한다고 보호자 데꼬래. 너 그날 시간되남?] 카톡 메시지로 바쁜 친구에게 보냈다. 친구는 간단명료하게 [알았어~시간 낼게]

  수요일 새벽 5시 45분에 눈을 떠서 대장내시경 가루약을 물에 타서 먹기 시작했다. 물의 양이 많지 않아서 힘들지는 않았다. 15분 후 다시 물을 한 병 먹고 또 30분에 물을 마시고, 또 마시고 약을 또 타 먹고 화장실과 난 한 몸이 되었다.

“알약으로 드릴까요? 물과 타 먹는 가루약으로 드릴까요? 알약은 만원 가루약은 삼만 원입니다.” 이만 원이 아까워서 가루약을 가져왔더니 새벽에 일어나서 마시는 게 힘들구나! 아낄 것을 아껴야지.

 화장실에서 변기 속을 확인 나올 게 없어서 이제 노란 물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만하면 됐겠지 생각해도 내 배속은 부글부글 화장실을 계속 찾아서 변기와 내 엉덩이는 한 몸이 되어서 노란 거품 물을 품어 내고 있다.     

 정원이 근심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너 죽겠어! 다이어트 그만 혀.”

병원에 도착해서도 걱정이다. 대장 내시경을 해야 하는데, 아침에 생리가 비치고 있었다. 팬티 다 벗고 똥꼬로 내시경 줄을 넣을 건데, 어떻게 하지! 업무과에서 접수 시 생리가 살짝 온 것을 전달하였더니, 촬영실에 빠르게 전화를 하는 직원이 삽입하는 생리대를 준비해 두겠다고 해서 편안하게 올라갔다.

“본인 확인할게요. 신수경 730510년생 맞습니까?” 간호사는 마취가 완벽하게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촬영 도중에 느낄 수 있지만,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ㅡ"아~ 많이 아픈가요?” 아픈 것은 아니고, 대장 내시경 검사 시 마취가 덜 되어 느낄수 있다는 것과  용종이 있으면 제거하겠다는 서명을 받아갔다. 하나 제거 시 십이만 원에 십오만 원도 한다고 말해주는 간호사 앞에서 ‘겁나게 비싸게도 받네 몇 개 나오면 없는 사람은 어쩐데’ 속으로만 생각했다. 간호사가 건네주는 삽입 생리대를 받아 들고 탈의실에서 속옷까지 다 벗고 위아래 가운 하나씩 입었다. 바지가 애들 기저귀 챌 때 단추로 여닫고 하게 만든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부끄러움으로 얼굴 볼이 볼그레 달아올랐다.


 앞 환자가 촬영 중이라서 한 참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그 녀석 생각이 자꾸 나는 것은 왜 그럴까?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그 녀석은 이런 곳 안 따라올 거야! 혼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두렵기도 하고 내가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앞에 촬영한 환자가 침대에 실려 자는 상태로 나오고 있었다. “신수경 씨 안으로 들어오세요” “침대에 누우세요. 마취약 곧 들어갈 거예요.” 입에 내시경 줄이 들어갈 호수 관을 팍 찔러 넣는다. 간호사의 거친 손길에 살짝 기분이 나쁘고 너무 깊이 넣어서 구역질이 나오려고 하는데, 약 기운이 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아지는 것 같다. 안돼 아직 잠들면 안 돼!  조금만 참아봐 간호사들이 뭘 하는지 더 보라고! 점점 사람의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몸의 모든 세포와 감각이 가라앉고 소리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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