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무거운 돌덩이가 엄습해온다. 찹찹한 요가매트에 누워 심호흡을 내뱉을 때도, 모니터를 마주하고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몰입할 때도 무색무취의 거대한 돌덩이가 갑작스레 마음을 짓누르면 피할 길이 없다.
엄마가 된 후 나에겐 이전에 없던 습관이 생겼다. 평범한 날을 지나다가 불현듯 마음이 개운치 않은 걸 느끼면 골똘히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원인은 항상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어디 감염되거나 성장통을 겪는 모습을 보았을 때, 괜찮겠지-하고 넘겼지만 그 말이 어디 멀리 가지 못하고 돌덩이가 되어 가슴에 지긋이 눌러 앉는 것이다.
첫째가 아직 젖먹이일 때, 두피에 뭐가 자꾸 나고 번지기 시작했다. 동네 소아과부터 대학 병원까지, 여러 의사들을 찾아가 봤지만 신기하게도 모두의 진단이 달랐다. 동네 의사는 추측성 처방을 내려주었고, 대학병원 피부과 의사는 소염제, 항생제, 그리고 스테로이드 플러스 독일산 로숀까지, 하나라도 얻어 걸리라는 식의 처방전을 뽑아 주었다. 그때는 네이버 지식in도 의사도 안아키도 모두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피부는 몇 달간 쉽사리 낫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누구와 통화를 하다가 준우 이름만 말하면 목이 메였다. 엄마라는 여자는 강하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해당 안 되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엄마라는 사람이 아이 걱정 하느라고 질질 울었다. 결국 나는 마주앉아 울 상대가 필요해 낯선 동네에서 교회 유아실을 찾아가기도 했다.....
보통의 날을 별 걱정 없이 지내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과 행복이라는 단어가 짝을 이루는 게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모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특별히 즐거울 거리가 없어도 아이가 안아프고 잘먹고 잘노는 보통의 날이면 특별히 마음이 가볍다는 것을.
예전에 읽은 <부모로 산다는 것> 이라는 책에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부모의 마음엔 닻(anchor)이 걸린다는 내용이 나온다. 자녀가 장성해서 집을 떠난 후에도 부모는 눈 감는 날까지 마음 속에 자식이라는 닻을 걸고 사는 존재라고.
결국, 마음이 완전히 자유한 상태 따위는 이제 기대할 수 없단 뜻이겠지.
애들 눈에 다래끼가 나서 내가 걱정된다 하니 우리 친오빠가 보내준 사진이다. 우리도 어릴 때 다 겪으면서 컸는데 뭘 그리 걱정하냐고. 당시의 우리 엄마 마음을 떠올려본다. 나보다 열 살은 어렸을 우리 엄마는 약도 많이 없던 시절에 혼자서 마음 졸였을테다. 지난 아픔을 훗날 웃으며 추억으로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도 사실 엄청난 축복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