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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이시트콤 Oct 08. 2021

2007년, 남고생의 연애

재고 따지는 것은 몰랐던 그 시절의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의 찌질했던 연애 썰을 좀 풀어볼까 한다. 
미리 경고한다. 손빌이 다 오그라들어 없어질지도 모르니 주의해서 읽기를 바란다.


Part1. 너 나랑 친하게 지낼래?

 고등학교 입학 첫 날은 설렘과 긴장이 반 전체를 감싼다. 각기 다른 중학교에서 올라와서 서로에게 얕보이지 않기 위해 날이 서있으며, 같이 다닐 친구들을 물색하기 바쁘다. 나 역시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난 약하지 않다. 얕보지 마라’ 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며, 반을 스캔하고 있었다. 반을 돌아보던 중 그 친구를 보고 센 척 하던 내 표정이 한 순간 풀리고 말았다. 핀으로 양쪽 앞 머리를 쓸어넘겼고, 무쌍이지만 큰 눈, 오똑한 코, 톡 튀어 나온 앞니가 토끼를 연상시키는 친구였다. 첫 눈에 반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꽤 인상적이었다. 입학 첫 날임에도 친구들에게 둘러쌓여 떠들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다. 석식을 먹고 친구와 담을 넘어 매점에 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스타벅스 모카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 당시 내가 먹는 가장 비싼 음료는 포카리스웨트 정도였다) 야자가 시작하기 전 무작정 그 친구 옆자리에 앉아 스타벅스 모카를 건내며 말했다. 

“너랑 친하기 지내고 싶어.” 

지금 돌아보면 어떤 배짱이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당시에는 앞뒤 재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다. 


Part2. 연적

 그 날 이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대쉬는 하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그 친구에게 장난을 걸었다. 장난을 잘 지어냈고, 내가 하는 장난을 친구들이 따라하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야 잠깐 일로 와봐”

“아 또 왜!”

“자, 이 것 봐바?”

주먹을 그 친구 눈 앞에 보여주고,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인다. 그 친구는 못미더운 표정으로 내 주먹을 본다.

“하나~둘~셋?”

검지와 중지, 약지 세 개의 손가락이 펴지며 아디다스 로고의 모양이 된다. 그 친구는 내 손을 유심히 쳐다본다. 그 때,

“아디다스”

그 친구의 얼굴을 세 손가락으로 쓸어내리고 도망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 친구는 복수를 하겠다고 쫄래쫄래 쫓아온다. ‘아 저게 뭐야 ㅡㅡ'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식으로 장난을 쳤었다. 청춘이랄까? 수 많은 장난들을 치면서 그 친구와 나는 쉬는 시간에 붙어서 노는 사이가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매점에 갔다가 반에 들어오는데 한 남자애가 내가 하던 아디다스 장난을 그녀에게 똑같이 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날, 태어나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질투라는 감정을 처음 느껴본 것 같다. 마음에서 불이 끓어 오르고, 시선처리와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약간의 어지러움증과 함께 머릿속이 혼미해지면서 이성이 흐려졌다. 더군다나, 그 남자애는 중학교에서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한 친한 친구였다. 이내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고, 자리에 앉았다. 수업은 시작되었지만 질투에 사로잡힌 내게 수업 따위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남자애 쪽을 슬쩍 보고 다시 마음에 불이 끓어 올랐다. 그 자식이 나의 그녀가 있는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확신이 들었다.


‘저 자식, 경쟁자다’


이제부터 그 자식은 내 친구가 아닌 ‘연적’이었다. 본격적으로 사랑 경쟁이 시작되었다. 그 자식과 나는 함께 하교하고, 함께 노는 친구였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미묘한 경쟁의 기류가 흘렀다. 내가 없는 틈에는 그 자식이 그녀의 옆에 딱 붙어 있었고, 그 자식이 없는 틈에는 내가 그녀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그녀 옆에 그 자식이 끈질기게 붙어 있는 날은 하루종일 어떤 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 자식과 PC방에서 함께 게임을 하면서 그 녀석이 문자를 확인하면 그녀가 아닐까 마음이 초조했고, 그녀와 내가 문자를 하는 동안 그 녀석의 휴대폰이 울리지 않으면 승리감에 도취되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녀 옆을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짝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3개월 가까이 지속되었던 그 사랑 경쟁에서 나는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내가 그녀와 문자를 하는 동안 그 자식의 휴대폰은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고, 장난을 치러 다가오는 그 자식을 피해 그녀는 내 옆으로 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못됐지만.. 질투심에 잿빛이 된 얼굴로 나와 그녀가 앉아있는 자리를 쳐다보는 그 자식을 보면서 난 사랑의 경쟁에서 당당히 승리했다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반은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사람들에 한해서 가평으로 엠티를 떠났다. 정말 뜨거운 여름이었지만 우리의 젊음은 그보다 더 뜨거웠다. 술 없이도 우리는 지칠줄 모르는 비글처럼 신나게 놀았다. 이내 밤이 깊었고, 오전에 기획해 둔 담력훈련이 시작되었다. 남자2, 여자2 무리를 지어서 숲에 숨겨둔 쪽지를 찾아 미션을 수행하면 되었다. 첫 조로 출발한 나는 그녀와 같은 조가 되지도 못했고, 영 무섭지도 않아 시큰둥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를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내게 장난기운이 슬슬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몰카할래?”

“아 무서워죽겠는데 무슨 몰카야!”

“그냥 종이 찾아오는게 뭐가 무서워. 오히려 우리가 애들 무섭게 하자”

“어떻게 할건데?”

“일단 민지 니가 애들한테 나랑 영돈이가 갑자기 없어졌다고 그래. 너무 무서워서 못 움직이겠다고. 그런 다음에 영돈이가 전화해서 칙지직 소리내면서 어떤 사람들한테 상우랑 끌려오다가 나만 도망나왔는데 어딘지 모르겠다고 살려달라고 그래”

무섭다고 징징대던 애들은 이미 친구들한테 장난 칠 생각에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연기력을 테스트한 후 숙소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흑…흑.. 같이 미션 종이 찾으러 가고 있었는데..흑.. 갑자기 이상한 소리나면서 상우랑 영돈이가 없어졌어.. 흑.. 지금 여기 어딘지도 모르겠고 너무 무서워..흑..”

처음에 장난이라고 생각하던 친구들은 민지의 열연에 속아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내 전화를 끊고, 영돈이의 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치..지..치칙 보세요? 칙… 상우랑 칙.. 잡혔는데 나만 도망나왔어”

전화를 끊은 우리는 펜션이 보이는 고지대로 가서 상황을 살폈다. 아이들은 펜션 밖으로 나와 어찌할바를 몰라 우왕자왕대고 있었다. 신고를 해야한다, 장난인 것 같다, 일단 다같이 이 앞까지만 올라가보자 토론이 이어졌다. 다행히 신고는 차치해두고, 남자애들이 무리를 지어서 후레시를 들고 우리 쪽을 향해서 다가왔다. 숨어있던 우리는 왁!!! 하며 친구들을 놀래켰고, 애들은 놀라 나자빠지는 모습에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장난을 끝마치고 숙소로 내려와 친구들에게 몰카였다고 얘기해주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화가 잔뜩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화났어? 생각보다 담력테스트가 시시해서 장난친건데..”

“이런 장난 왜 치는데?”

“왜 화내~ 미안해~”

그녀는 내 한 쪽 팔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이런 장난치지마..훌쩍. 장난도 정도가 있지.”

그녀의 눈물에 나는 벙쪘다. 의도치 않았지만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확인한 것에 대한 기쁨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녀를 달래기 위해 펜션 밖으로 나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많이 걱정됐어?”

“아닌데? 하나도 걱정 안됐는데?”

“근데 왜 울었어?”

“아 몰라. 물어보지마”

토라져서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걷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때마침, 시원한 여름 바람이 불어왔고, 수영 후에 샤워를 했던 그녀 머리에서 나는 샴푸 향기가 내 코를 간지럽혔다. 학교에서 느꼈던 것에 백배에 가까운 설렘이었다. 산책을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손등이 스쳤다. 손을 잡고 싶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고 있던 찰나, 서로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스치던 손을 마주잡았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8월 7일, 길었던 썸을 끝내고 1일이 되었다.


Part3. 촛불 이벤트

17살의 남고생에게 100일은 굉장히 큰 이벤트이다. 중학교 때까지 썸과 짝사랑에만 그쳤기 때문에 내게는 첫 100일이었다. 100일 한 달 전부터 치밀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우선 네이버에 ‘여자친구 100일 이벤트’ 를 검색했다. 촛불이벤트 후기가 꽤 많았는데, 촛불이벤트에 대한 후기는 반반이었다. 막상 받으니 엄청 좋았다 vs 좀 창피하더라는 두 갈래의 의견이 팽팽했다. 많은 고민을 했지만, 중학생 때부터 ‘여자친구에게 기념일에 촛불 이벤트는 꼭 한 번 해야겠다’라고 생각해왔던터라 촛불 이벤트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한 달 전부터 그녀에게 이벤트를 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에게 줄 반지를 사기 위해 매일 아침 아버지 구두를 닦아 5000원씩 용돈을 모았고, 이벤트 시나리오를 짜기 시작했다. 
 
 1. 장소섭외: 아무도 오지 않는 공원. 촛불이 잘 보일 수 있도록 가능하면 주변에 불빛이 없는 곳
 2. 친구섭외: 섬세하게 촛불을 세팅해줄 미적 감각이 있는 친구 2명 정도
 3. 반지: OST에서 가장 심플하고 예쁜 커플링
 4. 스피커와 MR: 촛불 가운데에서 그녀에게 노래 불러주기.
 5. 남산에 가서 같이 데이트를 하다가 남산 돈까스를 먹는다. 명동을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좀 더 같이 있고 싶으니 우리 집 쪽으로 갔다가 너네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얘기를 한다. 명동에서 출발 할 때,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촛불을 세팅시킨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고, 데이트 또한 아주 스무스했다. 명동에서 집으로 가는 길, 친구들에게 준비 신호 또한 완벽하게 전달되었다. 동네에 도착해 이벤트 장소로 가는 도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상우야 x됐어. 바람이 너무 세서 촛불이 다 꺼져!”

“아 씨 뭔 개소리야. 10분만 걸어가면 되는데. 시간 좀 끌 테니까 어떻게든 해봐. 그냥 양초만 있는데서 이벤트를 할 수는 없잖아. 야 들키겠다. 어떻게든 해봐 진짜. 진짜 너네만 믿는다. 끊는다.”


한 달간 공을 들여서 준비한 이벤트인데.. 이벤트가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르는 그녀를 데리고 동네를 몇 바퀴 산책한 후에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제발.. 제발.. X새끼들아 제발..’

이벤트 장소에 도착한 나는 그녀보다 먼저 눈물을 쏟을뻔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공원에 영롱하게 불타오르는 촛불길이 펼쳐져 있었고, 그 길을 따라가니 두 사람이 서있을 수 있는 커다란 하트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반짝거리는 불빛들을 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진다. 촛불 이벤트가 감동이 없다고 한 사람들은 촛불 이벤트를 제대로 안 받아 본 사람들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반으로 자른 종이컵으로 촛불을 감싸서 불이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해둔 내 기특한 친구들 덕분에 이벤트의 시작은 순조로웠다. 준비해둔 스피커에 mp3를 연결하고, 노래를 틀었다. 노래는 포맨의 고백. 혼자 부르기는 매우 벅차지만 100일 이벤트를 위해 수백번은 넘게 연습한 노래..

‘사실은 불안했었어. 네가 떠날까봐. 내 맘은 불안했었어.. 난 네게 부족하지만 참 많이 부족하지만 세상을 다 뒤져도 나 같은 없다는걸 아니..’

이미 여자친구는 나를 보며, 엉엉 울고 있었다. 4분이 넘는 긴 노래였지만, 여자친구는 내 눈을 맞추고, 노래를 모두 들어주었다. 이벤트가 성공적이었다는 성취감과 행복해하는 여자친구를 보며 뿌듯함이 벅차올랐다. 노래를 모두 마치고, 준비했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여자친구는 눈물 젖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정적이 흘렀다. 적막한 공원이 더 조용하게 느껴졌고, 촛불들이 내뿜는 빛은 더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여자친구와 나만 남겨져있는 기분. 눈 안에 그 친구를 담고 있느라 눈을 깜빡이는 것 조차 아깝게 느껴지는 시간. ‘다가가도 될까? 싫어하면 어떡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순간 누가 다가갔는지 알아챌 수 없는 사이 우리는 입을 맞추었다. 내 인생의 첫 키스였다.


Part4. 노래방 이벤트

이건 정말 나도 쓰기 힘든 이야기다. 후우.. 하지만 솔직하게 다 적어나가기로 했기에 적어본다.

여자친구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노력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다. 힘을 내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연예인이 되어~항상 즐겁게 해줄게요~연기와 노래 코메디까지 다 해줄게~”

머리에 불이 반짝 들어왔다. 그녀의 연예인이 되면 되겠다! 평소 여자친구도, 나도 노래부루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통화 중에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노래방에 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콘서트를 노래방에서 열어주기로 했다. 그 때부터 노래방에서의 콘서트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1. 장소: 수내역에서 가장 좋은 수노래방
2. 일시: 여자친구 공부를 잠깐 쉬는 주말 (성당 끝나고 나서)

3. 노래는 발라드부터 댄스곡까지 다양하게 준비해서 제대로 재롱을 부려보자. 

단, 댄스곡은 너무 과하지 않은 선에서 출 수 있는 것으로.
 - 발라드: 김동률 ‘아이처럼’
 - 랩: (기억이 잘 안난다)
 - 댄스: 싸이 ‘연예인’


매일 야자를 쨰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고, 집에 가서 거울을 보고 안무를 연습했다. 엄마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야밤에 뭐하는 짓이야!” 라고 소리를 지르면, 머쓱해서 “아 스트레스 푸는거야. 문 닫아요” 라고 둘러대며 연습을 이어갔다. 대망의 이벤트 날, 여자친구를 자연스럽게 수내역에서 가장 좋은 노래방이었던 수노래방으로 데려갔다. 여자친구가 노래방 책을 뒤지는 사이 마이크를 집어들고, 혼자 꽁트를 찍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온 누구시죠?”

“아 하하.. 분당에서 온 김XX이라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노래방 책에서 머리를 떼고,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오~김XX씨! 무대에는 어떤 일로 올라오셨죠?”

“아 하하.. 여자친구가 요즘 이런 저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서요.. 뭐라도 좀 재밌게 해줄 수 없을까 해서 올라왔습니다.”

“오호~ 여자친구 분 생각하시는 마음이 끔찍하네요. 혹시 여기 여자친구분 계신가요? 계시면 손 한 번 흔들어주세요”


여자친구는 깔깔대며 코 앞에 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늘 3곡 정도 준비했는데요.. 댄스곡도 하나 있어요.. 졸라 못추긴 할테지만 보고 여자친구가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준비했던 김동률의 아이처럼을 시작으로 어색한 몸짓으로 춤사위와 함께 싸이의 연예인까지 모두 불렀다. 헥헥대며 옆에 앉자 여자친구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런 건 언제 준비했대?”

“요즘 머리 아파하길래 재밌게 해줄 수 없을까 해서 그냥 해봤어”

“고마워. 다 풀렸어. 진짜 실컷 웃었어”

“그랬음 됐어. 스트레스 받는 것 있으면 좀 나한테 얘기도 하고 그래. 그러라고 나 있는 거니까”


환하게 웃는 여자친구의 얼굴이면 되었다. 그 것만으로도 좋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조차도 오그라들고, 누군가는 ‘어우, 질색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내가 사랑을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다른 이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으며, 서로에게 재고 따질 것이 없었고, 마음을 표현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러 조건으로 사랑에 제약이 생기고, 다른 이들의 시선에 둘 만의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내가 사랑을 쏟는만큼 상대가 사랑을 주지 않으면 섭섭해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우리는 더 이상 어리지 않기 떄문에 당연한 섭리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는 내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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