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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이시트콤 Oct 08. 2021

거지의 연애

t머니로 모텔비를 내던 가난한 연애란..

  아마 이 이야기는 내 인생의 가장 큰 흑역사일 것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대로 살았던 짐승 같던 시절의 이야기.


  21살,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용돈을 끊으셨다. 학교에 갈 차비 10만원만을 지원을 받았다. 그러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알바라도 뛰어서 용돈벌이 해야지’

 하지만 난 일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끓어오르는 대학생에게는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과 술도 먹어야 하고, 클럽도 가야하고, 헌팅도 해야 하고, 미팅도 해야 하고, 여자친구도 만나야 하고, 당구도 쳐야 하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알바를 하라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난 알바를 하는 대신에 생존을 건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밥 내기 당구, 술 내기 당구, 담배 내기 당구 등등. 지면 내 인생은 끝난다는 생각으로 당구를 쳤고, 그렇게 우리 과 당구 최강자가 되었다. 모든 숙식과 용돈을 당구로 딴 돈으로 해결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하나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여자친구.. 여자친구와 데이트비 당구 내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21살 만났던 그 친구와는 정말 가난한 연애를 했었다. 그 친구가 대학교에 입학할 당시, 아버지께서 실컷 써보라고 500만원을 주셨는데, 아마 그 돈을 다 나한테 썼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날 만나줬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친구와 있었던 몇 가지 처절한 에피소드를 소개해고자 한다. 벌써 여러분이 몸서리 치고 있을 것이 눈에 선하다.


  그 친구는 음주가무를 좋아했는데, 특히 춤을 정말 잘 췄다. 엠티 같은 곳에서 술자리 후에 댄스 파티가 열리면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친구였다. 그녀가 춤을 추기 시작하면 주변에 남자들이 드글댔다. 썸을 타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함께 클럽에 가자고 했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썸녀가 클럽에 단 둘이 가자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우선 OK를 외치고, 클럽 앞까지 갔지만 내게는 돈이 없었다. 자기가 내겠다고 하는 그녀를 데리고 편의점에 가서 당당하게 T머니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에 있는 돈  2000원 빼고 다 빼주세요.”


집에 돌아갈 차비만 빼고, 집에서 유일하게 지원받는 교통비를 싹 다 털어서 그녀와 내 클럽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교통비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다니다가, 그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영화 볼 돈 따위는 없었다. 그 때 마침 학식 앞에 한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맞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트럭. 헌혈트럭이었다. 아주 신사적으로 그 친구에게 물었다.


“우리 봉사활동도 안 하는데 헌혈 하는 거 어때?”
 “꼭 해야 되나”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알았다. 하자.”


그렇게 우리는 헌혈을 했고, 영화표 두 장을 받아서 메가박스로 영화를 보러 갔다. 이 에피소드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아직까지 여자친구랑 피 팔고 영화 봤다고 나를 놀린다. 


하루는 여자친구가 우리 동네로 놀러 와서 술을 함께 마셨다. 술값은 여자친구가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 흥에 겨워 데낄라를 들이 부었고, 여자친구가 많이 취했다. 아마 친구는 내가 택시를 타고 집에 데려다 주거나, 모텔에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게는 그럴 돈이 없었다. 난 취한 와중에 여자친구를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 집으로 향했다. 여자친구를 우리 집 앞 계단에 앉혀 놓고, 집 안으로 살금살금 들어가서 부모님 방에 있는 찜질방 쿠폰 2개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선 여자친구를 데리고, 동네 찜질방으로 갔다. 다음 날 아침 그녀가 깨기 전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께 사정을 말하고, 15,000원을 받아서 갈비탕으로 해장을 시키고 집에 보냈다.


 하루는 점심 저녁을 다 거르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학식에서 1,000원짜리 튀김을 사먹었다. 김말이와 고구마 튀김에 떡볶이 국물을 적신 메뉴인데, 가격 대비 양이 훌륭했다. 혼자서 그 훌륭한 튀김을 먹고 있는데 어찌 알았는지 여자친구는 조용히 2,000원짜리 김밥을 한 줄 가져다 놓고 떠났다. 부끄러움 따위 생각하지 않고 살던 내가 처음으로 비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참.. 그럼에도 난 알바 할 생각을 안 했다. 대체 넌 나를 왜 사귀었니?


이건 정말 가장 떠올리기 괴로운 이야기인데, 여자친구도 아버지가 주신 돈을 거의 다 써서 서로가 가난하던 때였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나오니 이미 차가 끊겨있었다. 그녀의 주머니에는 2만원이 있었고, 내 주머니에는 1만원이 있었다. 둘이 합쳐 3만원. 모텔 값 7만원에는 절반도 못 미치는 가격. 여자친구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 손을 잡고 모텔에 들어갔다.


"아저씨, 저희가 3만원 밖에 없는데요, 혹시 할인 되나요?”

듣도 보도 못한 모텔 가격 흥정에 아저씨도 벙찐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모텔 값을 할인해달라고요..? 1만원, 2만원도 아니고 절반 넘게..?”

한참을 생각하던 아저씨는 

“그 쪽들이 들어왔다는 것 사장님이 알면 안되니깐, 들어가서 불 키지 마요. 물은 써도 되는데, 불이 켜지면 입실했다는 것이 기록되니깐 불만 켜지 말고 쉬었다 가요.”

방에 들어가면서 “됐다!” 하면서 해맑게 웃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지금 20살 제일 예쁠 나이의 이 친구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가장 씁쓸했던 장면 중 하나이다.


  100일 날만큼은 제대로 된 선물을 하고 싶어서 군대에 간 제일 친한 친구에게 10만원을 빌렸다. 여자친구는 절대 100일 선물을 서로 하지 말자고 했지만, 꼭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며칠 간 백화점을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해주고 선물들을 사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데이트 날 쓸 비용까지 고려하면, 살 수 있는 선물이 없었다. 병신같은 이십일세는 결국 선물하지 말자는 여자친구의 말대로 아무 것도 사지 않고, 100일 데이트에 나섰다. 저 멀리서 정말 예쁘게 차려 입은 여자친구가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라코스테 헌팅 캡이 들려있다.

“니 전에 XX꺼 헌팅캡 빌려 썼을 때, 진짜 잘 어울리더라. 그래서 하나 사주고 싶었다. 한 번 써봐”

그 자리에서 땅으로 꺼져서 사라지고 싶었다. 자기합리화 끝에 정성들인 편지 한 장 써올 생각도 못한 내 뇌를 녹여버리고 싶었다. 미안함에 주저리 주저리 변명만 늘어놓는 내 입을 바늘로 꿰매고 싶었다. 괜찮다고, 내가 선물하고 싶어서 선물한 거라고, 내가 선물하지 말자고 했는데 말 안 들었으면 더 화냈을 거라고 말하는 여자친구의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참 지지리도 못났던 시절이다. 눈 앞에 있는 재미와 쾌락을 뒤쫓기 바빠, 정말 소중한 것들은 챙기지 못했던 시절. 내 게으름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며, 용돈을 안 주는 부모님을 탓하기 바빴던 시절.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거의 반쯤 정신을 잃고 살았던 것 같다. 술에 취해 집을 가던 중 담배를 피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아, 돈 없어서 그저께부터 담배 못 샀지.’ 담배가 다시 고파지기 시작하니, 취한 정신이 더 아득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토가 쏠렸다. 숙취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이 너무 역겨워서 토가 나왔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난 과외를 시작했다. 시급 4.500원이던 시절, 시급 10,000원을 받으며 쏠쏠하게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그럴 수록 마음의 구멍은 더 커졌고, 더 큰 바람이 흘렀다. 돈이 있건 말건, 이미 그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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