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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이시트콤 Nov 10. 2019

Fucking 'Don't worry'

인도배낭여행 중 가장 듣기 싫었던 바로 그 말. 

  술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떡진 머리로 강의에 기어 들어가 잠을 잔다. 강의가 끝나면 친구들이 모여있는 당구장에 간다. 저녁 여덟시가 되면 친구 기숙사에 들어가 씻고 단장을 한다. 시내로 나가 술을 마시고 클럽에 간다. 

첫차를 타고 학교로 간다.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떡진 머리로 강의에 간신히 들어가 잠을 잔다. 당구를 친다. 술을 먹는다. 클럽에 간다. 그러다 보니 내 대학교 1학년이 끝이 났다. 입대를 기다리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내 인생 풍비박산이 나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정말 느닷없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배낭여행' 이었다. 뭔가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하고 싶은 일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다. 기왕 가는거 아주 열악한 곳에 가서 개고생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시아 배낭여행의 끝판왕이라는 인도를 골랐다. 혼자가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같이 갈 친구를 구하고, 찍고 올 도시 정도만 고른채 40일간 인도로 떠났다.


1. 순탄치 않은 시작


  밤 12시 쯤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더운 날씨와 흙먼지에 숨이 막힌다. 퀘퀘한 쥐오줌 냄새가 사방에 깔려있다. 택시에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고 창문이 없다. 어떻게 수도의 택시가 이렇게 열악할 수 있는지에 불만스러워하던 중 택시가 신호 앞에 멈췄다. 주변으로 인도인 몇 명이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택시 창문으로 손을 넣어 우리 가방을 움켜쥐었다. 우리는 가방을 감싸 안고 'Go! Go!' 를 연신 외쳤다. 택시기사는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별 관심이 없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우리와 가방을 가지고 실갱이를 하던 인도인들은 돌아서 유유히 사라진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건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재빨리 와서 가지고 도망간 것도 아니고, 이렇게 당당하게 걸어와서 강탈을 하려다가 저렇게 당당히 뒤돌아간다고? 숙소에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 인도인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는 아주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Welcome to India' 


난 아직도 그 표정을 잊지 못한다. 


2. Fucking Don't worry


인도에 있으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 'Don't worry'


  1) 음식점에 갔다. 손님이라고는 우리 둘 밖에 없다. 40분째 음식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저 사장님은 요리를 하지 않고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일까? 주방에는 요리사가 없는데 말이다.

그에게 묻는다. "Do you remember that I ordered food..?"

그는 대답한다. "Don't worry"


응..? 뭘..?


  2) 길거리에 있는 노상에서 담배와 미네랄 워터를 구매하고 돈을 지불하였다. 6000원어치를 사고 10000원을 낸 꼴이었는데 거스름 돈을 주지 않았다. 그에게 거스름돈을 요구했더니 그가 말한다.


"Don't worry"


대체 왜..


  3) 인도는 대게 도시에서 도시까지 이동할 때 적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12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우리는 기차의 여러 칸 중 3층 침대가 있는 칸을 이용했다. 낮에는 1층에서 3명이 앉아가다가, 밤에는 그 위로 2개의 침대를 꺼내어 3층 침대로 이용하는 식이다. 그 칸을 이용하면 정말 기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밤이 되어 3층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내려오면 1층에 내 자리가 없다. 3명이 앉아 갈 수 있는 자리에 7명 정도의 인도인들이 앉아있다.


그들에게 말한다 "Excuse me, This is my seat"

아이를 앉고 있는 부녀자들은 인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왜 사람 좋은 미소를 너네가 짓는건데'

옆에 있는 남편 같아 보이는 남성이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Don't worry"

이 것은 걱정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그냥 애초 내 자린데..


  4) 숙소까지 15분 정도되는 거리지만 푹푹찌는 날씨에 걸을 자신이 없어 사이클릭샤를 탔다.(사이클 릭샤란 자전거로 사람을 태워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목적지를 말하자 아저씨께서 아주 자신감있는 미소로 OK를 외치신다. 20분이 지났다. 난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디냐고 물어본 순간 아저씨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의 당황한 표정을 돌아보시더니 환하게 웃으며 "Don't worry"라고 말씀하신다. 30분쯤 갔을까 아저씨가 자전거를 멈추신다. 여전히 난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나에게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시더니 갑자기 가정집으로 들어가신다. 돌아나오신 아저씨의 옷이 바뀌어있다. 아저씨 집이었나보다.

화를 간신히 참아내고 있는데 한마디를 하신다. "Don't worry" 

"Don't worry"를 말하는 저 아저씨의 입을 틀어막고싶다.


제발 나의 걱정을 그들이 생각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걱정은 내가 할테니, 그냥 각자가 맡은 롤에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


3. 무제 사프네 파산데헤


  어렸을 때부터 타투를 동경했다. 20살이 넘어 꼭 하고 싶었지만 나이가 들어 후회할 것이 두려워 염두를 못냈다. 인도는 헤나타투로 유명하다. 마침 우다이뿌르에서 머무른 숙소의 사장님이 헤나타투도 겸해서 하고 있었고,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싶어 시도를 했다. 목표를 찾아 인도에 온 것을 되새기고자 내 결심을 힌두어로  새겨달라고 했다.


'Im looking for my dream' 


모양새도 꽤나 멋졌다. 헤나를 해준 아저씨께서 씩 웃으며 읽는 법을 알려주셨다. '무제 사프네 파산데헤"

처음 해본 타투가 마음에 들어 의기양양하게 들고 다녔다. 보는 사람마다 내 타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내 의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 뿌듯했다. 2주 정도가 지나 타투가 흐릿해질 때 쯤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내게 물었다. 


"이게 정말 당신의 꿈이야?" 

"응, 나는 꿈을 찾기 위해 인도에 왔거든" 

"오, 인도 여자를 만나는 꿈이 있어?"


'뭐야 여기 이상한 것 하는 게스트하우스인가?' 내가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무제 사프네 파산데헤, 나는 예쁜 인도 여자를 만나는 꿈을 꾼다라는 뜻이야"


믿을 수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웃으며 내 타투를 물을 때마다 난 꿈을 찾으러 이곳에 왔다고 말을 했는데. 

게스트 하우스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었다. 


"이거 무슨 뜻이야?"

"나는 예쁜 인도 여자를 만나는 꿈을 꾼다라는 뜻인데?"


당장이라도 타투를 해준 사장을 찾아가서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와있었다.

그날 밤 바디워시를 사가지고 들어가 열심히 손톱으로 긁었다. 해나는 그렇게 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인도에 갔다온지 8년이 되었는데 내 머릿속에 남아잇는 힌두어는 하나다. 


무제 사프네 파산데헤


4. 바라나시. 머리를 비운다는 것


  바라나시는 겐지스강이 흐르는 곳인데, 마음의 평화를 얻고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미 인도에 질려버려 감흥을 잃은지 오래였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바라나시에서는 꿈을 찾겠다는 생각도, 유명한 곳을 둘러보겠다는 생각도 모두 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눈이 떠지면 강으로 나간다. 따뜻한 짜이를 한 잔 사서 강 앞에 앉아서 해가 뜨는 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일출과 함께 환한 빛으로 물드는 겐지스강의 모습은 굉장히 몽환적이다


강가에서 담요를 깔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사람들

요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 

그 옆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소

여기저기 배를 깔고 누워있는 들개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조합들이 한 눈에 펼쳐진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 해야될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들이 겐지스강 안에서는 조화롭다.

가만히 그 것들을 눈에 담고 있으면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오후 시간에는 시장거리에 있는 잼배 선생님을 찾아가 잼배를 배우고,

젊은 인도 친구들과 어울려 나무 양 쪽에 짱돌을 달아놓은 바를 가지고 운동을 한다.

해가 질 때 쯤 잼베와 기타를 지고 선재씨네 나룻배에 탄다.

태양이 형은 기타를 치고 난 잼베를 친며 노래를 부른다.

밤이 되면 진을 한 병 사가지고 겐지스강으로 나간다.

술을 마시며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인도의 젊은 친구들과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게 바라나시의 나의 2주일 전부이다.


'머리를 비운다' 라는 말을 처음으로 느껴봤다. 

40도를 넘나드는 더위, 작은 선풍기가 다인 게스트하우스, 궁핍함,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모든 것이 너무 열악했으나 내 생에 가장 편안한 2주일이었다


인도인들이 말하는 'Don't worry'의 뜻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듯 했다. 

모든 일에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성과가 있어야 하고, 발전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조금은 버리고

조금은 Don't worry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기 전에 목표했던 대로 꿈을 찾았는가? 아니다

고생 끝에 성숙했는가? 모르겠다

인생을 바꿀 경험을 했는가? 그 것도 모르겠다


미칠듯한 더위에도, 극심한 물갈이에도, 광견병 걸린 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소똥이 거리에 낭자한 곳에서,

입에 맞는 음식 하나 없던 곳에서, 3km를 10km 돌아 가는 택시가 있는 곳에서

유쾌한 경험보다 불쾌한 경험이 수십배 많았던 그 곳에서 나는 가장 평안했다.


종종 나는 불쾌한 편안함을 가진 인도가 그립다.

그 곳에 가서 좋은 마음, 나쁜 마음, 이상한 마음 보따리채 내려놓고 방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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