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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생각 Dec 01. 2021

흰머리로 살아가기 8

단발좌


잎사귀도 몇 개 없는 나무들이 심한 바람을 견디느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힘겨워 보인다. 겨울 추위와 비 그리고 바람, 스산하기 짝이 없는 짝꿍들이다. 여기에 머리카락까지 휑하게 비어 가는 두피에 체감온도는 거짓 없이 1도 2도 더 차갑게 느껴진다. 2년 전 오늘이 그랬다.


생리가 마감되었어도 생리를 했던 시절처럼 그 날짜가 오면 느껴지는 증후군은 그래도 남아있다.  똑같이 감정이 내려앉고, 매콤한 음식이 당기며, 달콤한 믹스커피가 좋고, 드라마 주인공의 슬픈 대사를 곱씹는다. 되돌릴 수 없게 빠져버린 머리카락까지 힘을 보태어 힘들게 살아온 징표 같아서 스스로 유난히 꼴 보기 싫은 날이 그날이다.  2년 전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던 때 감정이다.


어쩜 이렇게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자존감을 낮게 만드는지 빠지고서 알았다. 마음의 요동은 얼굴에 기미가 있었던 시절만큼 요란스럽다. 표면적으로는 차분한 척하면서 열심히 비어 가는 머리카락 공간을 염색약으로 가리기 급급했다. 이것 역시 2년 전 모습이다.


흰 머리카락으로 살아가기가 만 2년 되었다. 여전히 흰 머리카락도 검은 머리카락처럼 눈에 딱딱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방바닥 구석구석 흰 머리카락이 많다. 하루에 빠질 만큼만 빠지는지 탈모를 느낄 만큼은 아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앞머리 부분은 다행히 메꾸어졌다. 다른 부분보다 앞머리 부분이 더 빠져서 차라리 보이지 않는 뒤 머리카락이 빠졌다면 이처럼 염색을 단절하지는 않았겠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잘 보이지 않는 정수리 부분이 빠져가는 큰 언니는 덜 스트레스받는지 꾸준히 염색을 한다. 아들과 딸도 유전인자가 닮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앞머리 부분이 뜨끈해지고, 그 부분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한다.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태산이었을 거다. 자신들도 엄마처럼 될 거라 겁도 나고 말이다.


생머리에 흰 머리카락은 검은 머리카락보다 끝부분이 날이 선 것처럼 보이고 날카롭다. 파마를 해서 헤어롤을 말아보니 부분적으로 누렇게 색깔이 변색되었다.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보다 약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용실 주인장들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마치 맥주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가장 취약한 귀 옆 겉 머리 몇 가락이 누렇게 변해버려 잘라내야 없어질 것 같았다. 굽실굽실 헤어롤을 마는 것은 괜찮은데 파마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미장원 주인장과 머리카락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귀찮고 편치 않다. 그래서 결정했다.


중학생처럼 똑 단발은 우스꽝스럽다는 시내 미용실 주인장의 숨어 있는 마음 표현에   주인장이 권하는 보브 스타일로 잘랐다. 결과는 파마기가 없으니  흰 머리카락은 더 길어 보이고 많이 보여서 예쁘지도 않았다. 더 짧게 잘라야 했다. 취향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보브 스타일로 짧아진 위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한 달을 기다려 다른 미용실에서 귀밑 2센티 정도 단발로 잘랐다. 젊어서 해왔던 스타일이라 손질하기도 편하고 깔끔했다. 그리고 20일 지나서 귀밑으로 한 번 더 잘랐다.


흰 머리카락의 단발 할머니. 불현듯 안 어울릴 것 같은 불안함이 존재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살아본다. 얼굴 크기가 커 보이고, 할아버지 얼굴도 보이니 땡그란 은갈치 색 귀걸이를 꽂는다.



2021년 12월 01일 수요일. 한껏 드러난 목덜미가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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