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에 대한 완벽한 성취감
아침부터 잔소리를 듣는다. 우리 엄마도 나한테 그렇게까지 집요하게는 말씀 안 하시는데.
아침 7시 45분, 잠과의 사투를 이겨내고 겨우 집 밖으로 나왔다. 현대판 '우리 어른이 달라졌어요'랄까.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해봤던 때도 작심삼일이었다. 더군다나 운동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라 조깅에 대한 열정과 의지도 사실 없다.
그런 내가, 오늘 아침부터 뜬금없이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곧 백수생활 1년 차에 접어드는 요즘, 누구나 그렇듯이 밤만 되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밤낮이 바뀐지는 이미 오래다. 하루 중 하는 일이라곤 마지못해 아침 겸 점심 챙겨 먹기, SNS로 남들 사는 거 구경하기, 침대에서 유튜브 보면서 빈둥거리기, 생각 없이 두세 시간 컴퓨터 게임하기, 잠들기 전 내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가 전부다. 다른 의미로 참 규칙적이다. 그나마 잘 쓰던 다이어리도 하소연 기록장이 된 지 오래다.
나라고 노력을 아예 안 해본 것은 아니다. '변화'는 지금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자격증 공부 계획도 세우고 해 봤지만 정말 딱, 3일까지 였다. (나흘도 아니고 닷새도 아닌 어떻게 사흘을 콕 집어서 인간의 미루는 습관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사자성어로 표현했는지, 정말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렇게 스스로 세운 목표를 지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갈 때마다 '학습된 무기력'은 나를 서서히 갉아먹었다.
하루하루 목표를 세우고 지키기가 어려운 것은 결국 목표가 잘못된 것이다. 실현 가능한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단기 목표를 실행하기 위한 일일 계획을 세워라.
과거에 대한 포기 없이 변화를 꿈꾸는가? 많이 포기하는 만큼, 더 포기하는 만큼 우리는 더 많이 얻을 수 있고 더 크게 변할 수 있다.
어제도 어김없이 늦은 새벽 유튜브를 보는 중이었다. 장르 구분 없는, 하염없는 시청시간을 통해 유튜브도 내 무기력을 알아차렸는지 한 편의 동기부여 영상을 추천해줬다. 그중 내 심장을 콕 찌른 장면이 몇 개 있었다. 9분짜리 영상 한편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왼쪽 가슴에 손을 대봤을 땐, 분명히 평소보다 크게 뛰고 있었다.
하루 10시간 분량의 공부 계획표를 나름 잘 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나의 머리가 소화하기엔 벅찬 양이 었나 보다. 왜 작심삼일일 수밖에 없었는지 나 자신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과'는 어떻게든 눈으로 빨리 보고 싶어 하면서 '과정'은 항상 견디기 어려워하는 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낮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아나가는 과정 속에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잠을.
잠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이 아침 조깅이다. 제대로 된 트레이닝복조차 하나 없어서 아버지의 트레이닝복을 빌려 입은 다음 언제 마지막으로 신었는지도 모를 낡은 러닝화를 신고 나갔다. 이제 막 가을의 첫 자락에 선 아침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청량했다. 집 바로 근처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내려갔을 때 처음 마주한 것은 싱그러운 잔디와 그곳에 촘촘히 내려앉아 반짝이고 있는 이슬이었다.
조깅을 시작하기에 앞서 삼성의 건강 관리 어플인 '삼성 헬스'앱을 켰다. 운동 시간·거리·속도와 칼로리 소모량 등을 체크해주는 어플인데 종종 자전거를 탈 때 유용하게 사용했었다. 더 유익한 점은 단순히 기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릴 때 페이스 조절을 인공지능(AI)이 도와준다는 것이다. 마치 일일 코치 같달까.
기본 체력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근자감이었다.) 과감하게 난이도 상(上) 목표를 눌러버리고 인공지능의 안내에 따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5분은 워밍업 단계인데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5분이 지나자마자 시속 6km로 걸으라고 지시하더니 곧 몇 분 지나지 않아 시속 8.9km까지 속도를 올려 뛰라고 채찍질을 해댔다. 한 10분가량은 페이스를 잘 유지하다가 이내 뛰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공지능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는 게 아닌가.
'시간당 8.9km로 속도를 높이세요!'
운동 시작 20분 만에 그렇게 일일 코치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이미 나사가 빠져버린 내가 페이스를 맞추지 못하자, 5분 단위로 계속 쪼아댔다. 무서우리만큼 일관된 톤과 침착한 목소리. 나중에 내 자식이 생긴다면 이 목소리 톤으로 훈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단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더 웃긴 것은 병 주고 약 준다고, 중간에 나한테 말도 걸어온다.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지시나요?', '땀이 난다는 건 좋은 거예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처럼 말이다.
햇빛을 너무 오랜만에 받은 탓인지 팔의 살갗도 따갑고 발가락은 점차 따끔거렸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거의 걷다시피 했다. 시작은 패기 있게 했는데 이렇게 빨리 지칠 줄은 정말 몰랐다. 초·중·고등학교, 심지어 대학생 때도 체육대회 때마다 반 대표로 계주를 나가고 우수한 성적을 거뒀던 나인데, 몇 년간 자만하며 운동을 등한시한 결과가 이거라니. 적잖은 충격은 나에게 동기부여로 다가왔다.
이로써 잠을 포기하고 첫 번째로 얻은 것이 생겼다. 바로 현재 나의 체력을 몸소 직시하게 되었다는 것. 조깅을 시작하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면, 몇 주전 공부계획을 세울 때와 오늘 조깅을 위해 목표를 설정할 때 상황이 너무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바로 '실현 가능한 단기 목표'를 간과한 것이다. 처음부터 난이도 있는 목표를 잡는다는 것은 가만히 있는 심장을 단숨에 펌핑시키는 것과 같다. 5분의 워밍업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됐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처음부터 뛰며 지방을 태울게 아니라 고르게 호흡하며 심폐를 점차 강화시켜나가는 일이다. 비록 오늘은 걸었지만 한 달 후, 아니 천천히 해도 좋으니 언젠가는 일일 코치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가뿐히 뛰고 있기를.
[영상 글귀 출처]
체인지그라운드 https://youtu.be/jdxujfAz1zA
체인지그라운드 https://youtu.be/-L8P4Misf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