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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그리지 Oct 14. 2020

SNS에 그림을 올리며 겪은 일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발견한 나의 '색'


'나를 세상에 알리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알아주지?'


 작년 이맘때쯤 아이패드를 사고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SNS에 그림 계정을 만들고 작품도 꾸준히 올렸다. SNS에 나의 그림을 올리기 시작한 목적은 '나'라는 사람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런 글을 쓰고 이런 그림을 그리는 '나'라는 작가 지망생도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SNS에 개인 작품을 올리는 여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계정을 만들기 전에도 '이거 괜히 올렸다가 누가 마음대로 퍼가는 거 아냐?', '그래서 저작권 문제로 골머리 썩히면 어떡하지?' 등 많은 생각이 들었다. 늘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를 외칠 만큼 신중한 성격의 나에게 SNS에 그림을 올리기란 큰 산이자 도전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했던가. 그런 걱정으로 시도조차 안 한다면 이후 찾아올지도 모르는 기회를 모두 차 버리는 것과 같았다. 걱정하는 일은 나중에 일어났을 때 부딪히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전용 매니저가 되어 스스로의 그림을 SNS에 홍보하기 시작했다. 작가 지망생으로서 첫걸음마를 떼기까지의 성장통에 대해, 그리고 그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솔직하게 풀어보려고 한다.






 평소 화려하고 복잡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단조롭고 깔끔하며 최소한의 것을 추구한다. 이런 성격은 그림에 고스란히 묻어져 나온다. 최대한 적은 선과 색을 쓰면서 한눈에 봤을 때 깔끔하고 소박한 그런 그림. 2월 15일부터 5월 15일까지 석 달간 올린 45점의 작품이 그렇다. '1일 1 그림'이라는 나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는데 20분에서 40분 정도면 충분했으니 말이다.


 팔로워가 이제 막 100명을 넘어갈 때쯤이었다. SNS에 그림을 꾸준히 올린 게 효과가 있었는지 어느 순간 좋아요도 평소보다 많이 받기 시작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봐준다는 생각에 더 잘 그리려는 욕심이 앞섰다. 애초에 내 그림은 '잘 그린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거창한 것이 아닌, 단순함과 소박함이 내가 지향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 더 잘 띄기 위해, 더 인정받기 위해 '잘 그린 그림'에 집착하다 보니 그 작은 그림 하나를 그리는데 1시간이 넘어가면서 혼자 끙끙댔다.


 한번 시작된 방황은 그림 자체에 대한 흥미 자체를 잃게 만들었고 내 그림의 주체성까지 흔들어 놨다. '1일 1 그림'이라는 목표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업로드 주기는 자연스레 짧아졌고 결국 한동안 그림을 올리지 못했다. 사람들을 눈을 의식하면서 그린 그림은 더 이상 내 그림이 아니었다. 사람의 욕심이 이렇게 간사하다. SNS에 다시 그림을 올리기 전까지 긴 휴식기를 가지면서 '내가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져봤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 스스로 깨닫고, 부딪히고, 격파할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세 가지의 나름의 수련 과정(?)을 거쳤다.



1) 나와 같은 고민을 겪었던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영상출처: 내가 슬럼프를 극복한 여러가지 방법 - 이연LEEYEON 유튜브


내가 관심 있는 일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의 말이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다. 애석하게도 나의 주변에는 작가를 준비하는 사람이나 종사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디지털 시대의 최고의 배움터이자 선생님, 유튜브였다. 그곳에는 그림 그리는 일을 적게는 2년, 많게는 30년까지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들이 있었다. 단순히 그림 앱을 사용법과 도구 사용 팁뿐만이 아닌, 무명 시절부터 시작해 그림으로 돈을 벌기까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추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작가는 '이연 LEEYEON', '빨간고래의 드로잉-REDWHALE's Drawing', '미리내_Milky Way' 이렇게 세 채널이다. 내가 찾아본 세 채널의 영상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아주 당연한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결국 해답을 찾는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내 그림에 대한 주체성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2) SNS는 잠시 잊고 스스로와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를 들여다볼 여유가 필요했을뿐더러 그림체에도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청소년 때 미술 학원을 따로 가서 배운 적은 없었다. 기초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그림이 가장 순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은 스스로에게 드로잉 북을 선물한 것이다. 내가 구매한 책, 「수수한 아이패드 드로잉」의 첫 장에서〈수수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애덤 로빈슨(Adam Robinson)은 삶의 모든 지혜가 '단순화 작업'에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더 빨리 변화하는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최대한 삶의 단순화할 줄 아는 법을 알아야 하고 [...]"


세상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 더 단순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말은 지금껏 내가 추구해오던 그림의 정체성이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수수진 작가의 그림은 결코 반듯하지 않다. 원을 그리다가 찌그러지면 찌그러지는 대로 그리는데 그 자체로도 손 맛이 있고 소박하며 예쁘다.

 책 속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느낀 게 있다면, 처음으로 완벽함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때 자주 쓰던 '뒤로 가기' 기능을 몇 번 쓰지 않았으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과는 별개로, 모든 선과 면은 일정하고 균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게 했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3) 그리고, 쓰고, 올리고, 공감했다.



 처음엔 손그림 느낌의 일러스트, 미니멀한 건물 그림, 인물화 등 그림체와 주제에 상관없이 막 그려봤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전처럼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완벽히 그리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함 뒤에 숨은 완벽함이란 게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하는지 수련과정 중 깨달았으니 말이다.


 하루는 더 이상 그릴 소재가 없어져서 평소 찍어뒀던 하늘을 그려봤는데 이때 내가 찍은 사진을 그림으로 재해석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자연이 그려내는 그라데이션은 가장 순수하고 멋진 작품이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사각형 캔버스에 하늘을 담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


 SNS에 그림도 다시 꾸준히 올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편한 그림을 그리니 잠시 끊겼던 사람들의 발길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전처럼 아무 코멘트 없이 그림만 올리는 게 아니라 그날 느낀 감정을 글과 함께 올렸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에게 그냥 지나치게 하는 것이 아닌 한마디라도 말을 걸어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서로의 작품을 공유하고, 담소를 나누고, 공감하는 것은 쓰고 그리는 사람에게 큰 보람이자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1일 1 그림으로 호기롭게 시작한 그림 업로드는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스스로 더 대단한 그림을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의 그림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 방황의 시기를 거쳤으며 아직 이겨 나가는 중이다. 흔히 '창작의 고통'이라고 하는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고 해야겠다.


 이번 성장통을 계기로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그림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은 감정을 시각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림은 내 감정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특히 '빨리 해치워버려야지'하고 시작한 그림은 늘 그 끝이 좋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그림에 내 마음을 쏟지 않으면 그 그림은 나를 밀어낸다. 그게 바로 그림이 주는 미학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렇다. 온전히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와 주는데 사람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다 보면 결국 잃는 건 나 자신이다.


 지금 이렇게 자연을 담은 그림을 열심히 그리다가도 언젠가 또 스스로의 그림에 물음표를 던지는 시기가 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는 고민 속에서 나오고 발전은 고생 속에서 움튼다.'는 말처럼,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심이자 발전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의 글이 현재 같은 고민을 안고 계신 분들께 마중물을 붓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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